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샀다.

C'est parti !

by 환희

나에게 배라고는 내 쇄골에 새겨진 타투 돛단배가 전부였다. 옛날 옛적에 선원들이 먼 길 떠나기 전에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배를 몸에 새기곤 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6년 전, 종이로 접은 돛단배와 종이비행기 타투를 새기고 처음 먼 길을 떠났었더랬다.


살면서 배를 탄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중학생 때, 가족끼리 부산에서 출발해 일본에 온천여행을 갔었을 때랑 4년 전에 말라가에서 탕헤르로 갈 때 탔던 페리, 강화도에서 보문사 가려고 차에 탄 채로 탔던 배, 작년 프랑스 브르타뉴의 작은 섬들을 둘러보며 점심을 먹었던 크루즈 정도다. 적어도 100명 이상을 수용했던 규모의 배들이었다. 그때마다 배는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해 타야만 하는 이동수단이었을 뿐, 큰 감흥은 없었다.






바티는 꽤 오래전부터 내게 배로 하는 여행을 제안했었다. 미지의 것에 대해 언제나 호기심이 앞서는 나는 언제든 고!를 외쳤고 그는 '근데 네가 좋아할지 모르겠어. 거의 극한 스포츠에 가깝거든.'이라고 덧붙였었다.


그는 6살 때 처음 아빠 손에 이끌려 배를 탔다고 한다. 그땐 너무 어려 무섭기만 했었는데 그 후 중학생 때부터 요트를 다루는 수업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배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고, 그를 만나며 나 또한 이 여행을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작년 10월부터 매물로 나온 배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배를 샀다고 하니 주위에서 하나같이 호화로운 요트를 상상했다.


한두 달을 그 안에서 먹고 자며 지낼 배를 찾는 거기에 캠핑카와 비슷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다만 나는 비교적 최신 캠핑카들을 상상했었고 바티와 보러 다닌 배들은 80년대 이전에 생산됐다는 게 차이였다. 요즘 배들은 예전에 생산된 배들에 비해 늑재를 얇게 만들어 더 가볍고 더 빠르나, 덜 튼튼하다는 게 바티의 지론이었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배들은 같은 크기여도 가격이 수십 배가 차이가 났다.


우리가 사는 낭뜨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브르타뉴 지역에 있는 크고 작은 항구에 정박된 배들을 주로 보러 다녔었다. 중고매물 사이트에 올라온 배를 보고 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가서 배를 꼼꼼히 살펴보고 마음에 든다 싶으면 흥정도 해보고 하는 식이었다. 나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중고차를 보러 다니는 게 이와 같지 않을까 싶었다. 종류와 크기와 관리 정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이었다.




작년 11월, 브르타뉴의 한 항구에 배를 보러 갔을 때.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까지 갔다 오는 일정이고 여행자는 우리 둘, 그래서 바티는 최소 6미터 50에서 최대 8미터 30 길이의 배를 찾았다. 개수로 치자면 스무 대 좀 안되게 보러 다녔지만 종류로는 7대를 봤다. 대부분이 70, 80년대에 생산된 배들이었기에 지금까지 관리를 어떻게 했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졌다.


단 내부에 들어가면 길이가 6 미터 건 9 미터 건 매우 축소된 공간에 앞 뒤로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서, 첫 방문 때 숨이 턱 막혔던 느낌이 난다. 나는 키가 작아 괜찮았지만 바티는 꼿꼿이 서면 천장에서 머리까지 20센티도 안 남았다. 바티가 배 주인과 모터나의 상태, 기계 장치 얘기 등을 하고 있으면 나는 주로 화장실이나 내부 구조, 식탁의 상태, 살림살이 등을 살펴봤다. 배에 대해선 문외한인 나지만 에게 내세운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화장실은 꼭 양변기로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고. 사실 6미터 길이의 배들에는 보통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화장실 공간은 있어도 변기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고양이 화장실이랑 똑같이 생겨서 용변을 보고 모래 같은 것을 덮어두면 화학작용으로 녹여 없애는 것까지도 봤다. 신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또 몇 년을 타지 않고 정박시켜둔 배든 최근까지 탔던 배든 간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석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청나게 크고 무겁고 전혀 작동되지 않을 것 같은 휘발유 모터가 내부로 내려가는 계단 뒤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였는데 여행 내내 이 냄새를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우리가 보는 배들은 불어로는 voilier, 한국어로는 범선, 요트이다. 즉 돛을 달아 풍력을 이용해서 항해하는 배이다. 그래서 사실상 모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항구에 들어가고 나올 때에 용이한 접근을 위해 모터를 의무로 달라고 해서 모터를 달게 된거다. 그런데 모터도 30, 40년이나 되다 보니 지금 당장은 작동이 되지만 그 후에 언제 고장이 날지에 대해서는 배 주인들도 장담을 못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게 바닷물을 이용해 열을 식히는 방식이기에 기본적으로 녹이 슬어 있었다.


