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나는 가까스로 졸업을 했고 다음날인 24일엔 초등학교 친구 dy가 3달이 다 되어 가는 그녀 여행의 끝무렵에 나를 보러 낭뜨에 와서 3일을 지내다 갔다. 내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 dy는 우리가 주고받은 모든 편지들을 2달 전 그녀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다시 읽어 봤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내 유학생활 전부에 대해 너무나 속속들이 알고 있어, 심지어 나도 잊고 있던 에피소드들을 그녀 입에서 얘기할 때엔 내가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편지에 썼었구나 하며 뜨끔하기까지 했다.
지금 한참 여행을 다니며 느낀 건데 엽서는 그나마 낫다. 일단 쓸 공간이 손바닥만 해서 말하고 싶은 불평불만이 그득해도, 앞 면의 멋진 풍경 사진을 보고 감상에 젖어 뒷장을 돌릴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겪은 멋지고 함께 나누고 싶은 감상만 짧게 쓰게 됐다. 그런 면에서 내 일방적이고도 부정적인 기운 가득했던 편지들을 이제껏 군말 않고 읽어준 dy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dy가 낭뜨에 온 이틀째인 토요일에 나는 식당 알바를 하러 가고 dy와 바티에게 토요일마다 서는 장에 가서 구경하고 점심도 해결하라고 하고 식당 끝나는 2시 반에 나를 픽업하러 와서 같이 La Roche Bernard로 향했다. 바라미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긴 처음이라 나도 덩달아 들떴었다. 그래봤자 빌렌 강을 몇시간 거니는 정도였지만 dy는 강의 한가운데서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선 썬크림이 눈에 들어갔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나 또한 썬크림을 바르면 열에 아홉은 집을 나서면서부터 눈이 따가워 눈물을 훔치는지라 진실이야 어찌됐든간에 dy가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에,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남기는 영상메세지에, 수수하게 차린 비빔국수에 대한 그녀의 칭찬에, 끄적거리는 일기장에 적힌 초등학생 때부터 봐 온 변함없는 그녀의 필체에, 산책로를 걸으며 나눴던 하루키에 대해, 최근에 읽었던 책에 대한 얘기들에 그저 좋았다.
이번 여름, 이 여행이 끝나서 다시 프랑스에 돌아가면 내게는 거의 인생 2막이 펼쳐진다고 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바뀔 터였다. 졸업 후의 행로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자 그 이동에 따라 그 도시에서 살 집을 구했다. 7번째 본 집에서 '이 집이다!' 라기 보단 이제껏 본 집들과 앞으로 볼 집들 중에서 이만한 정도의 집이 또 없을 것 같다, 라는 적당한 타협으로 집 구하기는 일단 완료. 우리는 9월부터 들어가 살겠다 했으나 집주인은 8월에 누가 들어온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우리는 잠깐의 고민 후 8월 1일 자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이중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여행을 떠나기까지 일주일도 채 안 남아서 한인 사이트, 에어비엔비에 집을 세 놓는다고 올렸다. 연락이 안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에어비엔비를 통해 승무원 둘이 낭뜨 공항에서 일하게 됐다며 한 달 반 전체를 예약했다. 7월 13일에 6개월간의 식당 알바도 마치고, 우리 집 고양이와 토끼도 친구네 집에 맡기고 엄마가 보내준 택배도 받고 15일, 바라미가 정박된 La Roche Bernard 항구로 떠났다.
모든 일이 여행 떠나는데 그 어떤 지장도 없게끔 일사천리로 진행돼서 오히려 떠나기 전에 악몽을 꿨을 정도였다. 그 꿈에선 일어나지 않은, 내가 걱정만 하던 일들이 일어나서 곤욕을 치렀다.
7월 15일
차 뒷좌석을 접고 트렁크에까지 한 가득 실은 짐을 항구 전용 카트에 옮겨 담았다.
옷, 베개, 소면, 파스타면, 쌀 10컵, 수건, 간장, 식초, 참기름, 고추장 남은 거, 커피, 카메라, 필름, 노트북, 세면도구, 비상약, 책. 그러고는 까르푸에서 87유로치 장을 봤다. 6개들이 생수, 고등어, 참치 통조림 6개, 완두콩, 팥 통조림, 계란, 과일, 마들렌, 우유, 올리브 오일, 야채, 술. 들고 올 땐 너무 무거워 낑낑댔는데 막상 배 안의 저장고들에 차곡차곡 정리를 하고 나니 별로 뭘 산 거 같지도 않았다.
항구에 있는 캠핑장 근처 주차장,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배에 올라 타 샤워를 하고 출발할까 어쩔까 하다가 내일 섬에 도착하면 섬에서 하지 뭐, 하고 저녁 8시 수문 열리는 거에 맞춰 수문을 통과하고 근처 부교에 배를 묶고 밤을 보냈다. 이 방문객용 부교에는 우리처럼 그곳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항하려는 배들로 꽉 찼다.
