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영화관 - 안동 (1)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듯 안동에 방문했던 20대 초반 이후, 오랜만에 안동에 왔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기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왔다는 점이 다르지만 안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터미널에 내려 중앙시네마로 향하는 길이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오늘의 인터뷰도 여행처럼 즐겁게 진행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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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안동 중앙시네마 대표 한철희입니다. 2013년부터 중앙시네마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전화 통화를 통해 인터뷰 날짜를 조율하며 들었던 목소리처럼, 실제로 마주한 한철희 대표님의 목소리는 매우 밝고 호탕했다.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와 마주하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호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중앙시네마는 2000년 상업 영화를 상영하는 일반 영화관으로 시작해서, 2009년 예술영화관으로 전환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2013년도에 중앙시네마를 인수를 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인수하게 되셨나요?”
“원래부터 영화관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지역의 예술 영화관이 있지만 생각보다 본래의 취지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가 맡아서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앙시네마를 인수해 2013년부터 하게 되었어요. 맡아서 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영화관의 재무구조가 열악하더라고요. 아마 처음부터 손익계산을 해보았다면 인수를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워낙 열악하다 보니 사비도 많이 투입되는 구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통해서 많은 문화 행사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많은 작은 영화관이 그렇듯이 중앙시네마 또한 재정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열악함 속에서도 중앙시네마를 인수하고,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건 그의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상영시간표가 캘린더형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손글씨로 적혀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손글씨로 상영시간표를 적게 된 이유가 있나요?”
“들어오는 입구가 워낙 협소한지라 상영시간표로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싶었어요. 눈에 띄게 하려면 뭐가 좋을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배너를 세워보았는데, 배너보다 손글씨로 쓰는 게 아날로그 적이라 사람들이 한 번씩은 더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손글씨로 바꾸게 되었죠. 손글씨로 바꾸고 난 후에 지나다니는 분들이 훨씬 관심 있게 봐주셔서 바꾸길 잘한 것 같아요.”
중앙시네마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화이트보드가 세워져 있다. 화이트보드에 한 주간의 상영시간표가 손글씨로 쓰여 있는데, 그 모습이 오래된 도시인 안동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작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술영화 전용관이다 보니 개봉 예정인 예술영화들은 기본적으로 포함을 하고 있고요. 한국 독립 영화들도 지역에서 상영하며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독립 영화도 함께 상영을 하고 있어요. 비율로 따지면 한국 독립 영화 30%, 예술 영화 70% 정도의 비율로 선정해서 상영하고 있어요. 간혹 관객들이 개봉 전에 미리 정보를 알고 상영 문의를 주시는 작품들이 있는데요. 그런 작품들도 살펴보고, 최대한 상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관객 위주로 시간표를 짜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에는 영화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워낙 다양해져 관객들도 개봉 예정작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객들이 요청하는 영화를 전부 다 상영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상영할 수 있게 노력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수동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간표에도 능동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과 영화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런 중앙시네마에도 시련의 시간은 있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아픈 이야기지만, 중앙시네마의 역사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 일이기에 듣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어서 조심스레 그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다이빙 벨> 상영 후,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는데요. 운영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상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어요.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천안함 프로젝트> 때였죠.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하지 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대놓고 압박을 주니, 어쩔 수 없이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고 내린 곳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일부 예술 영화 전용관에서는 그러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영화를 상영했죠. 저희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정부 측에서는 상영을 하고 있는 영화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죠. 그러던 찰나에 <다이빙 벨>이 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상영이 진행되었어요. <다이빙 벨>의 상영이 구체적인 블랙리스트가 완성되는 계기가 되었죠. 예술 영화 전용관 지원사업의 탈락으로 불이익을 주는 형태로 블랙리스트가 진행되었는데, 이게 워낙 말이 많으니까 그냥 그 사업을 없애버리더라고요. 그 사업을 없애고, 배급 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영진위에서 선정한 작품을 상영하면 그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로 바뀌었어요. 참 씁쓸한 제도였죠. 그렇게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중앙시네마의 문을 닫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을 닫아버리면, 다시 열기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지역 사회와 지자체에 여러모로 호소를 했어요.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요. 그 목소리를 듣고, 안동시에서는 기획전 같은 형태로 도와주시고 지역 사회에서는 공동체 상영으로 도와주셨어요. 자주 오시는 관객분들은 응원의 목소리로 격려해주셨고요. 그게 힘든 시기를 버티는 큰 힘이 됐죠.”
