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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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배가 점점 동그라져간다.
까칠한 아내의 성격도 동그라져간다.
천만다행이다.
퇴근하고 나면 동그란 배에 손을 가져다 데 고 동글동글 돌린다.
천만 번을 채우면 넌,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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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한 단어들로, 오늘의 일들을 말한다.
아버지가 말야, 오늘 직장에서 말야, 누가 울었지 뭐야, 어쩌고 저쩌고
아버지가 말야, 오늘 길을 걷다가 말야, 큰 나무를 봤는데 어쩌고 저쩌고
아버지가 말야 오늘 좋은 시를 읽었는데 말야, 최승자 시인이라고 말야, 어쩌고 저쩌고
혼자 실컷 말하고 나면 어느새 나 혼자 동그래져있다.
어? ㅇ-ㅇ?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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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를 익히는 최초의 경험은 태담이겠지,
아가는 듣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지.
아가가 처음으로 발음을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바다, 나무, 사슴, 고래, 풀, 하늘, 숲 같은 낱말이면 좋겠다, 싶어,
혼자 머릿속으로 아가가 '바다'를 발음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내가 먼저 바다가 되는 기분이다.
벌써 '파도'를 발음하는 아가를 상상한다.
먼저 내가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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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들의 숲에서 아가는 어떤 문장을 심게 될까.
어떤 낱말을 처음 익히게 하면 좋을까, 싶어 글귀들을 뒤적이다 보면 ,
모국어의 숲에는 진귀한 낱말들이 넘친다.
오늘도 몇 개의 낱말을 발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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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복, 볼, 봇, 봄, 봄, 봄
온통 봄이다.
#이렇게아버지가된다 #모국어의_숲 #아빠육아 #너_듣고있는거지 #태담하다_울고웃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