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0년 10월호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우리 집은 대학가 근처에서 작은 일본식 우동집을 했다.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었지만, 혼자 온 손님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게 1인 테이블도 있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가게에 나가 그날 그날 판매할 우동 재료를 손질하곤 했다. 내가 일어나 학교를 가는 시간보다 훨씬 빨리 가게에 나갔던지라 아침에 엄마의 얼굴을 보기란 꽤 힘든 일이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옆을 돌아보면 엄마의 자리는 비어있었으니까.
그때 우리는 가게 뒤편에 붙어있는 있는 집에 살았다. 가게 뒤편에 집이 있는 만큼, 집과 가게가 연결된 문이 있었는데 나는 매일 학교를 갈 때도, 학교를 마치고 올 때도 일부러 가게 옆의 대문 대신 그 문으로 다녔다. 그 문으로 지나다니면 잠시나마 엄마를 더 볼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오픈형 주방이라 엄마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심심할 때면 그 모습을 앉아서 구경하기도 했다. 도마에 일정한 속도로 탁탁 재료들을 써는 경쾌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배가 고파졌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면 엄마는 나를 위해 우동을 만들어주었는데, 그 맛이 아직도 입안에서 감돈다.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만든 따끈한 우동과 깊은 국물 맛. 밍밍하지도, 그렇다고 짜지도 않은 적당한 간이 맞춰진 국물이 적절하게 배어든 탱글탱글한 우동 면발은 이제까지 내가 살면서 먹은 면발 중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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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갈 때마다 언제나 한 끼는 우동을 먹기 위해 우동집에 갔다. 현지에서 먹는 우동은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감을 품으며 가게에 가지만, 애석하게도 항상 기대감을 배반당하는 느낌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우동보다 맛이 없었으니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이 만든 오리지널 우동보다 한국인인 우리 엄마가 만든 우동이 더 맛있다는 게.
어떠한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고 머릿속에 강렬히 자리 잡는다. 내게 있어서는 엄마가 만들어준 우동들이 그랬다. 그 맛이 하나의 기준점처럼 박혀있어서 그런지 아무리 맛있다는 우동집을 가도 기대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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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 딸답게 나는 그 시절 ‘우동 한 그릇’이라는 책을 읽기도 했었는데, 읽을 당시에는 감동을 받으며 울었지만 지금은 감정이 메말랐는지 우동을 한 그릇 시켜놓고 여럿이 나눠 먹으면 가게 입장에서 얼마나 손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으며 계산적이 된 걸까. 어릴 때 둘리는 선이고, 고길동이 악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악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