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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l 05. 2023

2022. 08. 12

1부 10-2화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고, 테이프를 뜯는 소리가 돌림 노래처럼 울려 퍼지는 포장 업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시간은 잘 갔다. 그리고 하나의 장점 아닌 장점도 있었다. 각각의 포장대에는 조그마한 선풍기도 있었다. 선풍기를 튼다고 해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게 아닌 더운 바람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포장 업무는 일단 집품해서 내려온 L카트에 있는 토트를 스캐닝하고 그다음에는 토트나 카트에서 물건을 꺼내서 스캐닝을 하면 모니터에 포장을 해야 할 물건의 개수와 포장 유형이 나왔다.   

   

 개수에 맞게 스캐닝을 마치고 나면 영수증 기계처럼 생긴 송장 출력 기계에서 운송장이 출력되었다. 포장 유형은 박스면 B로 표기되었고, 비닐이면 PB, TPB로 나왔다. 깨지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는 상품은 취급주의 표시가 떴는데, 종종 파손의 우려가 있음에도 취급주의 표시가 뜨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건 요령껏 알아서 파손이 되지 않게 잘 포장해야 했다.      


 정해진 유형에 따라 포장을 하고 나면, 출력된 운송장을 붙이고 스캐닝을 통해 출고 검증을 하면 일련의 과정은 끝이었다. 검증을 마친 상품은 박스면 컨베이어 벨트에 바로 올리고, 비닐 상품이면 토트에 나누어서 담아야 했다.      


 송장에 적힌 일반과 간선으로 구분해서 토트에 담는데, 비닐도 컨베이어에 올리면 편할 텐데 싶었지만 비닐 같은 경우는 아마도 상품의 모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단 하나 예외가 있긴 했다. 비록 비닐이지만 송장에 일반으로 표기된 상품이고, 어느 정도 사이즈가 큰 네모난 박스형 상품인 경우에는 컨베이어에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SIOC라고 송장에 표기된 상품들은 유형을 나누지 않고 바로 운송장을 붙여서 컨베이어에 실을 수 있어서 편리했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SIOC를 가져가서 출고 검증을 하고 싶어 했다. SIOC는 따로 포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운송장만 붙이면 되었으니까.     


 그 덕분에 포장을 위해 줄 세워진 카트들은 죄다 세제 위주로만 남았다. 집품을 하면서도 계속 세제를 들었는데, 포장을 하면서도 세제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했다. 사람들이 죄다 세제를 기피하다 보니 내 몫으로 남은 게 세제뿐이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세제가 가득한 카트를 연신 내 포장대로 끌고 와야만 했다.     


 마치 무한 세제 지옥에 갇힌 것 마냥 끝없이 세제를 들어서 포장대에 올려 포장하다 보니 전쟁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나는 퇴근 직전까지 수많은 세제들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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