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 템플스테이
시간 맞춰 사찰 안내가 이루어질 대웅전 앞으로 나가니 오늘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주변에 각자 섬처럼 떨어져 서 있었다. 일행들과 함께 온 사람은 일행과 함께 있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혼자서 서 있는 형태로.
사람들이 다 모인 걸 확인 한 후, 스님이 대웅전에서 합장하고 절을 하는 법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합장과 절은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꼭 배워야만 하는 필수요소였다. 종교가 없는지라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일이 낯설어서인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언제 이렇게 절하는 법을 배워보겠나 싶어서.
대웅전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선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이자 내가 좋아하는 시인 정호승의 시 <선암사>에도 등장하는 해우소로 갔다. 선암사 해우소는 ‘뒤깐’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뒤깐’은 문화재로도 지정이 되어 있다. 현재도 화장실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는 곳이다 보니 실제로 화장실로 쓰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녘에 저 곳에서 근심과 걱정을 풀고 나올지도.
‘뒤깐’에 대한 스님의 소개가 끝나고 난 후, 시간을 살피니 어느덧 저녁 공양 시간이 되었다. 절에서의 식사 시간은 속세에서의 식사 시간보다 훨씬 빠르고 일찍 시작 된다. 저녁 다섯 시가 가까워오자 공양을 진행할 ‘적묵당’을 향해 스님들이 무리지어서 오기 시작했다. ‘적묵당’은 묵언 수행을 하는 뜻을 지닌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까. 적묵당 곳곳에는 투박하게 A4용지에 프린트 된 대화금지라는 글자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정갈하게 놓인 밥과 반찬들을 동그란 뷔페형 접시에 퍼고, 국도 챙겨 자리로 향했다. 스님은 왼쪽에 놓인 스님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나처럼 잠시 머무는 사람들은 오른쪽의 신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반찬을 하나하나 맛보다가, 고추장에 밥을 살짝 찍어먹어 보았다. 선암사 고추장이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궁금했는데, 소문대로 엄청난 고추장이었다. 매운 걸 못 먹는 나를 사로잡아버린 고추장. 고추장은 판매하지 않고, 오로지 이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더 귀중했다. 선암사 매실로 직접 담근 고추장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농도와 점성이 적당해서 나는 저녁 공양을 하면서 벌써 내일의 아침 공양을 기다리게 되었다. 내일은 고추장을 듬뿍 퍼서 꼭 밥을 비벼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나오자 슬슬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선암사를 빼곡하게 메웠던 관광객들도 어느 순간 다 사라지고 없어서 경내는 조용했다. 이제 오늘의 일정으로는 잠시 후 저녁 예불이 있었고, 그게 끝나고 난 후 일곱 시 부터는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 스님과의 차담 시간은 오전에 있는데, 내일은 스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침에 차담을 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오늘 저녁 시간으로 당겨지게 되었다.
저녁 예불은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스님들이 돌아가며 북을 치고, 종을 치고, 목어까지 치는 광경을 어둠이 깔린 경내에 서서 바라보자 신기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향연이 내가 정말 ‘절에 와 있구나.’를 실감하게 했다.
본격적으로 예불을 위해 대웅전으로 들어서자 이미 두 명의 참가자들이 먼저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의 옆에 자리를 잡고 나도 따라서 예불을 드렸다. 아직까지는 어색해서인지 옆을 힐끔거리며 절을 하고 일어나는 타이밍을 잡아야 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 잘 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