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미와 첫 바다를 건너다
여름에 한 달 반의 항해에 앞서 바다를 경험해 볼 기회가 생겼다. 5월 5일은 예수승천절, 8일은 승전기념일 휴일이었고 그 사이에 낀 7일도 덩달아 쉬기로 해서 빨간 날이 5일이나 주어졌다.
4일 오후에 La Roche-Bernard 항구에서 출발해 바라미를 Arzal 항구로 이동시킨 후 하룻밤 지내고 그 다음날 바다를 건너 이름처럼 아름다운 Belle île 에 도착,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도 그 주변의 섬으로 이동하고 마지막 날인 9일에 다시 모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일기예보도 꽤 순탄했기에 바티는 연신 내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비키니부터 겨울 파카, 얼굴용, 바디용, 입술용 선크림 3종류와 라면도 2개 챙기고 생수 3통, 커피 드리퍼, 간 원두, 차, 과일, 파스타 면, 샐러드,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챙겨준 비빔밥, 식칼, 도마, 샤워용품, 불어책 1권, 전자책 리더기 등 챙겨보니 한 짐이었다.
떠나기 전에 원두와 차를 사며 아빠에게 전화를 했는데 멀미약을 챙겼냐고부터 물으셨다. 첫날은 꼭 멀미약을 먹고 항해를 하라고 하셨다. 프랑스에서 키미테 같은 붙이는 멀미약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약국에 가서 물어보니 20개가 든 알약을 주었다. 30분 전에 먹고 너무 심하면 한 알 더 먹어도 된다고 했다. 바다에 대한 감이 잘 안 와서 고요한 Vilaine 강에서의 뱃놀이보다 조금 더한 정도겠지라며 멀미약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빠에게 전화하길 정말 잘했다.
우리처럼 4일 오후에 일찌감치 떠나는 피서객들로 약간의 교통체증을 겪고 항구에 도착해서 바티의 형을 만났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보고 처음 보는 거였다. 작년부터 시작된 긴긴 여행 중에 여름을 브르타뉴에서 보낼 생각으로 아내와 아이와 같이 지난주에 프랑스에 돌아왔다.
우리는 차 트렁크에서 짐 꾸러미들을 각자 나눠 들고 바라미로 옮겼다. 바티는 형 찬스를 이용해 같이 제노아(*대형 삼각돛)를 달았다.
그 후엔 형이 팔려고 내놓은 배에 같이 가서 그 다음날 있을 구매자의 방문을 준비하기로 했다. 포르투갈까지 다녀온 그 큰 배는 길이가 12미터이고 높이도 성인 남자 키보다도 훨씬 여유가 있었기에 내부에 들어가니 정말 집을 축소해놓은 느낌이었다. 라텍스 2인용 매트리스가 놓일 공간도 충분했고 화장실에는 샤워기도 달려 있었다. 널찍한 작업공간도 따로 있었다.
바라미보다 2배나 크고 긴 선체. 보트에서 올라타는 것도 흣차하면서 마음먹고 올라가야 했다.
모터를 켰는데 번번이 소리만 나지 돌아가질 않았다. 그래서 바티 형이 석유 몇 방울이면 된다고, 50썽팀만큼만 꿔 달래서 두 형제가 열심히 노를 저어 바라미를 정박해놓은 곳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모터는 석유 조금으로 정말 멀쩡하게 돌아갔다.
그렇게 바티 형과는 돌아와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Arzal 항구로 바라미를 이동시키고 보니 저녁 8시였다. 항구에 남는 자리가 하나 눈에 들어와 그곳에 배를 대고 다음날 8시에 열리는 첫 수문 때 바다로 나가기로 하고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5일날 아침, 7시에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수문 앞으로 이동시킬 채비를 하고 8시 딱 맞춰 수문 앞으로 가니.. 수문 근처에서 대기해야 할 만큼 수십 척의 배가 이미 줄을 서 있었다.