제도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2014, 2015년 2년간 그는 사비를 들여 중앙시네마를 이끌어 갔다. 간간히 여름과 겨울에 아르바이트를 채용한 것 외에는 계속 홀로 공간을 꾸려갔다. 인건비라도 절감해야 버틸 수 있었으니까. 직원도 없이 홀로 중앙시네마를 지키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든 시간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이 공간을 지켜준 그가 고마웠다.
“앞의 질문에 이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인해 중앙시네마는 큰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블랙리스트는 정말 위험한 제도예요. 헌법과 위배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특정한 사람을 집어서 그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점에서 참 위험하죠. 현재 블랙리스트의 진상규명은 어느 정도는 진행된 상태인데, 처벌이 이루어지지가 않고 있어요. 처벌을 하려고 하다 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이걸 실행한 게 공무원들이다 보니 위에서 시키는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거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그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이 문제에 관여한 핵심 담당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은 시행되어야 하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려면요.”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진상규명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처벌은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게. 당장 밥줄이 끊기는 일과 직결되기에 부당함에도 지시를 따랐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가지만, 왜 핵심 담당자들에게 처벌은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두 번 다시 블랙리스트라는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처벌 없이 유야무야 지나간다면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 처벌은 꼭 시행되어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대구, 경북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중앙시네마도 꽤 오랜 시간 휴관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재개관을 준비하며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맨 처음 휴관을 했을 때는 이렇게 장기간 휴관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운영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더라고요. 아, 이게 더 오래 지속되면 운영을 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죠. 아마 다른 영화관들도 전부 그런 생각을 했을 거 에요. 그래서 예술영화관 협회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냈고, 그게 기획전을 지원해주는 형태의 사업으로 이어졌어요. 티켓 할인 사업도 며칠 전부터 진행 중인데,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 사업이 계속 이루어질 수는 있을까 싶네요. 사업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이 커요. 코로나가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전염병이 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팬데믹 시대에서의 운영은 다른 형태로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형태의 운영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요. 온라인 플랫폼 위주로 시장이 흘러가는 상황에서, 코로나를 맞게 되면서 영화관의 모습도 새롭게 재정비가 되어야 한다는 고민을 계속 안고 있어요.”
아직 미해결 된 블랙리스트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괴로운데, 코로나까지 발발해 얼마나 더 괴로운 시간들일까 싶어서 마음이 쓰렸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화문 집회 발 확진자가 대거 생기면서 티켓 할인 사업도 잠정 중단되었다. 팬데믹의 시대, 앞으로의 영화관은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얼마 전 코로나 19 극복 중소 영화관 특별 기획전인 ‘심패소생’ 프로그램이 열렸는데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한정적인 기회로 다가갔던 영화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상당히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패소생’ 기획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과 연결되는데요.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전이 시작되었어요. 코로나 19 극복 기획전을 하면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획전을 하게 되었죠. 작품 선정은 <기프실> 같은 경우는 지역의 영화이기도 했고, 다른 작품은 관객들이 잘 모르지만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로 선정했어요. 관객 수와 상관없이 영진위에서 기획전을 하면 지원을 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관객이 많이 드는 작품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참에 관객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작품을 선정하고, 기획전을 하게 되었어요.”
관람객이 많이 들지 않아도, 코로나 극복 기획전을 하는 그 자체로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을 발굴하듯이 상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렇게 작은 영화들이 상영기간이 지난 후에도 기획전을 통해 소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영화관들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