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집을 갖게 되었다.

항해에 앞서 갖춰야 할 것

by 환희

4월 초, 바라미에서 첫날밤에 치른 혹독한 신고식에 대비해 이번에는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길을 떠났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따듯한 날씨가 예상된다 했으나 추위에 대비해 안고 잘 수 있는 보온물병 주머니와 수면양말, 라디에이터를 침대 머리맡까지 끌어올 수 있는 연장 케이블을 잊지 않고 챙겼다.


La Roche-Bernard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암벽에 올라가 바라미가 묶여 있는 부표 쪽을 바라봤다. 이 작은 마을은 옛날 옛적 바이킹들의 침략을 받고 한동안 바이킹이 이 곳의 주인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곳의 지형이 자연적으로 요새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경사로를 통해 암벽에 올랐다가 내려갈 땐 꼭 암벽을 타고 내려갔다. 나와 바티도 매번 그랬다. 모두에게 정복 욕구를 일으키는 만만한 높이 탓이 아닐까 싶다. 암벽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볼 때마다 경이롭다. 작년 9월, 처음 이 곳을 찾았을 때 이 작은 마을엔 절반이 배요, 절반이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단순히 고속도로 옆이어서 이곳에서 쉬었다 가는 건지 아니면 바이킹 정신을 쫓아온 건지는 몰라도 길게 늘어선 할리 데이비슨 수십 대와 카페 하나를 다 차지하고선 앉아 있는 가죽재킷과 가죽모자와 가죽장갑을 쓴 그들 또한 볼거리였다.


항구보다 항구 주변에 있는 부표의 정박비가 절반만큼 싸다. 암벽 오른쪽의 첫번째로 보이는 배가 바라미.


부표까지는 항구에 준비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서 이동한다.


이 날 당일치기로 여기에 온 목적은 바티가 돛대 맨 꼭대기에 올라가 상태 점검을 해 보려는 거였다. 그 전 날 등반 장비도 구입했다. 처음 올라가 보는 거라 나한테 잘 보조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오르기 전에 먼저 슈라우드들이 상한 곳 없이 튼튼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꼭 한 번은 했어야 하는 점검이지만 해체하고 녹이 슨 부분을 교체하고 다시 제자리에 고정시키는 과정이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한 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요즘 세상의 요즘 것들처럼 잘 작동되는지 한 번 들여다보는 게 간단하지도 않고 게다가 매우 커다랗고 견고해서 두 사람의 힘이 동시에 필요했다. 그래도 항구 근처인지라 진짜 위기상황에 처하게 돼서 소리를 지르면 구조대가 올 수도 있고, 10분 거리에 철물점이 있기도 했다. 여름에 항해 유람이 시작되면 망망대해에 정말 우리와 바라미뿐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아무쪼록 그 어떤 고장도 나지 않길 바랐다. 전 주인 할아버지가 관리를 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배였기에 모든 과정에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바티가 점검하고 수리를 할 동안 10미터 높이의 돛대를 휘지 않게 잡고 있는 것과 나사를 돌릴 때 윗부분이 같이 돌아가지 않도록 펜치로 잡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이를 악물고 잡고 있어야 할 만큼의 힘이 필요했고 돛대의 무게도 상당했고 해체하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복구시키는 와중에 바티가 못 하나를 물에 빠뜨리면서 극도로 예민해지고 근처 철물점에 가서 비슷한 걸 다시 사 왔지만 길이가 맞질 않아 절망하고 서로 소리를 높이는 오후가 계속되었다.


일단락 짓고 임시고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웬걸. 돛대의 안 쪽에 다 껴놓은 줄 알았던 고무패킹 한 피쓰가 떡하니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에 와서 제자리에 껴 넣는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고 바티는 암벽장비들을 챙겨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바티가 한 번 줄을 당겨 올라갈 때마다 나는 여유가 생긴 줄을 다시 팽팽히 잡아당기고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는 보조를 맡았고 첫 시도라 눈으로 보고 내려오는 것으로 족했다. 총 10분이 걸렸다.