왕복 100km도 마다하지 않고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 싶으면 보고 왔는데 가끔 허탕을 칠 때도 있었다.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와 사진을 보고 배 주인과 연락해서 디테일한 것들을 더 물어보고 그 먼 거리를 갔던 건데 막상 가서 보니 배의 상태가 영 메롱이라던가 하는. 한 번은 항구가 아닌 누구네 집 정원에 을씨년스럽게 몇 년을 세워 놓은 배를 보러 갔었었다.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싸서 밑져야 본전이라며, 그저 방치돼서 더러운 거라면 이 가격에 사서 우리가 한 달을 걸려서라도 청소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였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내부에 벌집까지 있어 거져 준다 해도 곤란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에 배를 3대 보고 온 적이 있었다. 저 때쯤은 나도 바티의 어깨너머로 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살펴보고 얘기 나누고 하는 데에 보통 1시간은 걸려서, 이 날의 마지막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배의 주인은 할아버지였다. 우리가 봤던 배들 중에 유일하게 2005년 산 야마하, 4 사이클 엔진의 모터가 배의 끝부분에 아웃보드로 자리했고 그래서 배 내부에 들어가도 석유냄새가 나질 않았었고 심지어 깨끗한 양변기를 갖춘 화장실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비 원(Gaby 1)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선 2008년부터 이 배의 주인이 되셨고 지금은 더 큰 배를 살 요량으로 이 배를 팔려고 내놓으신 거라고 했다. 이 배는 나를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 항상 나를 제대로 된 곳으로만 이끌었다, 배를 탄다는 것은 배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거라던지 하는 말들 나는 이미 매료되었다. 저 나이 때의 분들이 은퇴한 후에 온 애정을 다해 애지중지 키운 강아지나 식물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관리한 배는 당장 내일이라도 먼 항해를 떠나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할아버지가 자부하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상태였다. 내부도 반짝반짝 윤이 났다. 배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 보인 푸우 인형과 푸우 목에 걸린 우승 메달이 내 눈길을 끌었었다. 처음엔 인형과 메달 둘 다 할아버지의 손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라톤을 취미로 하신다고 하셔서 메달은 할아버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는, 나는 배를 탄지 얼마 안돼서 잘 ,라고 하셨지만 여태껏 만난 배 주인 중 배에 대한 마음만큼은 단연 최고셨다.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 흥정하고 싶어 하시지도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게 처음이다, 기대가 크다, 우리의 작은 여행기를 책으로 엮어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했다. 다른 배 주인들과 바티의 대화에선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전문적인 거래에 관한 대화만이 오갔었다. 매번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갈 때가 돼서 또 인사를 하는 게 전부였었다. 내가 느낀 게 맞다면 할아버지는 조금은 안심하신 것 같았다. 당신만큼 배를 보살 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우리가 꽤 부합하는 후보자인 것 같았다.


밖이 아주 깜깜해져서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타서 나는 바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까 저 배에 있을 때 우리가 하게 될 여행이 무척 구체적으로 그려졌었어.'라고 얘기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우리는 몇 척의 배를 더 보러 다녔었다. 사실 급할 게 없었다. 겨울이라 매물이 잘 나갈 때도 아니었고. 그러다 한 달 후가 지난 어느 날, 바티는 할아버지가 배를 파셨는지 궁금하다며 대뜸 문자를 보냈다. 나는 속으로 '예쓰!'를 외쳤다. 그런데 웬걸. 바티는 정말 문자 그대로 '궁금해서' 연락을 한 거였고 그 후에 몇 번 더 연락이 오간 후에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두고,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할아버지를 만나 항구 근처 카페에서 계약서를 쓰고 마침내 우리의 배를 갖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선적 증명서 및 항해증'인데 지금은 모든 증명서가 전산 처리돼서 컴퓨터로 입력하기에 이 조그만 수첩은 할아버지가 매도증서와 함께 이 배가 처음 있었던 곳인 라 호셸 La Rochelle 세관 사무소에 보낼 때에 같이 동봉해서 보냄으로써 폐기되었다. 저 곳에서 다시 해안부 Les affaires maritimes 에 모든 서류를 보내고 며칠 후에 해안부에서 우리에게 이 배의 등록서류를 보내주었다.

