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편의점에 있습니다 - 제14화
날씨가 부쩍 더워지면서 얼음컵의 입고가 늘어났다. 얼음컵의 개수만큼 밖에 내어놓는 박스의 양도 늘었다. 얼음컵이 담긴 박스를 정리하고 나면 출입문 옆 쪽으로 박스를 내어놓는데, 내어놓은 박스는 순식간에 할머니들이 와서 가져가곤 했다.
거의 전담하듯이 박스를 챙겨가는 할머니가 있다. 항상 분홍색 꽃무늬가 그려진 몸뻬바지를 입고 박스를 주섬주섬 챙겨가는 할머니다. 나는 그 할머니를 막내 할머니라 부르기로 했다. 막내 할머니는 막내라는 호칭처럼,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막내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심부름은 막내의 몫이다. 막내 할머니는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하러 왔다. 왜 항상 막내 할머니만 심부름을 해야 할까. 결국 먹는 건 다른 할머니인데 말이다.
막내 할머니는 자신이 할머니들 중에 막내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고리타분한 윗세대의 관습처럼 느껴졌다. 다 같이 늙고 등이 굽어가는 처지에 나이가 가장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해야 하는가. 막내 할머니의 등은 이미 충분히 굽어있는데.
막내 할머니가 박스를 가져갈 때, 막걸리를 사갈 때마다 나는 종종 뒷모습을 보며 책 하나를 떠올리곤 했다. 분리수거물과 폐지를 줍는 노인의 생애에 대해 다룬 <가난의 문법>이란 책인데, 나는 그 책 속의 가상 인물인 윤영자와 막내 할머니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지를 줍기 전 막내 할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막내 할머니 본인도 자신이 폐지를 줍는 삶을 살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의 가난은 거주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지 않는다. 다른 형태로 삶에 스며들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복지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매일 막내 할머니를 통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의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