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시민들의 문화 허브, 인디플러스 포항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포항 (2)

by 석류


“‘텅빈날 프로젝트’도 흥미롭습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상영 타임을 하나 비워놓고, 관객 투표를 통해서 상영작을 선정하잖아요. ‘텅빈날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관이고, 정해진 시간대에만 영화를 상영하다 보니 그 시간대에 맞추지 않으면 영화를 보지 못하는 분들이 꽤 많이 계세요. 영화를 보고 싶은데, 시간대가 안 맞아서 보지 못한 관객분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상영 타임을 비워놓고 투표로 선정된 작품을 상영해보자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이에요.” (소라)



아쉽게도 상영 시기를 놓친 관객들에게도, 다시 해당 작품을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도 선물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상영작을 결정하는 만큼 관객과 영화관 모두에게 유기적이기도 한, ‘텅빈날 프로젝트’. 이 프로그램, 상당히 매력적이다.



“상영작을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도 있지만, 처음 방문하시는 관객분들도 많으세요.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너무 어렵고 심오한 영화보다는 대중적인 게 좋지 않나 싶어서, 그런 쪽을 염두에 두고 선정하고 있어요. 편하게 관람하실 수 있게요.” (소라)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되, 대중성도 함께 잡고 가는 상영작 선정의 이유를 들으며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첫 관람작이 어려운 작품이라면 다시 걸음 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영리한 영화 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할머니 관객분이 기억에 남아요. 원래도 자주 오시는 분인데, 올 때마다 직원들에게 주려고 간식 같은 걸 사 오세요. 사실, 제가 인디플러스에서 일하기 전에는 독립영화관은 젊은 관객들만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할머니 관객분을 보고 선입견이 깨졌죠.” (자영)

“포항 안에서도 꽤 먼 외곽지역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관객분이 계시는데요. 그분이 오실 때마다 항상 영화를 내리 세 편을 보고 돌아가세요. 코로나 이후로는 뵙지 못하고 있는데, 그분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저희가 상영료가 저렴하다 보니 연달아서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그분외에도 계시는데요. 그렇게 영화를 좋아해 주시는 관객 분들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소라)



할머니 관객분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관객도, 연달아 영화를 내리 보는 관객들 모두에게도 얼마나 이 공간이 사랑스러운 곳일까.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디플러스 포항은 하나의 문화적 허브 같은 공간이다.



IMG_19601.jpg 로비에서 만난 영화 <벌새>.



“영화 GV도 많이 진행하셨을 텐데요. 모든 GV들이 기억에 남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GV가 있다면 어떤 영화의 GV였나요?”

“작년에 <벌새> GV를 진행했는데요. 그 시기에 하필 태풍이 장난 아니게 왔어요. 태풍 때문에 비바람이 장난 아니었어요. 거리에도 차도 없고요. 김보라 감독님이 대구 GV를 마치고 포항으로 넘어오고 계셨는데, GV 시간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날씨가 더 안 좋아지는 거예요. 관객분들도 오늘 날씨가 이렇게 안 좋은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감독님에게 날씨가 너무 안 좋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취소를 해도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악천후의 날씨임에도 흔쾌히 감독님이 GV를 취소하지 않고 해 주셨고, 관객도 70명가량 와주셨어요. 날씨가 좋았으면 아마 더 많은 분들이 오셨을 거예요. 그 날씨에도 그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니까요. <벌새>가 러닝타임이 긴 작품이어서, 영화를 일찍 시작했음에도 GV를 진행하니 열한 시가 넘어서 행사가 끝났어요. 늦은 시간에도 감독님이 일일이 한 명 한 명 다 사인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관객분들도 아무도 먼저 안 가시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궂은 날씨에도 함께 해주신 관객분들과 감독님에게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소라)



어떤 영화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했는데, 그 영화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 <벌새>여서 더 기뻤다. <벌새>는 연출한 김보라 감독님도, 팬인 벌새단도 다들 열정 넘치기에 태풍이라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인디플러스 포항을 운영하며 제일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무리한 상영작 요청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종교적이나 정치적인 색이 강하게 담긴 영화를 상영해달라고 전화하시고, 찾아오시기도 하는 분들을 마주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다양한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건 맞지만, 너무 특정한 색에 치우친 영화를 상영하기에는 조심스럽거든요. 그런 영화를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소라)



무리한 상영작 요청에 응대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다양한 영화를 틀어야 하지만, 모든 영화를 다 틀 수는 없다. 그게 특정색에 치우친 영화라면 더더욱. 단관이라 상영 타임이 한정적인 데다 다른 관객층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프로그래머님의 목소리에서 고단함이 묻어 나와서 마음이 아팠다.



