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만나는 영화관, 인디스페이스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6)

by 석류


IMG_17351.jpg 인디스페이스의 상영관 입구.



“긴 시간 동안 많은 상영이 이루어진만큼, 기억에 남는 관객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관객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나요?”

“저희 극장을 아껴주시는 관객분들은 모두 기억에 많이 남아요. 자주 찾아와 주시는 관객분들은 얼굴을 알기도 하고요. 그런 단골 관객분들이 오시면 엄청 반가운 마음이 들어요. 오시는 관객분들 중에는 스텝들 먹으라고 간식을 사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극장 개관일에는 케이크를 사오시기도 하고요. 개인으로써는 정말 큰돈인데, 나눔자리를 구매해주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렇게 챙겨주시는 관객분들을 보면 부끄럽지 않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 전 읽었던 소설 <GV 빌런 고태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 소설의 배경으로 인디스페이스가 나와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고태경은 거의 매일 인디스페이스에 온다. 그런 고태경을 스텝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자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처럼 영화를 사랑하고, 공간을 사랑하는 관객의 걸음은 인디스페이스가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서울에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많은 편인데요. 그중에서도 인디스페이스 만의 색깔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보통 독립예술영화관을 통칭해서, 예술영화관이라고 많이 부르곤 하는데요. 저희는 그중에서도 ‘한국 독립영화’만 상영을 해요. 물론 가끔씩 기획전 같은 때에는 해외 영화들을 틀기도 하지만, 기본 베이스는 한국 독립영화로 가고 있죠. 그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작은 영화들과 그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에게 상영의 기회를 조금이나마 더 늘린다는 의미에서는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희가 진행하는 행사가 정말 많아요. 영화가 개봉하면 ‘인디 토크’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한 번 이상 각 작품마다 GV를 진행해요. 행사가 정말 많은 날에는 하루에 세 개 이상 진행한 적도 있고요. 상영회나 시사회도 원하시면 웬만하면 다해드리고요. 그러한 점들이 인디스페이스만의 하나의 색깔이 아닐까 싶어요.”

“앞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인디스페이스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독립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다양성이잖아요. 그래서 상영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서울 안에, 그것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인디스페이스가 있고 그곳에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 다양성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다양성. 문화예술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키워드가 있을까. 다양성이 죽으면, 그저 획일화된 이름의 문화예술만 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디스페이스처럼 다양성을 지키는 공간이 있기에, 창작자들이 마음 놓고 다양한 작업들을 해나갈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99FBFD475ED731BF21.jpg 6월 말부터 9월까지 진행되는 릴레이 토크 프로그램.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인디스페이스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2019년에 여성 감독의 영화들이 큰 활약을 보였잖아요. <벌새>, <메기>, <아워바디>, <보희와 녹양>등등요. 정말 좋은 영화들이었고, 그만큼 저희 극장에서도 많은 분들이 관람해주셨어요. 그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여성을 키워드로 해서, 저희랑 여성영화인모임이랑 퍼플레이와 함께 강연 형식의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성영화인들을 8분 정도 초청해서 자신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생각 중이에요. 그래서 연출, 기획, 각본, 촬영, 편집, 음향, 미술, 분장, 마케팅 분야의 분들을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는 시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이 행사에서 저희가 타깃으로 잡은 관객층은 영화일을 하고 싶은 분들이나, 영화에 관심이 있고 관련 직업을 탐구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젊은 여성관객분들 인데요. 그분들에게도 분명 좋은 시간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요.”



현재 인디스페이스는 ‘it’s MY turn!’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여성영화인의 이야기를 듣는 릴레이 토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존의 GV와는 다르게, 각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티켓팅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한 회차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떠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벌써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운영하는 독립영화 전문채널 ‘CH 가지’도 눈에 띄는데요. ‘CH 가지’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2019년에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이라는 행사를 진행했었어요. 미개봉한 독립영화들을 모아서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 영화들을 알리려는 취지에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죠. 기획전 상영에 참여한 감독님들을 1분 인터뷰해서 채널 가지를 만들었고, 인디스페이스의 색을 드러내기보다 여러 가지 독립영화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자유로운 계정으로 만들고자 이름도 인디스페이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지로 지었죠. 사실, 이름을 지을 때 지금은 웨이브로 통합되었지만 SKT에서 운영하던 옥수수처럼 야채 같은 이름으로 가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들이 나왔어요. 채소 가지의 의미도 있지만, 가지라는 뜻은 여러 가지라는 뜻도 있고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겠단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색을 드러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기도 해요. 결국에는 인디스페이스와 관련된 콘텐츠 위주로 업로드되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하며 그의 목소리에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고민이 많이 묻어났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만큼,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인디스페이스라면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간에 분명히 잘할 테니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질문지를 보자, 어느새 인터뷰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그의 인생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궁금해졌다.



“홍보팀장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나요?”

“저에게 있어서 큰 의미였던 작품을 꼽자면 <은하해방전선>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디스페이스에서 처음 관람했던 영화이기도 하고, 인디스페이스의 개관과 동시에 개봉해서 상영한 영화이기도 해요. 제 고향이 천안인데,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서울로 와서 영화를 보곤 했었어요. 그 당시에 한국 독립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서울에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디스페이스에 왔었는데, <은하해방전선>을 보고 너무 재밌어서 문화충격을 받았어요. 친구를 데리고 와서 재관람도 했었죠. 그 후에 인디스페이스에 입사를 하게 됐을 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흥미로워졌다. 인디스페이스의 시작을 함께 한 영화를 보게 되고, 그리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게 되고. <은하해방전선>은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정말 운명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인디스페이스와의 첫 연결고리가 생겼으니까.



“홍보팀장님에게 있어서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영화관이 주는 분위기, 그리고 상영관 안에 들어서 있으면 러닝타임 동안은 오롯이 나와 스크린만이 존재하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 영화관이란 제게 있어서 바깥세상과 분리될 수 있는 해방구 같은 존재예요.”


어둠이 깔린 상영관에는 오직 나와 스크린만이 존재한다.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듯한, 짧은 여행의 느낌을 주는 영화관은 팍팍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해방구다.



“홍보팀장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응원하는 영화를 상영하고, 그 영화가 매진으로 이어지는 게 바로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매진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마음이 괜스레 몽글몽글해졌다. 내가 응원하는 영화를 많은 이들이 봐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가만히 머릿속으로 상영관 가득 들어찬 관객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아, 상상만으로도 파도 같은 감동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IMG_17371.jpg 인터뷰를 진행한 로비의 창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



“마지막으로, 매일 인디스페이스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여시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일로 한다는 부분에서 운이 좋다는 생각과 기쁜 마음으로 매일 출근을 해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하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많은 이들이 현실과 타협하며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니까. 운이 좋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도 오늘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어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디스페이스를 닮은 청명한 구름이 창밖으로 떠다니던 오늘을 오래도록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 앞으로도 인디스페이스가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영화들을 많이 상영해주길 바라며,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서울극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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