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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n 07. 2023

2022. 06. 17

1부 3화

 

 여러 번의 근무를 통해 이제 ‘싱글’ 카트 업무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공정의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했던 업무는 OB라고 불리는 ‘출고’ 피킹 업무였는데, 이번에는 IB라고 불리는 ‘입고’ 진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3층에서 출석체크 후 줄을 서 있는데, 파란 조끼를 입은 사람이 오더니 나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오라고. 그래서 그를 따라 4층으로 올라갔더니 전혀 새로운 업무가 펼쳐졌다.   

  

 4층에서 9개의 토트 속에 담긴 물건을 L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PDA로 스캔을 하며 빈자리에 물건을 진열하는 게 오늘 내가 맡은 업무였다. 토트를 하나만 카트에 올려도 무게감이 엄청난데, 무려 9개의 토트가 올려져 있는데다가 물건이 꽉 차 있어서 그런지 무겁기도 하면서 높이도 높아서 시야도 가려졌다. 키가 작은 나는 끙끙거리며 양 옆으로 시야를 살피며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진열해야만 했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토트를 비울 때마다 계속 토트를 모아놓는 곳에 가져다놓으러 왔다 갔다 하곤 했는데, 그게 정말 번거로웠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비운 토트를 한꺼번에 가져다 놓는데 나만 비울 때마다 가져다 놓으니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진열 업무는 나름대로 재밌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자리가 비어 있길래 진열하려고 PDA로 바코드 스캔을 하니 물건의 종수가 초과 되었다고 진열 할 수가 없다고 화면에 알림이 떴다. 크기가 크던 작던 4종까지만 한 칸에 진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A존에는 작은 물건을 진열해야 하고, B존에는 큰 물건을 진열해야하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도 있었다.     


 스캔하는 자리마다 죄다 PDA에 종수 초과가 떠서, 골치가 아팠지만 겨우겨우 자리들을 찾아서 토트를 전부 비웠다. 토트가 전부 비워지자 그제야 앞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벼워진 카트를 끌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트가 하나당 2.5kg니, 9개의 토트만 해도 이미 22.5kg였는데 거기에 물건까지 가득 실려 있으니 전체 무게는 100kg에 육박했다.     


 카트의 무게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열 업무를 하기 전에 안전을 위해 안전화를 신어야 한다고 해서 4층 구석에 있는 신발장에서 안전화를 꺼내서 신었는데, 안전화는 신자마자 발이 아팠다. 무거운 물건이 떨어져서 발을 다치는 걸 보호하기 위해 신발의 앞창에 쇠가 들어있다고 했는데,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움직일 때마다 발이 무거웠다. 물건이 떨어져서 발을 다치기 전에, 안전화 때문에 먼저 발이 다 망가질 것만 같았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일을 하다가, 식사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입고팀이 모이는 중앙에서 인원 파악을 하고 식당으로 갔다. 출고 업무를 할 때는 밤 10시부터 10시 40분까지 혹은 10시 40분부터 11시 20분까지로 교대하듯이 두 타임으로 식사 시간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입고 업무는 식사 시간이 한 타임으로 통일 되어 있었다. 밤 10시 20분부터 11시까지.     


 쉬는 시간 또한 달랐다. 이제까지 나는 모든 공정이 동일하게 새벽 2시부터 20분간 휴식을 가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입고는 1시 40분부터 2시까지 쉬는 시간이었다. 모든 컨베이어 벨트가 2시가 되면 멈추어서 센터안의 모든 사람이 다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줄 알았는데, 남들이 쉬는 동안에 반대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입고에 있었다. 오늘은 그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출고와 다른 시간에 밥을 먹고, 쉬고, 일을 하며 9시간이 흘렀다. 9시간동안 무거운 안전화를 신고 다니다보니 퇴근 할 무렵에 원래 신고 왔던 운동화로 갈아 신자 마치 맨발로 바닥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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