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항구로 이동시키다.

'바라미'와의 첫번째 만남

by 환희

프랑스의 봄 날씨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종잡을 수 없다. 하루 사이에도 해가 쨍쨍 났다가 구름이 몰려와 비가 내리고 우박도 내린다. 그래서 브르타뉴 지역 일기예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건조항구에서 일반 항구로 배를 옮기는 날을 정했다. 원래 예정된 날은 일주일 전이였는데 그 주에 갑자기 폭풍우가 친다고 해서 한 주 미루게 된 게 4월 5일이었다.


하루 전 날 브르타뉴 지역 Vanne 에 사시는 바티 어머니네서 신세를 지게 됐는데 바티가 어린시절을 보낸 시골집이었다. 스토브로 집 안 공기를 뎁히고 집 주위엔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다. 샤워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방에서 커튼을 치려고 했는데 커튼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몸에 벤 도시습관이었다. 그런데 그러고 보화장실의 창문으로 보이는 이웃집은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일 리가 없었고 테라스와 연결된 방에 난 큰 창으로 보이는 건 푸르른 들판과 그 곳을 거니는 말들 뿐이었다.


산책길에서 본 유채꽃밭, Vannes.


저녁을 먹고는 집 주위를 빙 돌아 산책을 했다. 무성한 풀들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게 오솔길이 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주방에 내려가보니 밤새 마실 나갔던 고양이가 들어와서 자고 있었다. 낮에는 '니니', 밤에는 '티그로'라고 불리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닭도 두마리 있었는데 내가 달걀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아직 따끈한 달걀 2개가 놓여져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오골계를 키우셨었다. 조그맣던 내게 그 오골계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현관문을 열고 대문까지의 몇 걸음을 매번 할머니 바지춤에 매달려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티 어머니께서 내가 가져다 준 달걀을 한번 씻으시고 그 위에 연필로 5라고 쓰셨다. 이틀 전 달걀인 3으로는 사과 타르트를 만들어 두셨다. 차고에서 자전거를 꺼내 바람을 넣고 있는데 마침 우체부 아저씨가 지나가서 바로 편지를 받아 들었다. 집들이 워낙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에 아저씨는 노란색 봉고차를 타고 저 길 끝에서부터 한 집 한 집 멈춰 서서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자석 칠판에는 시장이 매일 어디서 열리는지를 표시해 둔 일정표가 붙어 있었다. 이 곳에서 보낸 하루가 내가 사는 낭뜨는 비록 지하철도 안 다닐만큼 작지만 도시는 도시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바티 어머니께서 배에서 먹으라며 바리바리 싸 주신 음식들을 받아 들고 건조 항구로 향했다.






작년에 배를 사서 건조 항구에 둔 이후로 배를 수리하고 점검하느라 바티만 몇 번 다녀갔고 나는 꼭 4개월만이었다. 더 이상 '가비 원'이 아닌 '바라미'와의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건조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배 뒤쪽으로 달려 가 바티가 주문해서 붙여 놓은 이름부터 확인했다.


'가비 원'의 주인이였던 할아버지가 해 주신 얘기가 있다. 배의 이름을 바꾸고 나서 배를 타고 3번을 왔다 갔다하며 뱃길을 가로막아야지만 불운을 막을 수 있다고. 뱃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 오는 미신 같은 거다. 바티네 형은 배에선 '토끼' 라는 단어를 말해선 안된다고 했다. 토끼가 나무를 갉아 먹는 설치 동물이라서 저것 또한 불운을 야기한다며. 예전에 항구에 정박할 때 몰래 올라 탔던 쥐들이 나무로 된 선박 내부를 갉아 먹어 곤혹을 치른 사람들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일반 항구로 옮기기 전에 꼭 해야할 일이 있었다. 배 옆면에 미역이나 조개 등의 부착물이 달라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1년에 한번씩 특수 페인트칠 (anti-fouling)을 해야 했다. '안티풀링' 이라는 단어를 구글링 했다가 저걸 제 때에 하지 않고 방치한 배를 보게 됐는데..너무 징그러워서 안티풀링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색의 선택이 다양하고 매우 단시간 내에 마른다. 바티는 여지없이 청색을 골랐고 '바라미'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비포 애프터로 비교해보니 새 옷을 입혀줌과 동시에 새 거가 되어서 너무 뿌듯했다!


