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에 달린 잘 익은 포도의 맛이 궁금했던 여우는 손이 닿지 않아 먹을 수 없게 되자, “저 포도는 아주 실 거야.” 하며 쿨하게 뒤돌아섰다. 누구나 여우처럼 눈앞에 있지만 먹을 수 없는 걸 다양한 이유로 합리화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특별히 합리화하고 싶지 않은 궁금한 맛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궁금한 맛을 나에게 남겨준 곳은 영국의 작은 항구 도시 풀 Poole이다.
군 복무 중에 알게 된 선배와 나는 전역과 동시에 그동안 꿈꿔왔던 유럽 여행을 떠났다. 오랜 시간 선배와 이야기 나누었던 2차 세계대전을 -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중심으로 – 주제로 여행을 계획하였다.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벨기에를 거쳐 최종 도착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선정하였다. 총 2주간의 유럽여행은 주로 전쟁 관련 박물관과 주요 전적지 – 노르망디, 바스토뉴 등 - 를 견학하는 일정이었다. 영국에서의 일정은 3일을 잡았다. 이틀은 런던에 위치한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과 처칠 워 룸, 런던 인근 헨던 Hendon에 있는 영국 왕립 공군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마지막 하루는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된 ‘미 101 공수여단 이지중대’의 주둔지와 전차 박물관을 살펴보는 일정으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의 느낌을 느껴보기 위해 배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40대 중반에 찾아온 인생의 간이 정류장에서 유럽행 비행기를 탑승하게 되었다. 영국 런던에서 계획한 전쟁 관련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마지막 일정을 위해 런던 히드로 Heathrow 공항에서 차량을 렌트하였다.이지중대의 주둔지인 올드번Aldbourne을 들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모습들을 찾아보며 이지중대가 식사를 주로 했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볶은 고기가 얹어진 커다란 감자에 버터 몇 조각이 더해지고 감자 옆에 야채로 모양을 냈다. 영국 시골 사람들의 점심은 참 소박하기도 하다. 보빙턴 Bovington으로 이동하여 전차박물관을 견학하였다. 이 곳은 세계 3대 전차 박물관 중 하나로 영화 ‘퓨리’에 출연한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견학 후 풀 Poole 항구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하고 짐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본머스 Bournemouth 공항으로 이동하여 렌트 차량을 반납하였다. 풀 항구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 셰르부르 Cherbourg-octville 항구로 가기 때문에 풀 항구에서 차량을 반납하고 싶었지만, 풀 항구에는 렌트 차량 반납 사무소가 없어 다시 본머스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앞에 벌어질 일에 대한 정보가 없을수록 두려움이 없다고 했던가? 사실 영국에서 처음 운전을 하는 나에겐 런던에서 본머스까지 운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일정이었다. 첫 운전에 5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일정을 넣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차량 운행방향은 우리와 반대이다. 차는 좌측통행을 하고 운전자 위치는 오른쪽에 있다. 영국에서의 첫 운전은 오른손만 사용할 줄 아는 내가 왼손 젓가락질로 밥을 흘리지 않고 먹어야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더구나 풀 항구를 지나서부터는 어두워지며 비까지 내렸다. 런던에서 시작된 5시간 정도의 운전은 나의 좌측 고관절 급성 관절염 수술 다음으로 위험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본머스 공항이 보이기 시작하자 별일 없이 도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차량을 반납하고 공항 로비에서 시원한 콜라를 들이키며 선배와 나는 운전에 대한 서로의 강평을 늘어놓았다 선배의 핀잔과 나의 변명은 안도감과 희열이 섞여 무용담으로 바뀌었다. 한참을 떠든 후에 공항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공항이라 차량 반납 후에 교통편 운행 시간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본머스 공항은 너무 작은 공항이었다. 6시가 겨우 넘었던 것 같은데 버스 운행이 끝났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는 수컷들의 수다는 외국에서 버스를 놓치게 한다. 방금 전 떠나는 버스를 보며 다음에 저 버스 오면 타자고 서로 확인했었는데 마지막 버스였다니 어이가 없었다. 풀 항구는 본머스 공항에서 가깝지만, 대중교통으로 한 번에 갈 수 없었다.