이 날은 이걸 하는 데에만 하루를 다 쓰고 집에 돌아왔었다.


배에서 쓰는 매듭법으로 스프레이 두개를 허리 양 옆에 빠지지 않게 묶고 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바라미를 찾았을 때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올라가 사진도 찍고 녹슨 부분들이 보여 스프레이도 뿌리고 나사도 다시 조였다. 물론 등반 시간도 훨씬 단축되었다.


저녁은 바티가 출발 전에 낭뜨 5일장에서 사 온 파키스탄 음식과 봉지 밥.


다행히 4월 초보다는 덜 추웠고 라디에이터를 머리맡까지 끌어온 탓인지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드리퍼를 챙겨가서 집에서처럼 커피도 내려 마시고, 호텔 뷔페 부럽지 않았다.


오전엔 항구를 산책했다. 최신 요트도 좋아 뵈지만 역시나 제일 눈길을 끄는 건 50년대 이전에 생성된 나무로 된 배들이다. 이 항구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무로 된 배들은 정박비도 받지 않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방문자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인데 정말 그렇다. 바티 말로는 나무로 된 배들은 나무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물이 샌다고 한다. 멋진만큼 관리도 까다롭고 관리비용도 배로 든다고 했다.



이 마을에는 몇몇의 예술가들과 장인들이 모여 사는 거리가 있다. 도자 가게에 들어가 Poulpican이라는 이름을 가진 브르타뉴의 전설 속 요정을 초롱으로 만든 오브제를 구입했다. 색과 표정이 하나같이 다 달랐다. 초를 켤 때마다 소원을 빌라고 했다. 바티는 태양열 패널을 고정시킬 마지막 단계로 인두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금속공예 작업실에 들어가 부탁했더니 흔쾌히 직접 작업을 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에 아저씨가 만드신 수많은 동물 오브제들 중 내가 원했던 고양이를 사서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리하여 새 식구로 바라미에 탑승한 녀석들. 밤에 촛불을 켰을 때 정말 우리를 지켜주는 정령이라도 만난 듯 '아'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을만큼 영롱했다.



배에 돌아와서 태양열 패널을 달자마자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고개를 내밀어서 우리는 신기해했다. 사진에 보이는 태양열 패널 고정대를 바티가 직접 만든 건데 해가 있는 방향에 따라 수동으로 패널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점심은 간단하게 토마토소스 파스타.

이 배에서 선장은 바티이고 나는 요리사이자 선장 보조이다. 선장이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못하게 그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도 내 역할이다. 파스타를 먹다가 바티가 유물에 가까운 수심측정기를 켰는데 제대로 작동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10미터 깊이가 맞는지 추를 내려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근데 강이라 바닥이 물러서 정확한 측정이 어렵고 또 추가 더러워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추를 꺼내려고 하길래 내가 손사래를 치며 '안돼에! 방금 전에 네가 강바닥이라 정확하지 않을 거라며!! 뭣하러 지금 하려고 해! 나중에' 랐더니 잘했다고, 이렇게 선장의 행동을 바로잡아주면 된다고 했다. 근데 다음번엔 '존경하는 선장님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문장을 시작하라고 했다. 난 파스타 면발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할 만큼 웃었다. 웃다가 눈을 돌리니 내리쬐는 햇빛 아래 굳이 바티가 스프레이를 세워 놓은 걸 보고 '야야 저거 터지겠다! 얼른 치우라!' 고 했더니 터지긴, 오버하지 말라며 그래도 저기에 두는 게 아니었다며 얼른 치웠다. 또 한번 내 말투를 지적하며, 다음엔 꼭 '존경하는 선장님'을 붙이라며.


저녁은 외식! 브르타뉴에 왔으니 걀레뜨와 크래프를 먹었다. 브르타뉴 지역의 크고 작은 크래프 집들에 가면 종종 그 집만의 특이한 조합을 내세운 걀레뜨를 팔 데가 있다. 이 집에서 먹은 검은 체리 쨈, 베이컨, 염소치즈와 샐러드를 넣은 걀레뜨도 맛있었지만 전에 매물 배를 보러 다니다가 들어간 크래프집에서 먹었던 프랑스식 순대 boudin와 익힌 사과의 말도 안 되는 조합을 이길 만한 맛은 아니었다.


