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딕섬2
조수간만 차가 덜한 맞은편 해변 쪽으로 이동했지만 파도의 손길이 조금 덜해졌을 뿐 여전히 바라미를 어루만졌기에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며 밤을 보냈더랬다.
점심, 저녁거리를 사러 하나뿐인 슈퍼에도 가고 섬도 걸어볼 겸 고무보트를 타고 길을 나섰다. 저기에 샤워장에 가서 샤워를 하는 것까지 더하면 이 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셈이다.
이 곳의 슈퍼는 일반 슈퍼보다도 더 작은 단위의 소형 슈퍼마켓이기에 불어로 supérette라고 불렀다. 보통 마트에 가면 뭐 하나 고르려 해도 가격대와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물건을 사면서 지칠 때가 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 곳에선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것도 파네! 하며 제품군의 다양성에 놀랐다.
얼마나 날이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는지를 말해주는 옷차림. 꽁꽁 싸맸다.
슈퍼에서 브르타뉴의 전통주 중 하나인 슈센 chouchen 이 보여 냉큼 집어 들었다. 우리의 모항인 La Roche-Bernard에 있는 미니 까르푸에서 처음 바티의 소개로 브르타뉴에서 많이 마시는 술이라고 해서 사셔 마셨었는데 달달한 것이 정말로 병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바다의 꿀' 맛이 났다. 와인과 비슷한 13도 정도로, 그 후로 우리는 엉트레를 먹을 때 홀짝이거나 오후에도 심심하면 반 잔씩 따라놓고 홀짝였다. 슈퍼에서 엉트레로 먹을 연어와 호박, 구운 아몬드가 들어간 빵에 발라먹는 rillettes를 샀고 슈퍼 옆의 빵집에서 바게트를 샀다. 파는 빵을 다 합쳐봐야 5가지도 안 되는 내가 본 가장 의심스러운 빵집이었지만 바게트는 정말 맛있었다. 메인 요리로는 바티가 스페인식 오믈렛ㅡ쇼리조,양파,감자를 볶다가 계란을 두껍게 부은ㅡ 을 했다.
이 곳의 화장실은 그리 깨끗하다곤 할 수 없었으나 쓸데없이 널찍했고 재미있던 건 모든 벽마다 명언들이 빨간색 필기체로, 줄을 그은 연필 자국과 함께 쓰여 있었다는 거다.
더 재미있었던 건 윌리엄 다음에 오는 이름 철자도 틀리게 썼고, 저 명언조차 자리가 모자랐던 탓인지 아니면 글쓴이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좀 더 길었던 명언에서 뜻만 같게 전달되도록 수정됐다는 거다. 하하.
바람이 너무 몰아치던 어느 오후는 아브리abriㅡ피난처, (정신적인) 안신처를 뜻하는 프랑스어ㅡ 안에서 잠자코 히비보스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5월 7일, 원래는 belle île 까지 가기로 했던 우리의 계획은 바람의 뜻에 따라 접게 되었고 다다음날은 폭풍우가 예상되었기에 우리는 La Roche-Bernard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아직 5월 초인지라 일기예보는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떠나기 전 주만 했어도 우리의 5일 휴가 내내 순풍이 예상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Rapporteur breton이라고 불리는 분도기를 지도 위에 대고 으딕섬에서 우리의 모항에 등대를 맞추면 60도가 나오고 그에 맞춰 자기 나침반의 중심이 60도에 오게끔 키를 조종하면 그 끝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니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는데 거짓말 같이 이대로만 하면 도착한다. 지금은 이런 간단한 행위를 GPS를 장착한 기계가 알아서 방향을 잡아주고 키도 조정해 주기까지 하는데 우리 배는 오토마틱 시스템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바티는 손으로 직접 지도에서 위치를 가늠하는 걸 선호하기에 이런 매우 아날로그적이고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지조차 못하고 살다가 배에만 오면 물을 틀고 가스를 켜고 화장실을 가는 거에까지 반복되고 단순한 행위들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에 가깝게 느껴져 불편하다기보단 재미있기도 하고 어릴 적에 살던 할머니네서 이렇지 않았나 하는 기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좀 터프하긴 했지만 순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일단 예상되었던 비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방수가 되는 옷을 아래 위로 갖춰 입고 키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모든 돌아가는 배들은 저 정도 각도로 누워 갔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었기에 우리는 배의 오른편에 앉아 떨어지지 않게 꼭 붙들고 있어야 했다. 대신 5-6노트(1시간에 1해리를 달리는 속도)의 빠른 속도를 냈기에 돌아오는 시간이 꽤 단축되었다. 일정하게 빠른 속력을 냈기에 멀미도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슝 달려서 Arzal 항구에 도착했다. 운이 좋았다. 마침 곧 수문이 열리는 시간에 도착해서 부교에 배를 매어놓고 잠시 기다렸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처럼 예상치 않게 변한 일기예보에 뱃놀이 나갔던 다른 배들 거의 전부가 우리와 동시에 들어왔고 수문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배의 크기에 따라 3대에서 4대까지 양쪽 벽에는 큰 배를 그 안에는 작은 배를 위치시켜 배끼리 묶는 작업이 신속히, 안전하게 이루어지는 데 30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안전조끼는 필수이다. 우리 뒤로도 저녁 8시 수문을 통과하지 못한 배들이 20척은 넘었는데 마지막 수문 시간이 9시였으니 몇몇 배들은 그날 하루를 부교에 배를 묶어 놓고 지새야 할 정도로 많은 배가 있었다.
바다에서 나름 사투를 벌이다 빌렌 강으로 돌아오니 이 얼마나 고요한지. 그야말로 강은 강이고 바다는 바다다.
모항에 돌아오니 마침 마을축제가 열려 콘서트도 하고 사람들도 북적댔다. 특히나 아름답고 클래식한 나무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날이 깜깜해지자 강 한가운데서 불꽃도 터뜨렸다. 배의 선실에 누워있다가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천장에 난 창문을 열고 거기서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또 우리의 귀항을 축하해주네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라미와는 6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