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브르타뉴 Belle-Ile_Le palais
3시간 정도가 걸려 17일 오후 6시경에 벨 일 Belle-Ile에 도착했다. 벨 일은 직역하자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중에 하나라고 벨 일 관광청 홈페이지에.. 여하튼 85,63 km2의 표면적으로 지난 두 섬과 비교하자면 으딕섬이나 왓 섬엔 슈퍼도 하나, 빵집도 하나, 개인 차는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던 반면 벨 일에서도 가장 활성화되고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 Le palais 항구에 들어서니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부두에 내려서는 여느 도시와 같이 쉴새 없이 지나다니는 차들을 피해 길을 건너야 했다. 이 지역에만 2000명을 웃도는 거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으딕섬에 100명의 거주민이 산다고 해도 먹고살 수 있는 별다른 방편이 안 보여서 저 숫자가 사계절 내내 유지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벨 일은 이미 상권도 형성되어있고 관광객이 겨울에 아무리 준다고 해도 나름 먹고 살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초중학교도 있다고 할 정도니. 바티네 가족은 여름 바캉스를 보내러 종종 이 곳에 와서 한 달간 집을 빌려서 지내다 갔다고 한다.
르 팔레 Le palais 항구에 들어서자 기분 좋은 활기가 느껴졌다.
오른쪽엔 초록색, 왼쪽엔 빨간색 등대를 두고 항구에 들어서자마자 모터보트를 탄 인상 좋은 아저씨가 우리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선창 뒤로 솟은 돛대들이 우리처럼 일시적으로 이 섬을 찾은 사람들이 배를 댄 자리이고 어선이나 이 곳 주민들의 배는 부교에 묶어두었다.
바라미도 다른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오른쪽에서부터 8번째, 어딜 가나 가장 작아 귀여운 바라미. 정박 후에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고 항만 사무소에 등록을 하러 갔는데 이제껏 낸 정박비 중 가장 비쌌다. 15유로에 샤워실을 이용하려면 한 번에 1유로고 물은 8분 동안만 나온단다. 사무소 직원한테 너무 비싸다고 했더니 비싸도 어쩌겠냐는 대답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 날은 우리가 처음 한국기와 프랑스 국기를 달고 항해를 한 날이었다. 사실 프랑스 내에 있으면 pavillon이라고 하는 우리 배의 국적을 나타내는, 의무로 선체의 뒤쪽에 달아야 하는 기를 굳이 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여행 떠나기 전 우리는 스페인(외국)에 갈 거였으므로 프랑스 국기는 의무로 사서 달아야 했고 그 김에 바라미의 하프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한국기도 아마존에서 같이 주문했었다. 항해 룰을 아주 엄격하게 따지자면 한국기는 걸어선 안 된다. 배의 국적에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바라미가 한국에서부터 왔을 가능성이 제로이고 혼돈을 주기는커녕 가끔 이게 어디 국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한국기라고 하며 덧붙여 바라미라는 이름도 한국말 '바람'에서 왔다고 말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뒤쪽에 다는 국기는 엄격히 제한되는 반면에 브르타뉴에 있다 보면 돛대에 해골이 그려진 해적선을 연상시키는 기나 브르타뉴 기를 달고 있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저녁 산책.
다음날 오전엔 광장에 조그만 시장이 열린 걸 보고 멜론 한 통과 마늘 한 알을 샀다. 빠에야를 파는 걸 보고는 오늘 점심은 빠에야다! 했는데 아직 다 안 됐다며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 길에 걀레뜨와 크래프를 트럭에서 파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햄과 계란, 치즈가 들은 걀레뜨 2개를 샀다. 손님이 세 사람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빵집에선 우연히 파리에서 맛보았던 포르투갈 에그타르트를 파는 걸 보고 바티에게 이거 이거 먹어보면 깜짝 놀랄 거라고 하며 2개를 집어왔다. 구운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온기가 남은 이 손바닥만 한 에그 타르트는 과연 눈이 번쩍 뜨이며 사람을 홀리는 맛이 났다. 배로 돌아와서 걀레뜨를 정말 맛있게 먹고 벨 일의 다른 쪽인 Ster-Wenn으로 가려 항구를 나섰다.(엽서 상에서는 Ster vras.)