다들 우리와 같은 마음이었던 거다. 심지어 바티는 바다에 나가는 계획 전체를 취소하고 반대 방향으로 강줄기를 따라 올라갈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8시에도 이 정도면 9시, 10시에는 이보다 더한 양의 배들이 모두 바다에 나갈 거라는 염려에서였다. 8시 정각에 다리가 올라가면서 배들이 수문 안으로 들어오면 크기에 따라 큰 배들을 벽 쪽에 붙이고 작은 배들을 중간에 두고 배들끼리 서로 묶어 일단 수문 안에 몰아넣는다. 배들끼리 잘 고정이 돼있는지 확인이 되면 그때는 뒤의 수문을 닫고 앞의 수문을 열어 앞의 배들부터 한 대 씩 빠져나가게 하는 시스템인데 수문에 들어가기 전에 구명조끼는 필수다. 수문을 열고 닫는 과정에서 물살이 빨라져 만에 하나 떨어지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과정 -밧줄을 묶어서 벽이나 옆의 다른 배에 고정시켰다가 문이 열리고 우리 차례가 되면 그 밧줄을 얼른 풀고 모터를 키고 수문을 빠져나가는 -은 정확하고 신속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수문에 집어넣을 수 있는 최대치의 배를 꾸역꾸역 넣는 걸 처음 봐서 겁도 좀 났고 바티도 여름 바캉스 때 수준으로 배가 많다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에 8시 40분이 돼서야 모든 배가 다 빠져나가고 다리가 내려갔다. 그때 동안 다리를 지나가려는 차들도 꼼짝없이 발이 묶였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9시 수문을 열었다. 정작 9시에는 우리를 포함해 6대가 전부였다. 모두들 9시, 10시에 제일 몰릴 거라고 생각해 8시에 맞춰 와서, 우리는 비교적 여유롭고 안전하게 수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뱃사람들의 신호체계인 색색깔과 다양한 모양의 부표들. 항구에서 나갈 때는 빨간 부표를 오른편에 두고 초록 부표를 왼쪽에 둬야 한다.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는 반대로 두고 들어온다.
그러나 2시간이 좀 안돼 바다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을 눈 앞에 두고 우리는 강의 하구에서 발이 묶였다. 이미 9시에 수문이 열렸을 때에도 물의 높이가 1미터 50은 낮아져 있더라니, 썰물 때인 거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보다 먼저 수문을 빠져나갔던 배가 닻을 내리고 있었다. 바티는 저 사람들 강 한가운데서 뭐하는 거지라고 했고 정확히 1분 뒤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물이 줄고 줄어 1.3미터의 키 Quille(*용골:배의 바닥의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길고 큰 목재)가 강바닥에 닿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옆으로 살짝 기울어 더 나아가질 못하게 된 거다. 이대로 3시간은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1시간쯤 지나니 물이 차올라 드디어 바다로 나갔다.
바다를 l'eau salée 짠 물이라 하고 강물을 그에 비해 l'eau douce 민 물, 순한 물, 염도가 약해 먹을 수 있는 물이라고 한단다. 땅이 점점 멀어지고 어느새 물 색이 변해있었다. 그리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파도의 울렁거림이 있었다. 그래서 아 이제 정말 바다구나!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으딕섬île d'd'hoëdic을 오른쪽에 두고 120도 방향으로 키를 맞추며 나아갔다. 처음 2시간 정도는 신이 나서 키를 잡았다. 파도는 바람 방향에 따라 오른쪽에서부터 왔는데 큰 파도가 올 때마다 그거에 맞춰 배를 들썩여줘야 했다. 배가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게. 내가 키를 잡자 그 파도가 배의 옆면에 부딪치며 내 얼굴까지 바닷물을 튀기고 배도 더 심하게 꿀렁거렸고 파도는 배의 왼편에서 거품을 내며 부서졌다. 바티는 키를 잡는 건 그냥 필링 feeling이랬다. 물론 바람이나 파도에 따른 기본 공식은 있지만 바티를 봐도 매끄럽게 키를 조여주고 풀어주고 하며 그야말로 바다와 파도의 리듬을 따랐다. 바티가 어디쯤 왔는지 GPS 위치를 보고 지도 위에 표시해서 우리가 암석이 있는 곳을 피해 잘 가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몇 키로 못 가서 암석이 있으니 돌아가라는 부표를 발견했다.
이 사진을 찍은 기점으로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고 너무 허기가 졌다. 파도와 바람이 우리의 뱃길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불어 너무 더디게 가는 데다가 파도가 퉁퉁 건드릴 때마다 그 움직임이 고스란히 전달돼 흡사 디스코팡팡을 연상케 했다. 가끔은 바이킹. 멀미가 시작됐다. 내 배가 비어서 더 그럴 수도 있다며 바티는 주먹밥 싸온 걸 권했고 정말 신기하게도 밥을 입에 넣는 순간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하나를 먹고 멀미약을 한 알 더 먹고 조종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키를 잡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좀 누워있겠다고 하고 비틀비틀거리며 침대로 갔다. 선실에 들어가 있자니 누군가 내가 들어있는 이 조그만 상자를 정말 '마구'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왼쪽으로 돌아 누워 있는데 누가 나를 자꾸 똑바로 누워 자라고 할 만큼의 흔들림에 저항해 눈을 감고 있다가 선잠에서 깼는데ㅡ
머리맡 화장실 문을 열고 한 번 게워냈다. 바라미의 환영의식 같았다. '어서와 이런 건 처음이지? 한번 버텨봐!' 하는 식의. 그러고 선실 밖으로 나오니 바티는 어느새 제노아를 말아 넣고 모터를 켜서 섬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람이 여러 방향에서 불어와 제노아가 갈피를 못 잡고 펄럭거리기도 했고 섬이 꽤 가까이에서 보이는 거리에 다다랐기에 모터를 켰다.
그렇게 우리는 7시간 만의 첫 항해 끝에 오후 5시 15분, 으딕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