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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여행을 상상만 해도 들뜨는 것은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이유일 것이다. 낯선 곳에 대한 설렘과 흥분은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떠나기 직전까지 극대화된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면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동반자와의 갈등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것과 좀 다른 성질이다. 짧은 국내 여행에서는 길지 않은 여정과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인지 동반자와의 갈등에 대해 그리 대수롭지 생각했다. 그러나 긴 일정의 여행이나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갈등이 시작되면 돌아올 수 도 헤어질 수 도 없다.

그동안 멀리 떠나는 여행에서는 늘 동반자와 말썽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과 떠났던 동해안 해안 일주에서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하여 여행 중간에 한 2~3일 정도 이야기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1년 전 가족과 떠난 로마 여행에서는 아이들의 끝없는 투정이 들떠 있는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여행의 동반자는 여행의 깊이를 결정하는 존재이다.


22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첫 번째로 실행한 것은 유럽 여행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테마로 유럽 4개국을 15일 동안 다니기로 했다. 전적지와 전쟁 박물관 투어를 계획했고 알고 지내던 선배와 떠나기로 결정했다. 같이 여행하기로 한 선배는 22년 전 군에서 만난 선배이다. 선배가 겉보기와 다르게 소심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선배가 세상과 단절했을 때 연락이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면 여행 동반자로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유럽 여행 후기를 영상과 책으로 만들 계획이었으니, 10년 전부터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는 여행 동반자로 적임자였다.

혼자 떠나려고 계획했었지만 책 욕심에 선배에게 제안했고 마침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선배와 합의가 되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가장 걱정했던 건 서로 잘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도 걱정 어린 조언을 늘어놓았다. 과거 여행에서 동반자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던 터라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여행 일정 짜기와 차량, 숙소 예약에 그런 걸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고민했더라도 무언가 준비를 할 여력은 없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선배에게 농담 삼아 이번 여행에서 선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나치게 조심했던 탓일까? 첫날부터 선배의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았던 손짓과 발짓들은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전에는 하지 않던 궁시렁까지 덧붙어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큰 한숨으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첫 일정인 런던 시내 투어 때부터 1년 전 로마 여행의 아이들처럼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다리 아파”, “얼마 남았니?”, “이 길은 알고 가는 거니?”, “휴~”

뭐 하나 어떻게 하라고 말도 없으면서 일정에 대해 투덜대고 계속 끙끙거린다. 힘드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 첫날인데.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첫날로 끝날 리 없다. 이런 투정과 끙끙거림이 하루하루 지속되어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서로가 말에 조그마한 가시들을 꽂아 내뱉었다. 좁은 숙소에서의 어색한 공기는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흘러 등줄기를 타고 발가락 사이로 서늘하게 흘러 나갔다. 이불속에서 행여나 닿을까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는 ‘이제 좀 그만 밀어’하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선배는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깨어 있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제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의 숨소리와 말과 행동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본 적이 있던가? 그의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시신경과 고막을 괴롭혔다. 사람이 단시간에 이렇게 싫어질 수가 있구나. 그냥 한 대, 딱 한 대만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주고 싶었다.

이 긴장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빨리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아직 10일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프랑스 시골길을 달리는 내내 머릿속은 그 생각 하나였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랑스 시골 전원 풍경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여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배! 난 선배에게 어떤 존재예요?” 차 안에서 시작된 대화는 끝이 없을 것 같은 감자밭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구름 사이로 하루의 마지막 빛을 뿜어내는 해를 배경으로 끝이 났다. 우리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22년 만에 선배의 등을 처음 만져 보았다. 선배의 등은 외로웠다. 선배의 사정 하나, 하나를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은 점점 초라해졌다. 남의 글을 써오며 겪은 10년의 두려움을 난 이해하지 못했다. 선배의 공황 장애는 나약함이라는 액자에 넣어 버렸었다. 최근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배가 안쓰럽기보다는 어른 아이 같아 보였다.

며칠 후 벨기에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갈 무렵 차 안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선배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오열했다. 오열하는 선배가 안쓰러웠다. 괜찮다고. 나는 울지 않으려 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선글라스로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힘들다고 할 때마다 퉁명스럽게 굴어 선배에게 미안했고,

내 기분만 생각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상처를 주었던 가족에게 미안했고,

아버지의 앙상한 팔과 척추 뼈가 다 들어 난 등에게 미안했고, 어머니의 관절염 걸린 손가락에 미안했다. 


그동안 여행에서의 갈등 시작은 동반자의 탓이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의 등을 토닥거리지 못했던 나에게 있던 것이다. 산을 오르다 가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 그 풍경이 늘 거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멋진 장면을 보게 된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 안보이던 장면들이 하나씩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 나와 인생을 동행했던 사람들을 돌아본다. 그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상처와 그리움을 바라본다. 선배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선배의 등을 토닥일 때처럼. 얼마 전 지하철에서 보았던 시각 장애인 아내를 둔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떠오른다. 팔짱을 꼭 끼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각 장애인 아내의 마음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나는 나의 동행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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