항구를 들어오고 나갈 때는 돛을 접고 모터를 튼다. 수많은 배가 드나들기에 배의 방향을 쉽고 빠르게 조정해서 정박하기 위함인데 점심을 먹고 모터를 켜서 바다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닥칠 첫 시련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느 정도 항구에서 멀어지자 바티는 모터를 끄고 돛을 올렸는데 바람이 전혀 불질 않았다. 좀 더 기다려도 돛은 갈피를 못 잡고 치맛바람처럼 펄럭이고 좌우로 흔들렸고, 10미터 높이 가량의 돛의 출렁거림에 배 역시 좌우로 출렁인다. 어쩔 수 없이 모터로 이동해야겠다 하고 모터를 켜는데 켜지질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의 시도 때도 여전했다. 항구 가까이에서 그랬더라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적어도 우리 가까이에 배가 있었던 건 아니라 큰 위험은 없겠지만 모터가 영영 고장이 난 건지 어쩐 건지는 전혀 알 길도 없고, 얼만큼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해 보자고 했고 정확히 30분이 지나서 다시 켜 봤을 때도 역시나 덜덜거리기만 했지 시동이 걸리질 않았다. 그러다 45분이 지났을 때에 다시 시도를 했는데 걸렸다! 그 순간 저쪽에서부터 모터를 키고 오던 요트 한 척이 어느새 우리 배 앞머리에 1미터도 안 되는 거리까지 여전히 모터를 켜고 달려오고 있었고 바티가 키를 확 돌렸기에 엄청난 대형사고를 말 그대로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그 배 주인은 항구에서도 꽤 떨어져 있었고 사정거리 안에 다른 배들이 없던 걸 보고 안심해서 (심지어) 모터를 켠 채 선실 안에 들어가 있다가 우리 배 코 앞까지 왔던 것도 모르고 있던 건데 기적적으로 우리 배의 모터가 켜지지 않았더라면 그 배가 오던 속력으로 봐선.. 하늘에 계신 누군가가 우릴 구해준 거 같았다. 바티가 소리를 지르며 우리 배의 방향을 돌린 순간에야 선체에 나왔던 그 배의 중년부부에게 바티는 욕을 한 바가지 해 주었다. 어떻게 항해 중에 아무도 살펴보지 않을 수 있냐고. 한 사람은 무조건 나와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이번엔 다행히 아무 피해 없이 넘어갔지만 그 배 주인들이 이번 일을 기회 삼아 다음부턴 꼭 한 사람은 선체에 나와서 주위를 살피길 바랐다.
모터는 다시 작동됐지만 언제 또다시 모터가 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다음 목적지로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가려는 쪽은 벨 일에서도 coté sauvage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거나 거의 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주는 쪽이었기에 더더군다나 그랬다. 그래서 우린 다시 Le palais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르 팔레의 규모로 보아 적어도 배 정비소가 한 군데는 있을 것 같았기에. 다만 이번엔 항구 안에 배를 대지 않고 바로 바깥쪽에 있는 부표에 배를 묶어 무료 정박을 하고 고무보트를 타고 부두까지 갔다. 어제의 인상 좋은 사무소 아저씨에게 물어 딱 하나 있는 정비소를 찾아갔다. 정비사에게 모터의 기종과 디테일한 부분들을 설명하고 일단은 기화기를 새 걸로 사서 바꿔보는 걸로 하고 모터에 시동을 걸 때 최대한의 가스를 넣어도 된다는, 그게 충분하지 못해 시동이 안 걸렸을 수 있다는 등등의 조언을 얻었다. 우리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정비사도 그렇고 아빠에게 전활 걸어 물어봤을 때도 그렇고 시동이 잘 안 걸리는 건 정말 여러 가지 그리고 모터를 다 뜯어봐야 아는 복잡한 원인 때문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바다는 건너보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이게 걱정돼서 주저앉기는 눈물 나게 싫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시동 거는 데만 삐걱댔지 한 번 작동이 되면 그 후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안심을 하고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여행 초기이기에.
부품에 껴 있는 기름을 닦고 새로 사 온 기화기로 교체하고 모터가 다시 잘 되는 걸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다시 르 팔레에 돌아온 김에 내 수영 도구들을 챙겨 물에 들어가려 길을 나섰다.
어제, 저녁 산책을 갔던 곳에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암벽가를 따라 계속 들어가다가 바티가 여기 이쯤이었는데 하며 암벽을 따라 내려가 보겠다고 했다. 이내 '여기가 맞다'며 나보고 조심해서 내려오라는 그 길은 아니 길도 나 있지 않은 그 깎아지른 암벽 밑에 내려가면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는데 난 처음엔 절대 내려가지 않(못)겠다고 했다. 실랑이를 벌이고 벌이다 네 발로 기어서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내려갔더니 우리 둘만을 위한 암벽으로 둘러 쌓인 바다가 나타났다. 모래 한 톨 없었으니 바티가 말했던 '수영을 할 수 있는 해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드디어 이 때를 위해 스포츠 용품점에서 구입한 키즈용 잠수 마스크와 오렌지색 어른용 튜브까지 양 팔에 끼고 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 발을 지탱해주던 암벽에서 발을 떼면 수심이 5미터도 더 되는 진짜 바다였다.
양 팔에 낀 튜브 덕에 몸은 둥둥 떠 있고 잠수 마스크 덕분에 평소대로 숨을 쉬며 내려다보는 언더 더 씨는 영롱했다. 몇 시간이고 저렇게 떠서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여기 있는 게 우리 둘만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저 멀리, 아이들 둘이서 자유롭고도 민첩하게 헤엄치며 까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여러 장비를 장착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큭큭댔다고 생각한 건 기분 탓일까. 10살이나 됐을까 싶은 정말 조그만 아이 둘이 저렇게 물고기 마냥 노는 걸 보니 필경 이 곳에서 태어난 섬 아이들일 거라고, 우린 태생부터가 다르니 나는 이 나이에도 수영을 못 해 이렇게 노는 거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혼자 여러 번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