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에게

언젠가 보여줄 편지

로로야 안녕.

이곳은 너를 키우며 하고 싶은 말을 저장하는 곳이야.

엄마는 어른이 되고 나서 종종 궁금했거든.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키웠는지. 키우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떨 때 사랑스러웠는지. 언제 힘들었는지 이건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긴 하지만

사소하고 잡다한 것들이 다 궁금했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속마음이.

사람은 서로 오해하잖아. 그중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기 쉬운 사람이 가족, 그중에 엄마 아빠인 것 같아.

언제나 함께 있고 또 사랑하면서도, 밉고 싫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 사람들.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지만 또 서로를 너무 모르는 사람들.

엄마가 너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자아의 근본 뼈대가 된다라.

내가 한 사람의 인생 뼈대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래. 나는 그런 역할을 하기엔 너무 부족한데..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 너의 인생이 그렇게 맥없이 지나가게 할 수 없었어.

그렇게 너를 낳고 맨땅에 헤딩하며 너의 순간들을 나름 단단하게 지켰어. 있는 힘을 다 써서 버텼어.

네가 갓난쟁이 시절에는 어떻게든 해볼 만했는데, 엄마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소통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사정이 달라지더라. 네가 말할 수 있는 단어가 늘어나면서 엄마는 자주 휘청였어.

내 어린 시절 같이, 미묘한 감정들을 너의 얼굴에 비쳤을 때.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고 믿었던 다리가 풀리는 날이 오더라고. 마음과 의지와 상관없이 그날은 오고야 말더라.

   돌이켜 보니, 엄마도 어릴 때 우리 엄마와 그런 순간을 절절히 기다렸던 것 같아. 나를 온전히 바라봐 주는 여유가 생기기를 언제나 기다려왔어.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어. 사느라 돌보느라. 그것이 얼마나 바쁜 건지 이해할 만큼 다 커버렸어.

   어쩌다 너의 동공이 조금은 흐릿할 때. 나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

그럴 때마다 너는 달콤한 것들을 찾았어. "배고파"라면서. 밥은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도 말이야.

심심하다는 말이 배고픔으로 변했고, 배고픈 마음은 잠시 달콤한 촉감 속으로 몸을 피해 숨어야만 한다는 걸.

단단한 너의 표정 뒤에 보드라운 속살들이 포근한 담요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져.

엄마가 말했던가? 엄마도 어릴 때 초콜릿 광이었다는 걸.

    엄마는 이제 좀 힘을 풀었어. 내가 한계를 받아들였거든. 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너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말 같아서 처음엔 너무 괴로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 굳어버린 얼굴과 미간 사이에 주름이 옅어지는 걸 느껴. 그것을 느끼는 만큼 너와 눈을 더 많이 마주치고 함께 웃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알아챘어. 가슴에 딱딱한 부담감이 조금씩 솜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걸 느껴.

   내가 사랑을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도 나에게 사랑을 주더라. 생각보다 아주 많이.

아이러니하지? 완전한 엄마가 아님을 인정하던 순간, 오히려 너와 더 닿을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게 된 것이.

긴장을 풀고나니 이제야 네 존재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 

  로로야 사랑이 뭘까.

나는 너에게 사랑 주고 싶은데, 마음과 다르게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주는 건지 잘 모르겠어.

매일 너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주고, 옷을 세탁해 걸어두고, 현관에서 인사를 하고, 부르면 달려가 고충을 들어주고. 쉼 없이 조잘거리는 말을 흥미롭게 들어주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거? 또 뭐가 있을까.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점찍어 따라갈 수 있는 책이라면 좋을 텐데.

만약 너의 가슴에 사랑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