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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n 21. 2023

2022. 06. 30

1부 6화

 

 다시금 입고 업무를 하게 됐다. 열심히 빈 로케이션을 찾아서 물건을 진열하다가, 9시 30분부터는 재고 조사를 했다. 재고 조사는 각자 배정받은 구역의 한 줄에 있는 물건들의 개수, 파손된 상품, 바코드가 다른 상품, 사진과 다른 상품을 PDA로 확인하고 종이에 수기로 체크하는 일이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재고 조사를 하면서 쪼그려 앉아 맨 밑의 칸을 체크하고 일어설 때마다 현기증이 일었다. 게다가 한 줄 마다 얼마나 많은 로케이션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맨 위의 칸의 물건을 체크할 때면 손이 닿지 않아서 스텝스툴(밟고 올라갈 수 있는 동그란 스툴)을 계속 사용해야만 했다.      


 한참을 체크해도 여전히 많은 로케이션이 남아있었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직도 쭈그려야 할 로케이션도, 밟고 올라가서 체크해야 할 로케이션도 많이 남았다. 물건 또한 어찌나 종류별로 많은지 바코드를 계속 PDA를 통해 대조해서 보다보니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재고조사를 할 때마저도 안전화를 신어야 해서 더 힘들었다. 입고는 무조건 어떤 업무를 하던지 간에 안전화를 신어야 하는 게 디폴트인 것 같았다. 재고 조사는 무거운 카트를 끌고 물건을 진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신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이해하려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곳이니까. 그냥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것 외에 노동자에게 다른 권한은 없기에.     


 한참 재고조사를 하고 있는데, 퇴근 30분전에 1층에서 호출이 왔다. 박스 정리를 하라는 것. 퇴근 30분전에 내려오라는 호출을 받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4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나겠구나. 요 며칠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계속 일이 끝났다. 그렇다고 해서 공식적인 연장도 아닌, 그런 애매한 순간들. 몇분 더 초과하는 건 추가적으로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예상처럼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퇴근을 했다. 출퇴근 어플에서 퇴근을 찍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통근버스에 올라 에어컨 바람을 쐬니 온몸이 노곤해졌다. 흠뻑 흘린 땀이 다 마를 때쯤 진주에 도착했고, 밝은 하늘 아래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내버스 안에는 남들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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