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경찰도 우체국도 없는 섬

으딕섬 île d'Hoëdic 1

by 환희

우리가 다녀왔던 으딕섬에 대해 글을 쓰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졸업을 했고 다행히 큰 걱정거리 없이 여름에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고 가을에 새롭게 시작될 학교에도 등록을 하고 새로운 도시에 이사할 집을 계약했다. 바티는 천체 항해술에 관한 블로그를 시작했다. GPS가 있지만 섹스텅을 이용해서 해와 별의 위치를 체크해서 방향을 잡는, GPS가 나오기 전의 항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사이 우리가 다녀온 섬이 너무 아득하게만 느껴졌고 요 근래 내 삶과는 동떨어진 경험이었다는 생각에, 나를, 이 글을 볼 누군가를 속이는 기분이 들어서 아무것도 쓰지 않았었다.


아무도 이 여행기가 반짝반짝 빛나기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내 스스로 일상과 어떻게든 엮지 않으려,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한 여행기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일상의 한 부분이고 여행 중에도 환경이 조금 바뀔 뿐 삼시 세 끼를 준비하고 잠을 자고 가족과 통화를 할 거고 수없이 통장 잔고를 확인할 거라는 거. 나는 인터넷도 전화도 터지지 않는 바다에 있게 되겠지만 내 머릿속은 결코 내 삶의 걱정과 불안을 말끔히 잊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 여행기에 대한 부담이 조금 덜해졌다.


두 달 전 다녀온 이 섬에 관해서는 항해일지에 적은 메모를 참고하려 한다.







브런치 첫 글, 첫 문장에서 <배>가 뭔지는 알지만 바라미를 만나기 전까지 내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는 얘길 했었다. <섬>도 마찬가지였다. 꼭 으딕섬이라서가 아니라, 육지에서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게 <섬>의 정의라는 것을 바라미를 타고 가면서 새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섬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았기에 우리처럼 개인적으로 요트를 타고 오거나 유람선을 타고 오지 않는 한 이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점도 내게는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모처럼 긴 연휴를 즐기러, 꽤 많은 배들이 섬의 해변가에을 내리고 정박해 있거나 부표에 같이 묶여 있었다. 이런 작은 규모의 섬이라면 사람이 한 100명쯤 살지 않을까 했는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정말 11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나마도 이렇게 성수기일 때 얘기지 겨울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외딴섬이기에 다들 육지로 떠날 것 같아 보였다.


항구라기엔 너무 작아서 배는 항구 근처에 정박시키고 항구까지는 각자 보트를 타고 가야 해서 어른 둘이 타면 꽉 차는 보트에 바람을 넣었다. 항구에는 색색깔의 보트들이 그득했다.


하나뿐인 슈퍼에서 장을 보고 보트로 돌아왔다. 오렌지색에 노란 노가 2개인게 우리 보트.



이 섬엔 뭐든 하나뿐이었다. 꼭 필요하고 최소한의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것들만 갖춰진 슈퍼마켓 하나, 빵집 하나, 항구 관리소, 시청, 우체통, 도서관, 교회, 카페, 호텔 하나가 전부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항구 사무소, 샤워실(컨테이너 박스), 교회, 빵집, 슈퍼마켓.




작고 하나뿐인 교회 안에는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배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이 섬에 오고 가는 배들의 안녕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섬과 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교회를 나오니 뒤쪽으로 묘지들이 보였다.



차도 없고 경찰도 없었지만 주민들 수만큼 많은 양을 방목해서 키우고 있었다. 점점이 보이는 흰색이 전부 양.

그리고 하루에 2번, 이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싣고 오는 유람선이 있었다. 유람선이 항구에 들어올 때면 큰 파도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배 안에 있다가도 배가 심하게 그리고 일정하게 흔들리는 걸 보고 또 유람선이 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모터에서 쉭쉭 뿜어내는 물만큼 끝도 없이 사람들을 토해내는 유람선을 보면서 우리도 이 섬에 관광 온 거면서 무리 지어 몰려온 저들이 이 섬의 고요를 흐트러놓진 않을까 우려를 하기도 했다.


섬을 걷다 보니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맞은편에는 항구 사람들을 위한 컨테이너 박스로 된 샤워실과 비교되게 나무로 멋지게 지은 캠핑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생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좀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던 건 배 안에서 파도가 보듬어주는 찰랑거림을 느끼며 자느니 등은 좀 배기겠지만 그래도 땅에서 고요히 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볍게 섬을 한 바퀴 돌고 바라미로 돌아와서 정박해 놓은 곳의 반대편, 해안가로 다시 배를 몰았다. 항구 정박비 겸 샤워시설 이용, 인터넷(미미하지만 잡히긴 했던) 이용료로 이미 8유로를 지불했지만 반대편 해안가가 조수간만 차가 덜했기에 이동하기로 결정했던 거다. 항구 쪽이 썰물 때 2미터가 좀 안될 만큼 물이 빠졌는데 그래서 파도는 더 높이 쳤고 그러면 잠을 자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기에..




모터를 켜서 15분 남짓 걸려서 맞은편으로 이동하는데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고 우리는 주위의 수많은 암벽과 떠 있는 작은 바위섬들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저 경이로웠다.



반대편 해안가로 오니 이미 꽤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우리는 그 배들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며 어디에을 내릴지를 봤다. 배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적정거리가 있다.을 내리면 보통 수직으로 내려도 그 중심이 추가 되어 주위를 원으로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배와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져야 한다.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싶어을 내렸는데 옆의 배와 조금은 더 거리를 뒀으면 좋았을 뻔했다. 배 주인아저씨가 갑판대로 나와서 인사를 하며 너무 가까운 거 아니냐고 지적하시다가 넉살 좋게 넘기신다.


그렇게 으딕섬에서 맞는 첫날밤이 싸아-싸아- 하는 파도소리에 맞춰 저물어간다.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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