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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25. 2023

2022. 06. 02

1부 1-4화

 

 땀범벅이 된 상태로 토트를 컨베이어 벨트에 연신 올리기를 반복한 끝에,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일을 한 지 2시간 40분이 된 무렵이었다. 식당은 1층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다시 내려가야만 했는데,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계단을 타고 1층까지 내려가야 하나 싶어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식사 시간에는 예외적으로 엘리베이터 탑승이 허용되었다. 식사 시간은 40분간이었다. 10시 40분부터 11시 20분까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밥을 먹고, 쉴 수 있나 의문이 들었지만 편의점에서 일할 때 십분 컷으로 밥을 먹던 걸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계단을 같이 올랐던 아주머니에게 시계가 있어서 시간을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투명 크로스백 안에 든 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알려주었다. 집품을 할 때는 PDA 상단 부분에 시간이 나와 있어서 시간을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되었을 때는 PDA를 반납해야 해서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시계가 없으니 확실히 시간을 알기가 힘드네요.”

“그렇죠. 시계는 있어야 해요.”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에 탄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층은 일하며 시간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1층을 제외하고는 다 PDA를 다루는 업무여서 시간을 알 수 있지만, 1층은 시계가 있긴 하지만 보기 힘든 위치에 있어서 개인 시계가 있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사실, 아날로그 시계를 하나 주문해 놓긴 했는데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일하는 시간에 배송 도착 예정이어서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다행히도 양쪽 벽에 시계가 붙어 있어서 시간을 체크해 가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식당의 메뉴는 깍두기, 배추김치, 생당근, 오이, 양파 장아찌, 감자탕국이었다. 메뉴를 보더니 밥을 푸던 아주머니 한 명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에이, 오늘은 죄다 풀이네.”     


 풀로 가득한 식단을 보고 나 역시도 실망했다. 고기라고는 국그릇에 담긴 감자탕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뼈의 비중이 더 높아서 고기의 양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걸 먹고 대체 어떻게 힘내서 일하나 싶었지만, 배가 고프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들어가긴 했다.     


 네 개의 책상이 마주 보고 붙어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 식당 테이블은 코로나로 인해서 각각 아크릴판이 쳐져 있었는데, 마주 보고 밥을 먹는 형태가 아닌 대각선으로 보고 앉는 형태였다. 본인의 바로 앞자리는 띄우고 앉는 형태. 내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나서인지 대각으로 앉은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나질 않는데, 다른 얼굴 하나는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마치 오다기리죠와 같은 장발 헤어스타일을 한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매우 고독한 표정을 짓고서 밥을 먹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기계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만이 달랐다. 나는 힐끔힐끔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사실, 보려고 본 건 아니었고 그가 시계가 있는 위치에 앉아 있었기에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40분의 식사시간 중 20분이 흘렀고, 식사를 마무리했다. 사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시간을 계속 체크하느라. 메뉴도 온통 풀밭이라 잘 들어가지 않기도 했고.     


 계단과 시계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 친해진 아주머니가 식당 옆에 휴게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식당 옆에 위치한 휴게실에는 음료 자판기 하나와 안마의자가 여러 대 있었는데, 이미 그 의자는 먼저 자리를 선점한 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내가 앉을자리는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와야만 했다.    

 

 식사도 했으니 식후땡도 해야 했다. 흡연실이 어디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1층 내부에 있는 노란색의 간이 계단을 타고 흡연실에 갔다. 대인원이 일해서일까. 수십 개의 재떨이가 각을 맞춰서 늘어서 있는 걸 보니 갑자기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에 유일하게 이곳에서 사람들이 바깥공기를 쐬겠구나 생각하니 분명히 외부에 있음에도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다.     


 흡연실도 다녀왔으니 이제 다시 올라가야 했다. 시계가 있었다면 시간을 보고 적당한 때에 올라가면 되겠지만, 내게는 시계가 없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려올 때 탔던 엘리베이터의 위치도 헷갈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단을 타고 4층까지 오르기로 했다. 12층 같은 4층을 다시금 오르다 보니 아까 먹었던 밥이 다 소화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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