공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사 분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머스 시내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는 것이 현명할지 바로 택시로 가는 것이 좋을지 손짓 발짓과 함께 물었다. 친절한 기사님들은 진지하게 토론을 시작했다. 기사 중 한 분이 몇 가지 내게 물었으나, 이놈의 영국 영어 사투리 악센트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또다시 서로 열띤 대화가 이어졌고 날은 이미 어둑해져가고 있었다. 드디어 금발의 노 기사가 다가와 나에게 두 가지 방법과 그 금액을 종이에 그려가며 차이를 설명하였다. 비용 차이도 별로 없고 기차가 곧 끊길 거라는 말에 택시로 숙소가 있는 풀 항구까지 바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아무래도 나의 어리숙한 영어실력 때문인 것 같았다. 친절한 노 기사는 숙소로 이동하는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3분의 1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선한 눈과 커다란 코를 가진 기사님의 대화 덕분에 영국에서의 첫 운전으로 인한 공포 가득한 기억은 조금씩 사라졌다. 우리 여행의 테마와 영국에서의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전쟁의 흔적과 영국의 교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풀 항구에 도착했다. 풀 항구는 거친 비바람과 차가운 기온으로 우리를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친절 덕분에 저문 해를 대신해 항구의 풍경을 만들고 있는 가로등은 등유 램프처럼 따듯하게 보였다. 도착하고 나니 비로소 안정감이 들었는지 힘들었던 자동차 운전과 꽉 찬 일정에 지쳤던 몸과 마음도 조금씩 힘이 나기 시작했다. 본래의 모습이 잘 보존된 풀 항구의 건물들은 도시가 갖고 있는 오랜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와 오래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사진에 담고 코끝이 찡해질 때까지 항구를 걸으며 비바람을 즐겼다. 8시 정도 되었을까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행 시작한 지 3일 동안 그럴듯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오늘 저녁은 어떤 날보다도 따듯하고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싶었다. 오늘 한 고생을 음식으로 보상받고 싶었다. 입천장을 벗길 것 같은 뜨거운 해산물 수프와 동네 고양이들이 다 모여들 만큼 잘 구워진 생선 요리가 먹고 싶었다. 여긴 항구지 않는가!
우린 신중하게 식당을 찾았다. 이렇게 고생해서 왔는데 인터넷 따위에 우리의 소중한 저녁식사를 맡길 수 없었다. 구글 검색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느낌에 집중하여 건물 하나하나를 살폈다. 그중 눈에 띄는 식당 하나를 발견했다. 그 식당은 초록색 벽과 하얀색 창문들 그리고 삼각형 지붕을 갖고 있는 건물의 1층에 있었다. 그 건물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을 갖고 있었는데, 그 굴뚝은 건물을 고딕 양식의 성당처럼 보이게 했다. 붉은 벽돌 또는 흰 벽으로 만들어진 건물들 사이에 초록색으로 멋을 낸 이 건물은 3층으로 만들어졌다. 식당 이름은 풀 암즈 POOLEARMS 였다. 이번 테마 여행에 적합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런 독특한 양식의 건물에 있고 이색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식당이라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식당으로 향했다. 유리창을 통해 식당 안에서 떠들며 음식과 술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운이 다가옴을 느꼈다. 주문하기 전에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식당 입구에 서 있는 메뉴 간판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때 식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왔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뭐가 궁금하냐는 듯 다가오더니 이 집 정말 맛있다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는 요리까지 추천해 주었다. 할머니가 자리를 떠나면서 우리에게 던진 미소는 우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하였다. ‘이제 따듯한 수프와 기름진 생선 구이를 먹는 거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수프를 생각하니 머릿속까지 푸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식당은 지면보다 살짝 낮아 붉은색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돌계단을 두어 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과 돌계단은 식당을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문을 열자 식당 내부는 정말 제대로 된 집을 찾았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식당 전체는 목재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식당의 천정은 낮았지만 답답한 느낌을 주진 않았다. 오히려 벽에 있는 은은한 백열등과 항구의 옛 모습들을 담고 있는 사진액자들이 잘 어우러져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식당 안에는 바텐더가 있는 바 테이블과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 대여섯 개 테이블은 오랜 시간 식당과 함께 한 듯 자리하고 있었다. 창 옆 좌우에는 자주색 벨벳 느낌의 커튼이 아늑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바는 원목 테이블과 여러 종류의 술병이 붉은색 벽돌과 함께 거친 선원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당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은 나무가 기억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항구의 선술집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손님들의 대화 소리는 기분 좋은 홀 음악처럼 들려왔다. 우린 서로가 이런 식당을 찾아낸 것을 각자의 능력인양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자랑하였다. 오늘의 힘든 일정은 다 이곳을 오기 위함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리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비어 있는 테이블이 하나 있어 그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와 눈을 마주치기는 했는데 그냥 지나쳤다. 손님들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조심스럽게 한 5분 정도를 몸을 녹이며 기다렸는데 갑자기 웨이터가 ‘예약’ 팻말을 가지고 오더니 미안하다고 하며 잠시만 일어서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우리가 무슨 실수를 했나?’, ‘안내받지 않고 그냥 앉아서 맘이 상했나?’, ‘이제 거의 9시가 다되어 가는데 예약이?’ 살짝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선배와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잠시 서있으려니 옆 테이블 노부부가 우리를 향해 여기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노부부는 남은 맥주를 서둘러 마시고는 일어섰다. ‘아니 이런 친절을? 