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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y 28. 2023

2022. 06. 02

1부 1-5화

 

 헥헥 거리며 4층에 도착해 구석에 ‘임시 휴게실’이라는 종이가 붙여진 천막에 들어가 보니 천막 안에는 놀랍게도 에어컨이 한 대 있었다. 천막이어서 그런지 천장형 에어컨은 아니었지만, 에어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적이었다. 에어컨과 조금이라도 등지는 위치에 앉으면 바람이 잘 오지 않는 게 단점이었지만, 찬바람을 잠시나마 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천막에는 에어컨 말고 정수기도 하나 있었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계도 하나 달려 있었다. 그것 외에는 의자뿐인 단출한 구성의 휴게실이었다. ‘임시 휴게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말이다. 쉬는 시간을 5분 정도 남겨두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휴게실을 나섰다. 화장실은 ‘임시 휴게실’과 극과 극의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식사 시간이 딱 맞추어 끝이 났는지, 사람들이 4층의 중앙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중앙에 모여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PDA를 받고 업무를 시작했다. 이제 11시 20분이 조금 넘은 시각. 퇴근까지는 아직도 한참이 남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PDA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긴급’이 떴다. 여기서 말하는 ‘긴급’은 보통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집품을 해야 하는 말 그대로 ‘긴급’ 건이었다.      


 처음에 ‘긴급’이 화면에 떴을 때는 토트를 가득 채우지 않아도 자동으로 토트 마감이 돼서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내 PDA에 뜬 ‘긴급’ 피킹의 물건들은 센터의 끝과 끝의 위치에 있었고 나는 연신 카트를 끌며 끝에서 끝으로 계속 뛰어다녀야만 했다.     


 얼마나 뛰어다녔을까. 이제 오징어보다 내가 더 짭조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땀을 흘려 소금기에 절여질 때쯤, ‘긴급’이라는 글자만 봐도 짜증이 났다. 극과 극에서 물건을 피킹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걸 쉬지 않고 반복하니 체력도 바닥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긴급’은 노동자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물건은 그나마 천천히 담아도 되지만, ‘긴급’은 빨리 처리하라고 계속 화면에 떠서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주었다. 평소에 C사의 로켓 배송을 애용하긴 했지만, 이렇게 로켓 배송이 노동자가 직접 발바닥에 불이 나게 로켓처럼 뛰어다니며 물건을 피킹 하는 것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로켓처럼 뛰어다니며 피킹 한 물건들은 아마 누군가에게 로켓 배송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겠지.     


 기진맥진한 상태로 토트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기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휴식 시간이 되었다. 2시부터 2시 20분까지 휴식시간이었다. 20분간의 휴식 시간 동안 모든 층의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었고, 전 층이 똑같이 휴식을 취했다. 휴식 시간도 되었으니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1층의 외부 흡연실은 너무 답답했으니까.     


 센터 바로 앞의 도로가의 인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일렬로 앉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치 소규모 굴뚝을 보는 느낌이었다. 새벽의 안개보다 더 무성하게 느껴지는 연기의 향연을 바라보며 묘해졌다.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흡연을 할 때도 누구와도 대화가 없이 단절된 순간들.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저 우리는 출근 명찰에 나와 있는 바코드와 숫자로만 명명될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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