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5)
여름의 초입, 종로에 왔다. 예전 종로 3가는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 서울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들 변화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단성사는 현재 영화관이 아닌 단성 골드 빌딩으로 바뀌었고, 피카디리는 CGV의 체인이 되었지만 서울극장만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여전히 건재하다. 그런 서울극장 안에는 같은 건물을 사용하지만 각각의 개별 된 주체로서 서울 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가 있다.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서울극장과 작은 영화들을 트는 인디스페이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공간을 보며, 인디스페이스 로비에서 오늘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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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인디스페이스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은지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 나는 사실 그가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직접 얼굴을 마주하자 그러한 생각들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눈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걸.
“인디스페이스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인데요. 인디스페이스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인디스페이스는 민간이 주도해서 만든 한국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최초의 독립영화관이고요. 많은 분들의 도움을 통해서 2007년 말에 처음 문을 열게 됐어요. 지금은 건물 자체가 사라지긴 했지만, 명동의 중앙시네마 건물에서 시작을 하게 됐고요. 정권 때문에 부침이 많아서 그곳에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금방 문을 닫았었어요. 그 후에 다시 열었을 때는 광화문 씨네큐브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죠. 거기서 있다가 건물주 분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다 보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공간을 가진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다른 도시에서도 독립영화 상영관을 운영하는 일은 힘들지만, 서울에서 운영하는 일은 특히나 더 힘든 일일 테다. 많은 동네들이 계속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고 있고, 임대료는 갈수록 더 치솟고 있으니까.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쳐야 했던 인디스페이스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 마음이 저렸다.
“앞에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인디스페이스는 위탁 운영자를 공모하는 방식에 반대해 2009년에 휴관 후, 2012년에 재개관하는 과정을 거쳤는데요. 재개관 후에도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어려운 점들이 많았을 텐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저희는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죠. 지금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겠구나 싶었지만,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상태예요.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해결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블랙리스트 문제로 회의들을 진행하고 있고, 투쟁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었기에 자연적으로 블랙리스트 문제는 끝이 난 게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과거에 잘못된 것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해결될 수 있고, 미래로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디스페이스 하면 좌석에 적힌 후원자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후원해주신 분들의 이름을 새기는 나눔자리 후원회원 시스템은 어떻게 출발되었나요?”
“이 시스템은 광화문에서 재개관을 하면서 시작된 건데요. 다시 재개관을 하려면 아무래도 많은 자본이 필요한지라, 좌석에 후원자의 이름을 새기는 걸 하기 시작했어요. 좌석당 200만 원씩을 받고, 그 각각의 좌석을 후원자에게 판매한 거죠. 그때는 100석 규모여서 100석을 판매했고, 그게 다시 문을 여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당시에는 주로 영화인들이나 관객들이 주로 많이 후원해주셨다면, 요즈음은 추세가 달라져서 배우의 팬분들이 모금을 통해 나눔자리를 구매해주곤 하세요.”
나눔자리 시스템은 인디스페이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시그니처와도 같다. 많은 이들이 나눔자리를 통해 인디스페이스에게 힘을 실어주었기에, 지금의 인디스페이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디스페이스가 위치한 서울극장에는 인디스페이스 외에도 서울극장과 서울 아트시네마도 위치하고 있는데요. 같은 건물에 위치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통의 요충지인 종로에 서울극장이 위치해서 접근성이 상당히 좋아요. 아트시네마랑 저희랑 비슷한 시기에 서울극장으로 들어왔는데요. 아트시네마가 몇 달 일찍 들어오고 그 후에 저희가 이곳으로 들어왔어요. 아트시네마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도 서울극장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처음에 들어올 때 설레는 마음도 들었어요. 아트시네마와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근데, 아무래도 상영하는 영화의 결이 다르다 보니 같이 기획들을 해나가긴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가끔씩 콜라보를 하긴 하죠. 가장 좋은 점이라면 정책적인 부분들을 논의할 때 힘을 합칠 수 있고, 사소한 부분에서도 물건 같은 것들이 없을 때 서로 빌려주기도 하고 그래요. 같은 건물에 위치하다 보니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느낌이에요. 그래서 서로 옆집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상영관이 붙어 있기도 하고요.”