7월 16일
아침 6시에 출발하려던 애초의 계획에서 1시간 더 늦은 7시에 아흐잘 항구 port d'Arzal를 나섰다. 아침에 날이 쌀쌀해서 자켓까지 껴 입고 길을 나섰다.
7시간 정도가 걸려 île de Houat일 드 왓 섬에 도착했다. 평균 속도로 꼭 예상한 시간만큼 걸렸다. 이번 항해 유람에 있어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오후 1시 반, 항해 6시간 만에 사정거리 안에 왓 섬이 들어왔다. 이로부터 1시간여를 더 가서 섬에 다다랐다.
왓 섬은 지난 5월에 다녀왔던 으딕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으딕섬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표면적 2,91 km2의 섬이다. 해서 항구가 있긴 하나 그 섬에 오는 페리를 제외하곤 일반 배들을 위한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다른 배들처럼 해변가에 닻을 내려 정박을 하고 고무보트로 이동했다. 이제 이 여행이 좀 실감이 날 뿐, 커다란 감흥 같은 건 없었다. 지난번과 다름없이 7시간 정도가 걸려 섬에 도달했고 다만 이렇게 한 달 반이 지속될 거라는 게 다른 점이었다.
닻을 내리고 해가 너무 뜨거워 바티는 수건을 모자 위에 두르고 다녔다. 나도 모자를 챙기고 길을 나섰다. 바티가 15살, 97년도에 처음 이 섬에 왔었을 때만 해도 섬 여기저기서 캠핑을 하고 노래가 흘러나오고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히피에 가까운 캠핑족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랬다면 정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을 것 같다. 배를 타고 내리면 펼쳐지는 에덴동산! 그러나 지금은 모든 캠핑이 규제되어 커다란 몽골족 텐트를 연상시키는 투어리스트용 텐트들이 대여섯 개 솟아있는 걸 제외하면 정해진 구역에서만 캠핑이 가능했다. 그 외에는 사람들 집 정원 한 켠에 쳐진 텐트 몇 개를 본 게 전부다. 그때 그 시절에 비하면 매우 얌전해진 왓 섬이지만 모래에서 피어나는 노란 꽃들이 가득한 길을 걸을 때 나는 음식 냄새를 풍기는 맛있는 꽃향기에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호젓하게 걸어 다니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해변가에 정박한 배들이 꽤 됐는데도 막상 섬은 방문객 수를 제한한 것처럼 한적했다.
첫날은 도착하자마자 4시경에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섬을 둘러봤다. 다음날엔 이 섬에서 하나뿐인 빵집에 가서 아메리칸 샌드위치라고 적힌 바게뜨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우리가 배를 덴 쪽이 아닌 맞은편 해변에 가서 좀 누워 있다가 배로 돌아오기 전에 식료품점 alimentation에 잠깐 들렀던 게 전부다. 식료품점에서 파는 과일과 채소 가격이 일반 마트의 2배 이상이라 많이 놀랐었다. 그러던 중에 5.70유로나 하던 수제메밀가루비스킷 한 봉지 앞에서 바티와 동시에 멈춰 섰다. 낭뜨에서 20분이나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올가닉 매장에서 두어 번 장을 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린 처음 저 메밀가루비스킷Sablés au sarrasin을 많이도 못 사고 4개인가 사서 장을 보고 차에 타자마자 하나씩 먹었었는데 정말 눈이 번쩍 띄어지는 맛이었다. 저 작은 식료품점에서 비싸서 살 게 없다고 혀를 내두르다가 결국 저 비스킷은 들고 나왔다.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가 '그래 여기야말로 진짜 alimentation(프랑스어 alimentation의 다른 뜻인 '식량보급소'의 의미를 두고 한 말)이지'라고 낄낄댔다. 배에 도착하자마자 맛을 본 비스킷은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딱딱하지 않고 살짝 습기가 느껴지는 포슬포슬한 질감의 살짝 짭쪼름한데 달짝지근한 맛이고 사블레여서 두께가 2쎈티 정도는 된다. 앉은자리에서 다 먹기보다는 커피나 차와 함께 2개 정도면 족하다.
그렇게 1박 2일을 보내고 17일 오후 3시, Belle île 이름처럼 아름다운 섬 '벨 일'로 향했다.
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첫 날 출발하면서 멀미약을 먹을 생각도 안했고 이 날 섬에 도달하기까지 배가 꽤나 흔들렸었고 그래서 해변가에 정박을 다 하고 나서 한 번 게워냈더랬다. 다 도착하고나서 게워낸 것도 모자라 저녁을 먹고 그것마저 또 게워냈다고 인스타에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한 사진과 함께 올려놓았다. 두 번을 토하니 안색이 창백해져서 바티가 좀 놀라했지만 다음날 거뜬히 털고 일어났다는.. 한달 내내 여행하며 멀미약에 대해 했던 깊은 단상들로만 이루어진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