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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n 18. 2023

2022. 06. 28

1부 5-2화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나를 포함해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1층으로 내려가게 됐다. 이렇게 무더기로 내려가는 일은 처음 봐서 대체 무엇 때문에 부른 건가 싶었는데, 1층 곳곳에 가득 쌓인 박스를 정리하라고 했다. 내가 있던 구역에는 회색 옷을 입은 그레이 아저씨와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있었고, 우리 셋은 한팀을 이루어서 쌓인 박스를 뜯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많은 박스가 대체 다 어디서 온 건가 싶을 정도로 산더미를 이룬 상태로 쌓여있었다. 한 시간 안에 정리를 다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그레이 아저씨가 워낙 손이 빨라서 우려와 달리 시간 안에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도구 없이 박스를 뜯으려니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곤욕스러웠는데, 어디선가 그레이 아저씨가 가위를 구해 와서 내게 내밀었다.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박스를 뜯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도구를 사용해 박스를 뜯는 속도보다 그레이 아저씨의 뜯는 속도가 더 빨랐지만. 퇴근길에 그레이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손이 빠르세요? 제가 하나 뜯고 있을 때, 세 개를 뜯고 계시던데요.”

“카페에서 오래 일해서 박스 뜯는 게 전문이에요.”     


 카페와 박스를 뜯는 속도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러려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통근버스를 타고 진주에 도착해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회색 머리의 한 청년과 계속 눈이 마주쳤다. 그 청년은 때때로 눈이 마주칠 때면 씨익 웃었는데, 이른 새벽에 킥보드를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부지런히 일을 하러 가는 걸까.     


 버스가 신호에 걸린 사이 청년의 킥보드는 마치 신기루였다는 듯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무사히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내 자신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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