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의 성지, 자체휴강 시네마 上

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9)

by 석류


IMG_1829.JPG 자체휴강 시네마의 입구.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 빌라와 아파트가 즐비한 골목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고 아담한 모습의 ‘자체휴강 시네마’라고 적힌 간판이 조용히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해리포터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듯, 호기심을 안고 자체휴강 시네마가 위치한 지하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계단 아래의 이 공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나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천천히 자체휴강 시네마의 문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자체휴강 시네마라는 작은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래경입니다.”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박래경 대표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오늘의 인터뷰도 그의 미소만큼이나 포근하게 진행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체휴강 시네마라는 이름이 매우 독특합니다. 어떻게 자체휴강 시네마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나요?”

“맨 처음 상영관을 만들려고 할 때, 위치가 대학가 쪽이어서 대학과 관련된 명칭을 지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과 어울리는 공강, 휴강 등의 쉰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져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공강 상영관이라는 이름을 지어봤는데, 발음이 어렵기도 하고 상영관이라는 이름보다는 시네마가 더 어울릴 것 같아서 시네마로 바꾸고 스스로 쉰다는 의미에서 자체휴강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결정하게 되었죠.”

“이름이 특이하니만큼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의외로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는 없었네요. 오히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더 잘되는 편이에요. 특이한 이름으로 인해서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꽤 계셨어요.”



워낙 이름이 독특해서 어떻게 이름이 정해졌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그의 대답을 들으며 궁금증이 풀렸다. 독특한 이름만큼 에피소드도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는 사실은 의외긴 하지만 충분히 수긍 가능하다. 누구든 자체휴강 시네마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쉽게 잊기는 힘들 테니까.



“자체휴강 시네마는 장편 위주로 상영을 진행하는 곳들과 달리 단편을 중심으로 상영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어떻게 단편들을 상영하게 되었나요?”

“원래부터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영화 자체를 좋아했어요.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많은 작품들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보지 못한 좋은 단편들이 정말 많이 있는 거예요. 영화제 외에는 단편들을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용 상영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이 이어져서 상영관을 만들고, 단편들을 상영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전하기 전의 공간은 지금의 공간보다 훨씬 규모가 작기도 해서, 공간의 제약 때문에 단편 위주로 상영하게 된 것도 있어요. 장편을 틀만한 컨디션의 공간이 아니었거든요.”



자체휴강 시네마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편 위주로 상영을 진행하는 상영관이다. 장편을 상영하는 곳은 많지만, 단편은 그의 말처럼 접하기가 힘들다. 영화제나 기획전 같은 때에 맞춰서 보지 않으면 좀체 관람하기가 어려운지라 이렇게 상영관을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IMG_1831.JPG 현재 상영 중인 단편과 장편의 상영정보가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다.



“현재 자체휴강 시네마가 자리하고 있는 낙성대 쪽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장편 상영을 시작했는데요. 장편 영화는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고 작품을 선택해서 상영하시나요?”

“장편은 단편과 달리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품들이나 화제작 위주로 선정하고 있어요. 단편 같은 경우는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 느낌으로 상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장편은 그러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을 상영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으로도 그렇게 선정해나갈 계획이에요. 오래된 영화라도 괜찮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 상영할 계획이 있고요. 그렇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주로 화제작 위주로 상영을 계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원래는 단편들만 상영했지만, 현재 위치한 공간으로 이전을 하면서 자체휴강 시네마는 단편을 넘어서 장편도 함께 상영 중이다. 단편은 발굴하는 느낌으로 상영한다면, 장편은 좀 더 안정적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 위주로 상영한다. 그렇게 장편을 고르고 상영하는 모습이 묘하게 공간의 균형을 맞추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다.



“정말 수많은 단편 영화들이 있는데, 단편 영화들을 선택하고 상영하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우선 적으로는 장르가 겹치지 않게 골고루 상영하려고 해요. 같은 장르끼리 겹치는 것보다는 여러 장르가 믹스되어 상영되는 게 더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다음으로는 영화의 완성도를 보고요. 단편은 배우의 연기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들이 얼마나 완성도 있게 표현되었나를 보죠. 연출방향이 독특한 작품들도 단편만이 가지는 하나의 매력이기에 눈여겨보고요. 작품을 고르기가 정말 힘들 때는 수상실적 같은 것들도 참고하기도 해요.”



상영할 단편을 선정하는 기준을 듣고 있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최대한 관객들에게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되, 영화적 짜임새도 놓치지 않고 가려는 게 느껴져서 아직 이곳에서 단편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다 좋은 작품들 일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작은 영화, 그것도 더 작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단편영화만의 힘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편은 소재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기도 하고,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 가까움이 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불편함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단편만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새로운 감독이나 신인 배우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는 부분도 좋고요.”



장편을 만드는 감독이 처음에는 단편으로 경력을 시작하듯, 배우들도 단편의 포트폴리오가 쌓여 장편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장편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풋풋함도 있고. 그리고 단편만이 가지는 특유의 참신함들이야 말로 많은 창작자들이 단편 작업을 하게 만드는 하나의 힘일 것이다.



“금, 토, 일을 제외하고는 단편의 자유 상영이 이루어져서 원하는 단편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관람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관객이 자유롭게 상영작을 즉석에서 고를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자유 상영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사실 상영 시간표에 맞추어서 해당 영화를 상영하는 시스템이 가장 좋긴 해요. 그렇게 하면 예매하기에도 편하고요. 이렇게 자유 상영을 하게 된 건 아무래도 평일에 관객이 적기도 하고, 묶음으로 단편을 보는 것보다는 좀 더 편하게 영화를 선택해서 보실 수 있게 하려고 한 부분이 커요. 오신 관객 분들에게 원치 않는 시간표를 강요하기보다 원하는 영화를 부담 없이 골라 볼 수 있도록 나름의 시스템을 만든 거죠.”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간, 단편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에게 그는 마치 큐레이터처럼 작품들을 설명하고 그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정해진 시간표도 좋지만, 본인이 직접 원하는 영화를 셀렉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자유롭게 상영 중인 단편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은 자체휴강 시네마만이 가지는 시그니처이자, 최고의 장점이다.



“자체휴강 시네마의 홈페이지에는 영화 시나리오가 올라오는 카테고리가 있는데요. 국내를 비롯해 해외 영화 시나리오도 업로드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시나리오들을 업로드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아, 이 부분은 의도를 했던 건 아니고요. 제가 차곡차곡 모아놨던 시나리오를 혼자 읽기는 아까워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업로드를 하기 시작했어요.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고,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업로드할 계획이에요.”



혼자서 좋은 것을 볼 수도 있지만,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그러한 마음으로 그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영화를 나누고, 홈페이지에서는 시나리오를 나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런닝타임’이라는 이름의 영화모임이 있더라고요. ‘런닝타임’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모임은 어떠한 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과 함께 모여서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런닝타임을 만들게 됐어요. 언제부턴가 제가 영화를 보는 게 좀 게을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모임을 통해 영화들을 챙겨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모임을 한다고 해서 해당 모임일에 무조건 나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자유롭게 참석과 비 참석이 가능해요. 대신, 한 달 정도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모임을 지속할 의지가 없구나 싶어서 그런 분들은 자동으로 제외되죠. 그 외에는 관람 예절이나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분들은 모임원으로 받지 않고 있어요. 자유로운 모임이지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하니까요.”



보통의 모임은 모임일에 모임원이 나와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자체휴강 시네마는 달랐다.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든 점이 오히려 이 모임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영화와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는 잃지 말아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아무리 자유롭더라도 선은 지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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