“이번에는 반대로 인디플러스 포항을 운영하며 제일 좋았던 기억에 대해 듣고 싶네요.”

“1층 전시실에서 2018년도 말부터 빈백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빈백을 전시실에 가져다 놓고, 전시실의 벽에 빔을 쏴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객석을 벗어나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고 있죠. 시즌마다 테마를 바꿔서 빈백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여름에는 호러 영화제를 하고, 가을에는 피크닉 분위기의 영화제, 겨울에는 방구석 영화관이라고 해서 난로를 가져다 놓고 따뜻한 분위기로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저는 빈백 영화제를 할 때 가장 신나더라고요. 전시실을 꾸미는 것도 재밌고, 오시는 관객분들도 재밌어하셔서 뿌듯하고요.” (소라)



올해 여름 빈백 영화제는 <좀,B좁은>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좀비 영화들을 상영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아쉽게도 코로나가 재 확산되면서 영화제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시 휴관에 들어간 게 안타깝다. 얼른 코로나의 확산세가 꺾여서 가을과 겨울에 진행될 빈백 영화제는 무사히 치러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인디플러스 포항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인디플러스 포항 서포터즈 ‘시너지’ 멤버들을 비롯해 포항 지역의 영화 동아리분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여서 많이 나눌 수 있게요. 포키즈 필름 같은 교육 프로그램들도 진행하면서, 영화 상영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공간 안에서 해나갈 수 있게 할 계획이에요.” (소라)



영화의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인디플러스가 자리하며, 많은 이들이 이 공간에 모여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라본다. 인디플러스에 대한 질문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두 사람의 인생영화가 궁금해져 다음 질문을 던졌다.



“프로그래머님과 대리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로 꼽을 만한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나요?”

“이와이 슌지 감독의 <피크닉>과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기억에 남는데요. 이 두 작품을 보면서 나름의 충격을 받았어요. 이 작품들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도 인상적이었고요. 보고 너무 좋아서 영화에 대해 이리저리 찾아봤던 기억들이 나네요.” (소라)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작품을 좋아해요. 영화로 다른 사람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작품을 보았던 시기에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의 부분과 영화가 맞닿아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자영)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이 애정 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얼마나 두 사람이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느꼈다.



IMG_19691.jpg 우리는 상영관 안에 들어서며,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할 기회를 얻는다.



“프로그래머님과 대리님에게 있어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영화관은 가장 쉽고 확실하게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소라)

“저에게 영화관은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영화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영화관인 거죠.” (자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러닝타임 동안 내가 아닌, 또 다른 이가 되어 그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 영화관. 문화적 니즈와 다양한 감정의 체험 장소로서 영화관만큼 제격인 곳은 아마 없을 거다.



“프로그래머님과 대리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멀티플렉스와 독립영화 전용관의 입지가 바뀌는 것을 가끔씩 상상해보곤 해요. 줄을 서서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는 모습들도요. 현실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지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영)

“더 많은 관객분들이 공간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습이야말로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소라)


관객들이 공간을 사랑하고 아껴주며, 매회차 매진 행렬이 이어지는 모습들을 상상해보니 금세 행복해졌다. 단지 이상으로만 남는 게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게, 더 많은 관객들의 힘이 필요하다. 관객들의 힘이라면 이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매일 인디플러스 포항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여시는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몇 분의 관객분들이 찾아주실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소라)



코로나로 인해 인디플러스는 30석으로 제한해 상영을 했지만, 그 30석을 매회차 채우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현재는 휴관에 들어갔지만, 다시 개관을 했을 때는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많은 관객들이 그 좌석들을 채워주었으면 한다. 더 오래 공간을 지속할 수 있게, 관객의 발걸음이 절실한 시기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오늘의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렸다. 토독토독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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