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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Sep 06. 2023

2022. 11. 01

1부 23-1화

 

 예상은 했지만 언제나 정기 배송일은 하드코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 배송일에는 많은 인원을 뽑기 때문에 반가운 얼굴들을 대거 만날 수 있어서 마치 물류센터 동창회 같은 기분도 든다.     

 역시 정기 배송일답게 시작부터 빡셌다. 싱글 카트로 스타트를 끊고 미친 듯이 반 팔레트가 넘는 세제를 계속 날랐다. 이젠 세제의 무게가 적응이 될 법도 하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두 시간 정도 싱글 카트 작업을 하고 나니 존배치가 떠서 A카트를 끌고 돌아다녔다.     


 이번에 한 존배치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였다. 기존의 존배치는 토트에 물건을 빠르게 싣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되는 거였다면, 이번의 존배치는 대만에서 들어온 주문 건이어서 컨베이어 벨트에 싣지 않고 메인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메인으로 가져오는 만큼 포장도 대만 건은 따로 한다고 했다.     

 

 대만 주문 건을 집품하면서 마치 우리가 알리나 아마존, 타오바오 같은 데서 해외 직구 할 때도 이런 형태로 집품을 하고 소비자에게 전달이 되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풀필먼트(판매자 대신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을 집품하고 포장 후 배송까지 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물류 시스템 자체는 나라는 달라도 비슷할 테니까.     


 한창 존배치를 하고 있는데, 1층에서 호출이 왔다. 포장을 하라고 부른 것 같았다.     

 

“1층에서 석류 씨가 필요하다네요. 이 정도면 계약직 해야 될 거 같은데.”     


 캡틴의 말에 대답 대신 살짝 웃어 보이고는 1층으로 내려갔더니, 항상 나를 포장으로 호출하는 캡틴이 빈 포장대로 안내하더니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오늘도 계약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늘은 반드시 설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지 평소보다 더 오래 옆에 붙어 계약직에 대한 장점들을 늘어놓았다.  

   

“석류 씨, 계약직만큼 많이 나오는 거 알죠? 계약직 하면 좋은 점도 많아요. 언제까지 단기로만 할 거예요?”   


 그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나는 계약직이 출근하는 만큼 많이 나간 적이 없다. 그러나 단기치고는 꽤 많이 나가고 있는 건 맞기에 아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계약직을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여전히 옆에 서 있었고, 아직까지는 계약직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하자 그제야 내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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