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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tasmo Jun 15. 2022

구겨지다. 더 구겨지다

나에 대한 글쓰기 1. 



illust by 홍지혜  <흔들리는 버드나무>



<구겨지다. 더 구겨지다.>


구겨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구겨져 있다. 한 일주일 구겨진 상태를 여기 조금 저기 조금 펴보다가 다시 구겨진 채로 나뒹굴고 있다. 


구겨진 건 왜 아플까? 왜 나쁘다고 생각할까? 나 스스로에게 잔뜩 욕을 해댄다. 남에게도 쉽게 하지 못할 욕을 나에게 퍼붓는다. 그 목소리는 나이기도 하고 내가 아니기도 한다. 상처를 받은 건 타인에게서인데, 나는 나를 욕한다. 무능력하다고 어리석다고, 비참하다고, 바보같다고. 구겨진 마음을 자꾸 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바싹 말라서 펴보려다가 더 바스러지고 더 바스러진 그 귀퉁이를 잡고 울부짖는다. 내 목소리에 내가 깜짝 놀라고 귀를 막는다.


산에 갔다. 산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민망한 낮은 뒷산. 그래도 새가 있고 나무가 있고 막 솟아오르는 새 잎이 있다. 위로를 구하려고 산에 간다. 그 곳에는 모든 게 이 순간이다. 켜켜묵은 나무들도 새 잎을 내고 오래되어 썩어가는 밑둥도 벌레가 숨어 있다. 나는 그 순간에 존재하고 싶어서 숲으로 간다. 잠시나마 흔들리는 잎들에서 바람을 보고 새가 이야기하는 그 순간으로 들어간다. 


구겨진 것. 구겨진 나. 구겨져서 손 쓸 수 없는 나. 그냥 버려버리고 싶은 어떤 존재.

나는 그냥 구겨져 있기로 했다. 구겨진 채로 마냥 울었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도 못하는 존재를 지켜보기로 했다. 바스락 거리는 결들을 그냥 바스러지도록 두기로 했다. 팔도 다리도 없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나는 까만 점이 되어 몸을 웅크리고 뒹굴러다니지만 온기도 없이 그냥 버려진 채로 잠시 바라본다. 내가 할 수 있는 하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

구겨진 채로 존재하는 것. 펼쳐 볼 용기없이 그 속에 적혀있는 글귀 하나 읽어나갈 맘도 없이 그냥 버려두는 것.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더 이상 무엇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 것. 구겨진 것은 그냥 구겨진 것이라고 속삭여 주는 것.





이 글은 노른자책방의 프로그램 중 이기리 작가님께 답장을 받는 4주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쓴 글이다.

요즘 조금씩 글을 모아두려고 한다. 여기저기 흩어지는 글을 모으면 나에대한 퍼즐이 조금씩 모아지고 조금 더 나에대해 윤곽이 잡힌다. 글을 쓰면서도 조금 더 솔직하려고 노력중이다. 솔직한 글을 결국 나의 내면의 문제를 조금씩 빛으로 드러내 조금 더 명확해지거나 바람에 흩날려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주간의 글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솔직해서 어디까지 올려야할지 모르겠지만 ㅎㅎ 조금씩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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