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2023년 4월호
처음 미옹 언니네 집에 갔던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날은 정말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점심으로 햄버거에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미옹 언니의 집으로 갔다.
처음에 우리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덥지만 하늘이 너무도 아름다운 날이었기에 옥상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옥상에 앉아 그림처럼 하얗고 맑은 구름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하이볼을 마시던 순간은 청량함 그 자체였다. 안주로 언니가 내어놓은 수박을 보니, 여름의 빛깔이 더 선연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옥상에서 보이는 남산 타워뷰도 너무 좋았고. 게다가 좋은 사람도 옆에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었다. 행복이란 가까이에 있다는 걸 느끼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두 번째 방문은 겨울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날이었는데, 언니가 점심으로 나가사끼 짬뽕을 만들어주었다. 아직은 바람이 찬 날씨였던지라 따뜻한 국물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우리는 낮부터 해가 질 때까지 거실에 앉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던 바깥 풍경이 어두워지고 약간의 노을빛이 실내로 들어오던 그 순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더해지는 여러 이야기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큼은 한껏 따뜻했던 날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세 번째 방문도 겨울이었는데, 그 날 나는 예상치도 못한 황당한 일을 겪었던지라 약간은 다운되어 있었다. 그런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줬던 언니.
나는 언니에게 용기 내어 나의 비밀을 털어 놓았는데, 말하면서 약간의 걱정도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언니는 여전히 따뜻했다. 이번의 방문도 저번처럼 꽤 긴 시간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낮에서 저녁으로 바뀌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시간을 인식했다.
이제는 언니가 다른 공간으로 떠나서, 남산 타워가 보이는 그 공간은 추억 속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세 번의 방문을 거치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만날 때마다 조금씩 더 친밀해졌다.
우리가 그 곳에서 함께 나누었던 소중했던 시간들은 마치 반가운 타임캡슐을 열듯이 추억의 기운이 필요한 순간에 앞으로도 우릴 다시 찾아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