오리들의 사랑과 전쟁.

저녁을 먹고 배로 돌아오니 하필 이 4마리의 오리들이 바라미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제야 엉덩이를 뗐다. 암컷 한 마리를 두고 소란스럽게 꽥꽥 대더니 급기야는 한 마리를 밀어서 물에 빠뜨리고야 평화가 찾아왔다.


청소도 깔끔하게 잘 해 놨고 아직 시즌이 아니라 이용객이 얼마 없어 거울에 물자국 하나 없었던 화장실과 샤워실. 샤워실엔 꼭 쪼리를 신고 들어가야 한다. 일반 신발은 바닥을 더럽히니까 안된다. 따듯한 물도 펑펑 잘 나오고.. 다른 항구는 아직 안 가봤지만 왠지 여기가 톱 중의 톱일 거 같다.


두 번째 밤까지 보내니 바라미와 훨씬 친숙해진 느낌이었다. 간이 보트를 타고 바라미에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잘 있었어?'라고 인사를 건넸다.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의젓하게 63번 부표에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려준 것 같이 반가웠다. 2박 3일의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다. 사소한 일거리들이 항상 있었다. 나머지 시간엔 책을 읽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에는 전기와 인터넷이 없으니 책 읽는 거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딱히 없을 거라는 바티의 말에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서 틸다 스윈턴이 애덤을 보러 가려고 여행가방 한가득 책만 골라 담는 장면이 생각났다. 뱀파이어가 몇 세기를 살면서 누리는 진정한 호사라는 생각에 부러움으로 몸 사리 쳤었는데!!


항해 유람은 소라게의 소라처럼 우리를 지켜줄 작은 집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점에서, 그 공간이 살림살이와 원하는 만큼의 책을 다 담아가는 큰 여행가방도 되고, 바람이 부는 대로 우리를 데려다 줄 이동수단도 된다고 하니 기특하다. 그러나 '축소된 집' 혹은 '두 번째 집' 개념이기에 내가 집에서 누리는 모든 편의를 그대로 옮겨올 순 없다는 것도 흥미롭다. 항해 중에 '아차' 하며 다시 집에 들를 순 없는 노릇이기에 꼭 필요한 것들은 절대 잊어버려서도 안된다.


항해 유람에 대한 감을 잡을 만한 요긴하고도 재밌는 책을 읽었다. 프랑스 도보여행작가로, 항해 여행은 언급도 하지 않았고 쌀로 만든 종이와 깃털 모자, 리코더만 가지고 그분이 걸은 그 길들에 비하면 우리의 안락한 여행이 비할 바가 없겠지만 바티가 바다와 배를 대하는 자세를, 내게 보여주려고 하는 그것들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항상 엔진 없이, 내 힘이 허용하는 한도 이상으로 더 빨리 이동하는 수단 없이 자연과 대등한 조건에서 자연에 그대로 자신을 맡기는 여행이다. 나는 '정당한 수단으로 by fair means'라는 표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표현은 영국인들이 하켄에 의존하지 않고 손과 발이라는 정당한 수단만 사용하여 암벽을 등반하는 자연적인 방법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냈다. 정당한 수단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말을 타거나 걷거나 또는 카누를 타거나 자전거(기계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노력이 보충되어야 하는 기구)를 타고 길을 가는 것이다. 진흙투성이인 늪에 빠져 발은 온통 거머리들로 뒤덮인 채, 나는 자주 '품위의 문제'를 생각하곤 했다. 내가 주로 신발 밑창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고통을 즐기는 취향 때문이 아니라 느림이 속도에 가려진 사물들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차나 자동차의 유리창 뒤로 풍경을 흘려보내면서 풍경의 베일을 벗길 수는 없다. <여행의 기쁨> 실뱅 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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