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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Mar 06. 2024

2023. 10. 08

1부 62화

 

 오늘은 분류장에 남자 두 명만 내린다고 했는데, 급하게 바뀌어서 남자는 한 명만 내리고 다른 한 명에 내가 뽑혔다. 나를 내리기 위해서 1층에서 캡틴들끼리 회의를 했다고 했다. 원래대로 남자를 두 명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한 명만 내리고 나를 내릴 것인지.      


 간선을 비롯해서 분류장의 모든 업무를 전천후로 다 할 줄 알아서 그런지 결국 내가 뽑혔는데, 뭔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만 뽑는 날도 남자를 대신해서 분류장에 가게 되다니. 그만큼 내가 분류장에서 일당백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     


 물량이 적어서 A열에 테스트로 두 명만 세우고, B열 위주로 돌렸는데 역시 라인을 하나만 돌리면 분류장이 터지지 않을 상황임에도 터지고 만다는 걸 다시 또 경험했다.     


 나는 B열에서 간선을 빼는 걸로 시작했는데 간선이 초반부터 많이 쏟아져서 골치 아팠다. 식사 시간에 뒤집는 분이 밥을 먹으러 가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는 뒤집으면서 간선을 빼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아예 뒤집기로 자리를 바꾸었다. 뒤집기를 하던 분이 내려오는 물건들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거의 뒤집기를 하지 못한 상태로 물건을 내려 보냈으니까. 물건을 뒤집을 공간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컨베이어를 가득 메운 상태로 뒤섞여 내려와서 뒤집기를 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해서 뒤집으면서, 간선도 같이 뺄 수 있는 것들은 뺐다. 내가 앞에서 그렇게 조금이라도 도와야 뒤의 사람이 수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간선 타임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일반 건만 내려오기에 간선에 서 있던 분과 자리를 바꿔서 많이 나오는 지역별 글자인 ‘루’와 ‘진’을 따로 뺐다.      


 중간에서 많이 나오는 지역들을 빼주어야 2차 분류대에 산더미처럼 물건이 쌓이지 않으니까. 남자를 한 명 덜 내리고 나를 내린 캡틴들의 선택은 어찌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오늘도 고군분투하면서 분류장이 터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구입한 개인 장비의 값은 톡톡히 다 뽕을 뽑은 느낌이다. 안전 장갑은 절연 부분이 다 벗겨졌고, 안전화는 깔창이 닳을 정도로 부지런히 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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