처음 가비를 방문해서 할아버지와 바티가 얘기를 나눌 동안 저 수첩을 살펴봤었는데 배의 모든 역사가 다 들어 있었다. 역대 주인들의 사진과 그들의 인적 사항 등. 기념으로 가지고 있고 싶었는데 폐기해야 된대서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사진으로 남겨놨다.



바티가 우리 배가 정박되어 있는 항구 Le port d'Arzal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 배는 1970년도부터 1983년도에 생성된 2156척의 '상그리아 Sangria' 중 하나이고 그러니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셈이다. 이 배의 건축가 Philippe Harlé 는 60년대에 프랑스에 항해 유람을 대중화시킨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그 전까지 프랑스에서 개인이 배를 소유하고 여행을 떠나기에는 배 가격이 무척 비쌌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를 기점으로 알루미늄이나 폴리에스테르로 배를 만들게 되며 일반인들도 차를 사듯 배를 사서 유람을 하는 게 가능해졌고 60년대부터 프랑스에 바캉스 기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항해 유람이 부흥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상그리아는 큰 성공을 거둔 배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는 bateau marin이라고 하는데, 큰 파도에도 잘 견디고 멀리까지 항해하는 데에 적합하다는 의미이다. 재미있는 건 Philippe Harlé 가 자신이 건축한 배들에 술 이름을 붙였다는 거다. 바티의 아빠는 그 당시에 '무스카데 Muscadet'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코냑 Cognac' '스카치 Scotch' 등이 있다.


우리는 배를 넘겨받은 날 일반 항구에 있던 배를 근처의 건조 항구 port à sec로 이동시켰다. 여행은 6개월 후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바티는 겨울 동안 배를 물에서 꺼내 선체를 말려두길 선호했고 그 점에 관해선 할아버지도 잘하는 거라며, 이렇게 몇 달간 건조하여 두는 것만으로도 플라스틱 늑재에 생기는 기포(전문 용어로는 osmose)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건조항구의 풍경.




나는 개인적으로 준비라면, 10월부터 헬스를 등록해서 다니고 있고 개인 수영 선생님은 찾다 찾다 포기하고 가끔 바티와 수영장에 가서 수영 비슷한 걸 하고 있다. 바티는 55cm 의 태양열 패널을 주문했고 그 외에도 모터를 떼서 더 튼튼하게 달 수 있는 판을 제작하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키를 조정해주는 장치 régulateur d'allure를 사는 대신 10분의 1 가격으로 재료를 사서 설계도를 보며 만들고 있다.


생애 처음 하게 될 항해 유람인데 에어컨, 냉장고, 샤워실이 갖춰진 배가 아닌, 우리가 몇 달간을 100km도 마다하지 않고 보러 다니고 고른, 한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탔던, 우리보다 나이도 많은 배여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또 경험도 많고 배에 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B와 함께 여서도 다행이다.


유럽에서 요트여행은 꽤 대중적인 편인데 그 중 프랑스만 유일하게 아직도 배를 구입하면 배에 번호가 아닌 이름을 부여한다. 이런 로맨틱함이라니!

이름을 뭘로 지을까 하다가 바티가 먼저 한국어로 짓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우리 둘 다 '바람'이 좋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여행하는 내내 바람을 많이 맞아 앞으로 수월하게 나아갔으면 하고 또 소원한다, 바란다라는 두 번째 뜻도 좋았다. 그런데 막상 Balam이라고 했을 때 발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하던 찰나에, 나는 왜인지 큰 이모 생각이 났고, 이모는 '그럼 바라미로 해!'라고 명쾌한 답을 주셨다.


해양부에서 보내온 Balami 가 선명히 찍힌 서류를 보니 무척 실감이 났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



바티가 용어들 알아 두라며 그려서 내 책상 위에 붙여 두었다. 메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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