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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지수

기억의 단상 2022년 6월호

by 석류


매년 봄이면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게 있다. 바로 흩날리는 꽃가루. 꽃가루가 뿌옇게 세상을 뒤덮을 때면 어김없이 코와 목이 간질거렸다. 올해 봄도 다르지 않았다. 전혀 달가워하지 않음에도, 꽃가루는 가정 방문처럼 나를 찾아왔고 선물로 콧물과 간헐적 기침을 선사했다.


환기를 하려고 열면 쏟아지듯 날아드는 꽃가루 때문에 창문을 열기도 어려웠지만, 꽃가루가 괴롭다고 해서 아예 환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괴로움을 참고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노랗게 내려앉은 송화가루가 오늘도 내게 인사했고, 나는 물티슈로 창틀을 닦아내며 초록창을 켜서 꽃가루 지수를 검색했다.


오늘의 꽃가루 지수는 높음이었다. 꽃가루 지수가 높음이라면 그만큼 더 많은 꽃가루가 유입되기 때문에, 절대 오랜 환기는 금물이었다. 금방 창문을 닫을 걸 알아챈 걸까. 방금 닦은 창틀위로 다시금 샛노란 꽃가루가 쌓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물티슈를 새로 한 장 뽑아 꽃가루를 또 닦아냈다.


기나긴 꽃가루와의 전쟁은 5월 중순이 지나서야 겨우 휴전이 되었다. 꽃가루 지수는 이제 매일 낮음을 기록하고 있었고, 창문을 열면 들어오던 꽃가루의 양도 눈에 띄게 줄었다.


눈에 띄게 줄어든 꽃가루의 양만큼이나 내 코와 목도 정상화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콧물도 나지 않고, 기침도 나지 않았으니까.


물론, 내년 봄이 되면 이 사이클을 어김없이 반복하겠지만 그래도 올해 봄도 어떻게든 버텨냈구나 싶어서 내 자신이 장하게 느껴진다. 부디 내년 봄에는 꽃가루 지수가 낮음인 날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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