역시 영국은 신사의 나라야!’ 우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함박웃음과 땡큐를 외쳤다. 노부부는 우리에게 서양인들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한껏 지으며 여기 맛있다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식당 안의 풍경과 영국인들의 친절함이 더해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커졌다. 그런데 앉으려고 하니 이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안된다고 하며 다가왔다. 다시 ‘예약’ 팻말을 내려놓으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건 뭐지?’ 순간 당황했다.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노부부도 당황해하면서 그 남자에게 항의를 했다.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왜 그러느냐고 언쟁이 붙은 눈치다. 그 남자는 막무가내로 손사래를 쳤다. 식당 사람들이 우리 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거의 다 맞추어 놓은 퍼즐을 어린 조카가 와서 망쳐버린 느낌이었다. 선배는 내 팔을 잡고 나가자고 했다. 난 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식당 내 손님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 짧고 어설픈 영어 문장들은 초라해 보일 것 같았다.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식당 주인을 바라보며 큰소리 한번 낼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차별. 그렇다 인종에 대한 차별이었다. 내 식당에 아시아인에게 팔 음식은 없다는 뜻이었다. 식당 주인이 팔 수 없다면 우린 먹을 수 없었다. 노부부는 나가는 우리를 보며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과 어깨로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식당 주인을 용서할 수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이해한다고, 당신의 성의는 기억하겠다고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식당을 나왔다. 뒷머리에 쏟아지는 시선들을 느끼며 밖을 나오니 또다시 풀 항구는 정신이 번쩍 나도록 찬바람과 비로 우리를 더 침울하게 몰아쳤다. 우린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욕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한동안 말없이 항구를 걸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기대했던 따듯한 수프와 잘 구워진 생선구이가 자꾸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 하나였는데, 한껏 달아올랐던 나의 기대감은 비바람에 차갑게 식어갔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영어는 욕부터 배웠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욕을 했다면 기분이 좀 나아졌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더 처량하고 비참했다. 사실 좀 무서웠다. 영국 사람들 보기가 무서웠다.
예전에 읽었던 우리나라 외국인 노동자 차별에 대한 기사들이 떠올랐다.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식당에서 쫓겨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는 되는 거와 별개로 씁쓸한 기분은 없어지지 않았다. 서러움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앞에 차별받을 때 극대화되는 것 같다. 순간 영국과 영국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친절했던 공항 택시 기사분들과 식당에서 자리를 양보했던 노부부가 떠올랐다. 모든 영국 사람이 신사일 수는 없는 거였다. 모든 영국이 내게 친절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냥 아시아인이 싫을 수 있잖아.’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에 의해 전사했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시켰다.
선배와 나는 숙소 옆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식당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사에 어울리게 식당 이름도 킹찰스KING CHARLES 였다. 2층 구조의 이 식당은 목재와 벽돌 그리고 고 가구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유럽에서 보고 싶었던 상상 속의 그런 식당이었다. 종업원도 무척 아름다운 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가 원했던 따끈한 수프는 없었다. 우리는 비프스테이크와 생선구이를 대신할 대구과의 생선인 Haddock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선배는 인종차별당할 걸 예상했었는지 준비된 것처럼 인종차별의 역사와 우리의 시각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대영제국의 식민정책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어슴푸레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 맞장구를 치며 분노했지만,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편으론 영국인이 우리를 부당하게 취급했다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불편함보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인종에 대한 차별의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타 인종에 대한 차별과 선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속 어느 한구석에 찝찔한 부끄러움이 남아있나 보다.
분노와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순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흑맥주도 한잔 시켜 분위기와 음식을 즐기려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그런지 음식 맛은 평하기조차 힘든 그런 맛이었다. 이 식당이 이름과 겉보기만 번지르르하고 음식 맛은 형편없는 집인가 하는 생각에 구글 검색을 해보니 나름 유명한 식당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 때문이 아니라 원래 영국 음식이 맛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방금 전 쫓겨난 식당 풀 암즈의 음식 맛이 더 궁금해졌다. 풀 암즈의 음식도 맛이 없을까? 검색해보니 풀 암즈는 해산물 전문으로 지역에서 유명한 식당이었다. 홍합과 새우가 들어있는 토마토 수프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바로 그 음식이었다. 하지만, 여우처럼 ‘이 식당 음식은 보기만 그렇지 다른 영국 음식처럼 맛은 없을 거야’라고 합리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영국 식당에서의 인종차별 경험은 유럽 여행에서 겪은 가장 불편한 기억 중의 하나이지만, 우릴 허락하지 않았던 풀 암즈의 음식 맛은 여행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