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의 성지, 자체휴강 시네마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서울 (10)

by 석류


“한 번 상영했던 영화는 다시 상영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상영을 진행했던 작품들은 재 상영을 하지 않을 계획이신가요?”

“계획이 없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계속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편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고민이에요. 재 상영을 하게 되면 소개할 수 있는 영화가 그만큼 줄어드니까요. 재 상영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가 많이 있기도 해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시간을 잡고 특별 상영 식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죠.”



재 상영에 대한 생각들은 언제나 있지만, 재 상영을 함으로써 보석 같은 영화를 더 많이 소개하지 못할까 봐 고민이 든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영화를 애정 하는지를 몸소 느꼈다. 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기에 이러한 고민도 가능한 것이다.



“상영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전하기 전의 공간에 있던 때에, 마지막 사법고시가 치러지던 해였는데요. 사법고시에 합격하신 관객분이 오셨어요. 원래도 자주 오시던 관객 분이시긴 했는데, 그 날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난 후의 방문이라 남달랐죠. 마지막 사법고시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느낌이 물씬 들었어요.”


현재의 공간이 자리한 낙성대로 오기 전, 자체휴강 시네마는 신림의 고시촌에 위치했다. 그곳에서 사법고시의 소멸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수긍됐다.



“자체휴강 시네마를 운영하며 제일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자본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크죠. 영화를 수급해오는 데도 돈이 드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애로사항이 많아요. 특히나 장편 같은 경우는 단편에 비해 가격도 훨씬 비싸니까요. 자본에 대한 부분 외에는 외로움을 꼽을 수 있겠네요. 혼자서 공간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심적인 쓸쓸함들이 커요.”



장편을 상영하는 곳들도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오죽할까. 마음이 저릿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꿋꿋이 공간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정말 고마워서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을 보냈다.


“이번에는 반대로 자체휴강 시네마를 운영하며 제일 좋았던 기억에 대해 듣고 싶네요.”

“항상 힘들었다가, 좋았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에 콕 집어서 말하기는 힘든데요. 그래도 제일 좋은 부분을 꼽자면 방문해주신 관객 분들이 영화 재밌게 보고 간다고 말할 때가 가장 좋아요. 최근에는 ‘호우주의보’라는 상영회를 진행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관객들이 얼마나 오실지 걱정했는데 좌석이 만석이 됐어요. 그 덕분에 상영회도 성황리에 진행되었고요. 그때 정말 기쁘고 좋았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이렇게 좌석이 만석이 되는 일이 드물거든요. 단골 관객 분들이 오실 때도 기뻐요. 그 전 공간에서부터 쭉 이 곳을 잊지 않고 걸음 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해요.”



영화관의 가장 큰 동력은 역시 관객이다. 힘든 일들이 생겨도, 관객의 말 한마디에 운영하는 이들은 위로를 얻고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 방문하고, 공간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IMG_1834.JPG 입구 출입문에 붙어있는 독립 & 단편영화 상영관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서울에는 다른 도시에 비해 꽤 많은 독립예술영화관이 자리하고 있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단편영화관은 드뭅니다. 서울에서 독립단편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건 대표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가요?”

“따로 의미를 두고 있진 않아요. 의미를 두는 순간 제가 운영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심적인 제약이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의미로 인해서, 사명감이 생긴다면 길게 운영해나가는 데 있어서 부담감이 커질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영화를 만드신 분들과 관객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정도의 역할로만 생각해요. 그리고 발걸음 해주신 관객 분들이 직접 공간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싶어요.”



관객이 직접 공간에 와서 영화를 보고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관, 자체휴강 시네마. 오늘 나도 이곳에서 영화를 보고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 볼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자체휴강 시네마의 향후 활동 방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계획들이 정말 많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 연기된 상태예요. 일단 최대한 GV를 많이 열려고 계획했었어요. 그리고 영화모임인 런닝타임을 일주일에 하루가 아닌, 이틀 정도로 해서 만약 해당 요일에 못 오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른 요일에라도 오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것 외에는 현재는 큰 계획을 짜거나 하기는 힘드네요.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를 좀체 알 수 없으니까요.”



현재 자체휴강 시네마는 영화모임인 런닝타임이 매주 목, 금 이틀 동안 열리고 있다. 목요일에 못 온 사람들은 금요일에 오고, 금요일에 못 온 사람들은 목요일에 올 수 있게. 코로나로 인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진 상황이지만, 그는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영향을 끼친 영화는 무엇일까. 인생영화가 궁금해져 질문을 던졌다.



IMG_1842.JPG 자체휴강 시네마 로비에 걸려있는 영화 포스터. 그가 인생영화로 꼽은 <시네마 천국>과 <쇼생크 탈출>도 걸려있다.



“대표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영화가 있을까요?”

“<인생은 아름다워>, <쇼생크 탈출>, <시네마 천국> 이 세 작품을 꼽고 싶어요. <인생은 아름다워>는 슬픔과 웃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서 좋았어요. 슬플 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던져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쇼생크 탈출> 같은 경우는 모든 장면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다 잘 엮여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시네마 천국>은 음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작품이에요. 보면서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영화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요.”



그가 말한 세 작품 다 워낙 강렬한 작품이지만, 그중에서도 <시네마 천국>을 꼽은 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니까. 어쩌면 <시네마 천국>의 여운들이 자체휴강 시네마가 만들어지게 이끈 건 아닐까 싶다.



“대표님에게 있어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예전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봤자 영화관이 유일했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점 더 영화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들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영화관은 영화 외적인 부분들의 느낌을 가져가고 싶은 분들의 방문 위주로 바뀌게 될 거라 봐요. 영화관은 점차적으로 코어 한 마니아들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그렇게 변한다 하더라도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맛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마니아만의 공간으로 영화관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어떤 곳에서도 영화관에서의 체험을 대신할 순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가 말한 특유의 맛처럼 말이다.



“대표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화관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모자람이 없는 곳이에요. 그런 부분만 충족이 된다면 충분히 괜찮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상적인 영화관이란 게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드네요. 아무리 규모가 크고 좋다 하더라도,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마음속의 영화관은 전부 다 다르니까요.”


개인이 갖고 있는 마음속의 영화관은 전부 다르다는 대답이 마음에 꽂혔다. 맞다.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이어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아름다운 대답이었다.



IMG_1847.JPG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는 상영관 가득 사람들이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매일 자체휴강 시네마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여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관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죠. 별 탈 없이 오늘 하루도 잘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별 탈 없이 하루가 잘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대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매일 쳇바퀴 같이 느껴지는 일상이어도, 그러한 일상들이 소중해지는 날들이 있다. 지금처럼 코로나가 세계를 휘감고 있는 시기에는 더더욱. 나는 자체휴강 시네마가 조용하고 잔잔하게 별 탈 없이 낙성대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많은 단편들을 상영해주길 바라며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 지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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