우리가 새로 태어난 바라미를 바라보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 있던 배 주인도 지나가며 멋지다고 해 주었다. 그 아저씨는 최근에 산 배를 키 쪽에 물이 샌다며 고치고 계셨다. 중고가로 9천만원을 호가하는 정말 멋진 배였는데 요즘 만들어진 배들에게서 오히려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이 생긴다고 혀를 차셨다. 요즘엔 멋지고 빠른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과 같이 배가 소비되다 보니, 기술 면에서는 선체를 얇게 만들고 속도감을 높였지만 반면 폭풍우엔 예전 배들이 훨씬 더 견고하게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바티는 자부했다. 그리고 이런 잔고장이나 어이없는 문제들은 배 가격에 비하면 정말 분개할 만 하다.


두번째로 한 일은 배에 있는 수많은 밧줄을 비롯한 장비들을 점검했다. 할아버지가 두고 가신 구명조끼만 해도 5개나 되었다. 일단은 2-3명 꺼만 남겨두고 나머지 장비들은 창고에 가져다 두기로 했다. 또 50L 들이 고무로 된 물저장고를 락스를 희석시킨 물로 한번 채웠다가 비우기도 했다. 이 물은 주로 설거지를 하거나 손 씻는데에 사용될 물이다.


개수대 밑의 페달을 발로 밟으면 펌프식으로 싱크대에 물이 나오는 식이다.

또 한번 신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바티 어머니께서 바리바리 싸 주신 음식들로 배 안에서 첫 식사를 했다. 식탁보까지 만들어 주셨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되었고 트랙터에 바라미를 연결했다. 트랙터에서 바라미와의 연결을 끊기 전 바티가 모터가 잘 작동 되는지 체크해봤고 오케이 싸인을 하고 트렉터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이제 모든 건 우리 손에 달렸다부담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Port d'Arzal-Camoël을 떠나 Port de La Roche-Bernard로 첫 출항을 했다.



이쪽 건조 항구에서 저쪽 일반 항구까지는 차로는 15분이면 가는 거리(10km 정도)를 강줄기를 따라 모터가 아닌 돛을 펼치고 가니 1시간 반 남짓이 걸렸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어서 사람이 빨리 걷는 정도의 속도가 났다.

낭뜨에서는 보통 걸어다니기에, 가끔 차를 타고 익숙한 거리를 지나다보면 ‘어 저런 것도 있었나?’ 하며, 달라지는 시야에 놀라곤 했었다. 강의 한가운데를 배를 타고 가로지르니 강가를 따라 산책할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띄엄띄엄 보이는 멋진 집들, 푸른 들판 그리고 가끔 나타나주는 양떼들을 보면서 문득 북유럽 어느나라에서 찍었다는 세상에서 가장 긴 다큐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바람이 거의 안 불 때는 배가 멈춰선건가 할 정도로 속도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배 뒤쪽의 물살을 보면 흔들리고 있어서 아 가고 있긴 한거구나, 했다.


뱃놀이 정도의 짧은 이동이었기에 가만히 앉아 정취나 즐기면 될 줄 알았는데 이따금 풍향계를 보고 닻의 방향을 바꿔주고, 키도 항상 잡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줘야 했다. 그래도 바다가 아닌 강가여서 흔들림도 없었고 아직 날이 쌀쌀해서 다른 배들이 없었기에 이렇게 고요하고 안정적인 출항이 가능했던 것 같다.


부표에 묶인 배들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다닐 때면 그 배들이 물살 때문에 스르륵 밀려 뱃길을 열어주는 걸 보고 마치 알아서 비켜주는 것 같았다.




Port de La Roche Bernard에 입항!



그렇게 도착한 우리는 방문자용 항구남는 자리에 정박을 하고 나서 항무관 사무실에 가서 보고를 했는데, 마침 그 자리의 원래 주인인 배가 지금 막 들어오는 중이라기에 W 10자리를 다시 배정받고 배를 옮겼다. 배의 크기에 따라서 정박비를 받는데 바라미 크기면 11유로를 받아야 하는데 사무실에 잔돈이 없어서 10유로에 하룻밤을 보냈다. 전기세와 물세, 샤워실 화장실 이용비, 인터넷을 포함한 가격이다.



4월 초의 밤은 가혹할만큼 추웠다. 조그만 라지에이터를 켜고 겉옷을 다 입고 침낭에 이불까지 덮었는데도 새벽에 얼굴이 너무 추워 깨서 얼굴까지 침낭 안에 다 집어넣고 자는둥 마는둥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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