“정말 바로 옆이라, 옆집이 맞긴 하네요. 같은 층에 위치하다 보니 티켓을 발권할 때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있나요?”
“서울극장의 매표소가 따로 있고, 저희와 아트시네마가 같이 사용하는 매표소가 있어요. 그런데 처음 오시는 분들은 그런 부분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많이들 헷갈려하시죠. 그래서 저희 매표소에 와서 서울극장표를 달라고 하시기도 하고, 서울극장 매표소에 가서 인디스페이스 표 달라고 하실 때도 있어요. 그런 문제로 간혹 목소리 톤이 높아질 때가 있어요. 종로가 아무래도 노인 인구가 많고, 노인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막무가내인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냥 여기서 서울극장표를 발권해주면 안 되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응대하기에 어려운 상황들이 있죠. 그리고, 시간을 때우러 오는 노인 관객분들도 많이 계셔서 시간이 맞는 영화 아무거나 달라고 해서 표를 드리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영화가 왜 이러냐.”라고 얘기하시기도 하고, 종종 상영 중간에 나가시는 분들도 있곤 해요. 아무래도 평소에 보던 영화와는 전혀 결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 건물에 세 곳의 영화관이 존재하고 있기에 처음 오는 관객들은 혼동을 겪기도 하겠지만, 영화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영화, 고전영화, 상업영화를 하루에 연달아 볼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니까.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를 구독하면 인디스페이스의 관객 기자단 인디즈가 작성한 독립영화 소식들을 매주 수요일에 메일로 발송해주는 시스템이 얼마 전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메일링 서비스를 도입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원래 상영일정이나 이벤트를 정리해서 매주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시스템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거는 정보전달에 그치잖아요. 정보전달이 주된 목적이다 보니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밌는 걸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관객 기자단 인디즈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을 조금 더 잘 보이게 하고 싶은 마음에 ‘인디즈 큐’를 시작하게 됐어요. 만들면서 저희는 정말 재밌었어요. 받는 분들도 재미있게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글들을 읽고 재밌어서 극장으로 발걸음이 이어진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재 상영 중인 영화가 아니더라도, 상영을 하지 않는 영화도 소개하면서 이 영화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도 같이 안내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인디스페이스는 기존의 정보 전달형 뉴스레터 외에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를 구독자들에게 전송하고 있다. ‘인디즈 큐’ 시스템은 작은 책방의 큐레이션과 닮아있었다. 보석 같은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책방과 정말 닮았다. 이 매력적인 큐레이션 레터를 읽고, 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영화들을 알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라는 타이틀이 인디스페이스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담감도 있지만,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 중에서 꽤 규모가 큰 편이고,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기에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있어요. 길게 쌓인 공간의 시간만큼 앞으로도 계속 잘해나가고 싶어요.”
언제나 선구자에게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제까지 잘해온 만큼 앞으로도 나는 인디스페이스가 잘해나갈 거라고 믿는다.
“인디스페이스의 SNS는 상영작 소식이나 상영시간표, 행사소식들을 넘어 방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어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아카이브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인디스페이스에게 있어 SNS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SNS를 전부 관리하고 있는데요. 워낙 많은 정보가 올라오다 보니, 팔로우하시는 분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요. 사실, 원하는 정보만 딱딱 얻고 싶은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일단 게시물을 많이 올리면 그만큼 노출도가 높아지기도 하니까, 많이 올리긴 하는데 항상 팔로우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느끼 실지에 대한 고민들을 안고 있죠.”
그는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은 정보를 접함에 있어서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정보를 더 알고 싶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있어 인디스페이스의 SNS는 단비 같은 존재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많은 영화 정보들을 인디스페이스의 계정에서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