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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pr 26. 2024

2024. 01. 19

2부 18화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근무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옥천에서 일하며 느낀 것들을 따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 매번 통근 버스를 탑승할 때마다 탑승했다고 탑승 문자를 꼭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탑승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통근 버스를 탔어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체크되기 때문에 아웃소싱 팀장에게 꼭 통근 버스 탑승 후에는 탑승했다고 문자를 보내야 한다. 아마도, 출근을 신청해놓고 늦잠이나 지각으로 인해서 오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이렇게 확인을 받는 것 같다.     


 2. 현장에 도착하면 출퇴근 어플을 켜서 출근 완료를 위해 안면 인식을 하고, 휴게 시간 시작을 눌러야 한다. 휴게 시작을 누르지 않으면, 나중에 따로 휴게 미시작 명단이 올라가서 반장이 왜 휴게 시작을 누르지 않았냐고 면박을 주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면 인식 후에 꼭 잊지 말고 휴게 시작을 눌러야 한다.     


 3. 보통 평일의 현장 가동 시간은 저녁 8시인데, 7시 40분에 조회를 위해 모이라고 한다. 근데 막상 조회를 가면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고 사람을 세워두기만 한다. 고작 전달 사항이라고 해봤자 오늘은 어느 허브가 쉬는지, 입고된 차량 수는 얼마인지 그것만 이야기하는데 그 두 마디를 듣기 위해 멀뚱멀뚱 시간을 낭비하듯이 서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일을 시작하면 쉴 시간도 거의 없어서, 시작 전에라도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은데 말이다.     


 4. 하차를 시작하면서, 소형 상품이 담긴 마대 자루를 3층으로 보내는지 따로 빼놓는지 이야기해 주는데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가 않는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하차 시작!”이라는 말도 종종 잘 안 들려서 눈치껏 상황을 살피며 돌리고 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현장인데, 잘 들리는 게 이상 한건지도 모르겠다.     


 5. 레일 위로 다니지 말라고,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관리자와 고인물들은 전부 레일 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는 것도 문제다. 말로는 안전사고 예방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그걸 지키는 사람은 따로 있고 지키지 않는 사람도 따로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6. 분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분류는 알리 직구 상품들과 귤이었다. 알리는 각 상품 별로 송장의 글씨 크기가 다 달라서 힘들었고, 귤 같은 경우에는 체력적으로 가장 힘에 부치는 새벽 시간대에 항상 트럭이 접안되기 때문에 언제나 고되다.     


 7. 매일 차가운 밥과 반찬, 국도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다. 게다가 간도 제대로 하지 않는지 미역국이 매운 날도 있었다. 반찬은 김치를 제외하고는 2종이고, 국만 거의 한강 수준으로 퍼주는데 친구에게 식단 사진을 보냈더니 “교도소 밥이 더 낫겠어.”라고 말했을 정도로 부실했다. 몸을 쓰는 일인데 이렇게 식사가 차갑고 부실해도 되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꼭 탄산을 먹어야만 그나마 소화가 됐다.     


 8. 12시를 기점으로 여자 화장실에는 비치된 휴지가 다 떨어져서 없다. 그래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휴지가 없을까 봐 여행용 티슈를 항상 챙겨갔다. 게다가 물도 찬물만 나와서 손을 씻을 때마다 손이 어는 느낌이었다. 화장실 자체도 찬 공기로 가득 차 있어서, 동파가 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9. 원칙적으로라면 두 시간에 한 번씩 10분씩 교대를 해준다고 했는데, 하차자는 두 명이서 번갈아가면서 가면 되니까 어느 정도 그게 시간에 들어맞지만 분류자는 아니다. 교대 시간도 들쭉날쭉하고, 교대를 해주지 않으면 화장실도 못 가는 상황이다. 교대를 해줄 사람이 없던 날에는 12시간을 일하면서 딱 두 번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 그날은 화장실을 가기 힘들어서 목이 말라도 물도 거의 못 마시고 일했다. 목이 마른 걸 참는 것도 힘들지만, 만약 생리라도 하는 날이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열악하다. 휴게 시작 버튼을 눌렀는지 챙기기 전에 교대나 제대로 해주고 그런 부분을 신경 쓰면 좋겠다.     


 10. 매일 현장 가동 시간이 적힌 조악한 텍스트가 담긴 이미지가 업무 카톡이나 아웃소싱 업체 팀장의 문자로 오는데, 거기에 보면 냉난방 상시가동이라고 적혀있다. 언제 상차를 하던 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냉난방 상시가동이라는데, 여긴 겨울에는 냉방만 상시가동이네요.”

“그러네. 여름에는 난방만 될 거 아냐. 냉난방을 계절에 맞게 해야지.”

“그래도 어쨌든 냉난방 상시가동이 되긴 하네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걸로요.”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허브. 하루라도 일해 본 사람은 그곳의 온도를 다 안다. 냉난방 상시가동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상차는 어쩌면 난방 기계로 따뜻한 바람을 조금이라도 불어넣을 수는 있겠지만, 하차 같은 경우는 항상 도크를 열어두기 때문에 강추위만 가득해서 겨울에도 ‘냉방’뿐이다.     


 11. 마지막으로 잘 모르는 사이임에도 아무에게나 반말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게 기분 나쁘다.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면서 일하는 기분이 매일 든다. 아무리 일이 힘들고 고된 상황이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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