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사색의 쉼터, 안동 중앙시네마 下

내가 사랑한 영화관 - 안동 (2)

by 석류



“상영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가끔씩 혼자 영화의 감동을 느끼기엔 아쉬워서, 골든벨처럼 해당 영화의 한 회차의 티켓 나눔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관람객이 드는 만큼 본인이 티켓 값을 부담하겠다고 하신 거죠. 사실 이 부분은 서로 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관객이 들지 않았는데, 제가 관객이 들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잖아요. 서로 간에 믿음이 있기 때문에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투명하게 이야기하죠. 관객도, 저도 서로를 믿으니까요. 이렇게 훈훈한 에피소드도 있지만, 좋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어느 관객분이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영화관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지갑이 안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영화관에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 잃어버린 게 맞다고 박박 우기면서 화를 내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 차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대요. 그 부분에 대해 아무런 사과의 말도 없으셔서, 참 씁쓸했던 적이 있어요.”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바로 영화관이다. 티켓 나눔을 통해 좋은 영화를 함께 나누는 관객도 있지만, 공간을 운영하는 이의 기운이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의 방문도 많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때때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 잘 봤다고 넌지시 전해주는 한마디만으로도 공간을 이어가는 크나큰 힘이 된다. 관객의 따뜻한 말들은 공간을 운영하는 이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원동력이다.



“GV도 정말 많이 열렸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GV가 있다면 어떤 GV였나요?”

“매년마다 <소중한 날의 꿈>을 연출하신 안재훈 감독님을 모시고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요. GV에 참여한 학생들도 그렇고, 안재훈 감독님도 서로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박배일 감독의 <밀양 아리랑>의 GV가 있었을 때 영화에 출연하신 할머니들이 GV 참석차 직접 오셨었는데요. 그날 GV에 어떤 관객분이 할머니들의 염장을 지르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전기는 꼭 필요한 건데, 뭐 그런 거 가지고 아등바등하냐는 식으로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다들 흥분하셔서 벌떡 일어나셨던 모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어요. <그날 바다> GV도 생각나네요. 그 GV 때 세월호 유가족 몇 분이 오셨는데요. 관객들도, 유가족 분들도 다 울먹이며 GV가 진행되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참 마음이 울컥했죠.”


중앙시네마에서는 GV도 진행하지만, 역사적인 요소를 많이 담은 영화들은 따로 강사를 초청해서 강연과 함께 진행하며 좀 더 심도 깊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진다. 기존의 GV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강연은 영화를 통해 역사의 한 부분들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앞으로도 활발한 강연과 GV가 많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IMG_2016.JPG 아날로그 영사기가 로비에서 관람객들을 반긴다.



“안동 전통시장 스탬프 투어, 안동 시외버스 시간표가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모습이 무척 재밌게 다가오는데요. 이렇게 여행과 관련된 것들을 로비에 비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현재 중앙시네마가 위치한 곳은 안동의 구도심인데요. 구도심에 명소들이 꽤 몰려있는 편이라 스탬프 투어를 통해서 구도심을 좀 더 활발하게 부흥시키려는 부분들이 있어서, 저희도 문화예술과 관련된 공간이니 충분히 스탬프 투어에도 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먼저 요청을 했어요. 그래서 스탬프 투어에 포함 되게 되었어요. 스탬프 투어를 통해 중앙시네마를 모르는 분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만들고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서 스탬프 투어가 중단 아닌 중단이 된 상태지만, 한창 시행 중일 때는 꽤 반응이 좋았어요. 방문하신 분들에게 로비에 있는 아날로그 영사기에 대한 이야기도 설명해드리며 작동해볼 수 있게 해 드리곤 했는데, 그런 것들도 좋아하셨고요. 버스 시간표 같은 경우는 안동에 여행차 오신 분들을 위해 배치해두었어요.”



중앙시네마는 안동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찜닭 골목과 갈비 골목의 중간에 위치해있다. 스탬프 투어를 와서 스탬프도 찍고, 영화도 보며 배가 고플 때는 맛있는 음식들도 먹으며 색다른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여행코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IMG_20241.jpg 중앙시네마의 모토와 월영모가 적혀있는 현수막이 중앙시네마 로비에 걸려있다.



“안동이라는 도시에서 중앙시네마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희 중앙시네마의 모토가 있어요. 영화의 산실, 지역문화의 허브, 여유와 사색의 쉼터라는 세 가지 의미의 모토요. 이 모토처럼 안동 지역에서 예술영화를 잘 소개하고 이어주며,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며 운영 중이에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의 쉼터이자 허브가 되기 위해 매주 월요일마다 극장에서 월영모(월요일 영화 보는 모임)라는 이름의 영화 모임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안동이라는 지역에서 예술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법도 한데, 단단한 목소리로 모토를 설명하는 걸 듣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한 느낌이었다. 나도 이런데, 지역민들은 얼마나 더 든든할까. 안동에 중앙시네마가 존재해주어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중앙시네마의 향후 활동 방향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모토를 계속 유지하며 잘 이어나가고 싶고요. 코로나가 조금 잦아든다면 시설적인 부분이나 그런 부분들도 새롭게 개선하고, 관객들을 위해 열심히 공간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게 현재로서는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코로나로 인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어진 시기, 작은 영화관들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생존일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국의 작은 영화관들이 최선을 다해 버텨주길 바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인터뷰도 막바지였다. 이제 슬슬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었다. 그를 영화관으로 이끈 인생영화는 무엇일까.



“대표님이 살아오면서 보았던 영화들 중에 인생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가 있나요?”

“극장을 운영하기 전에 봤던 작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시네마 천국>이에요. <시네마 천국>이 아직도 쇼킹하게 다가와요. 장면 하나하나가 인상적으로 남아서,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있어요. 극장을 운영하면서 만났던 작품 중에서는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 벨>을 꼽고 싶어요. 영화관의 존재 의의를 심어준 작품이었어요. 왜 영화관이 존재해야 하는 가를 알려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영화와 영화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의미 깊은 <시네마 천국>을 비롯해 블랙리스트 문제로 무척이나 고된 시간이었지만, 영화관이라는 다양성 공간의 존재 이유를 일깨워준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 벨>까지. 어쩌면 그의 인생영화는 영화 자체가 아닌, 공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IMG_2001.JPG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면 좋겠다.



“대표님에게 있어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단 한 편의 영화를 보더라도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안겨줄 수 있는 공간, 그게 바로 영화관만이 가지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러닝타임이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며, 머릿속에 깊은 여운처럼 맴도는 그런 영화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한 편의 영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픔을 치유하는 형태로 작용되기도 한다. 영화는 그렇게 관객의 삶에서 다시 재생된다.



“대표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영화관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관에 방문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관람하는 영화들이 내 인생의 영화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이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내 인생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영화관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닐까요.”



나 또한 영화관에서 여러 편의 인생 영화를 만났다. 그래서일까. 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영화관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IMG_1997.JPG 중앙시네마로 들어가는 입구.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언제나 극장은 문을 열고 관객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매일 중앙시네마의 문을 오픈할 때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문을 열고 계시나요?”

“새롭게 공간에 오게 되는 관객이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코로나로 인해 정말 힘든 시기지만 오늘도 무사히 극장의 문을 열었다는 안도감을 안고 매일 오픈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가다 보면 이것 또한 극장의 역사가 되겠죠.”



매일이 쌓여 하나의 역사가 되듯이, 중앙시네마가 안동이라는 도시에서 하나의 역사적인 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안동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중앙시네마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극장의 역사를 쌓아가며 그는 오늘도 중앙시네마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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