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의 참 뜻을 따라

검색이 되지 않는 여행

by 환희

모터의 변덕을 잠재우고 우리는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느긋하게 항해 해 스테르 완 Ster Wenn에 도착했다.


저 깊숙한 만이 스테르완이다.



만이 길고 좁아 많은 배가 들어올 수도 없는 저곳은 지형상의 혜택으로 저 안쪽에 있으면 바깥 바다의 바람이나 울렁임은 전혀 느낄 수 없는 호수같이 잔잔한 곳으로 아는 사람들은 아는 명소이다. 7월 18일,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만 초입에 배 3대가 나란히 정박돼 있었고 만의 끝에도 2대가 정박되어 있었는데 바라미가 작은 배여서 그들 사이에 다행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벨 일 belle île에서도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는 쪽인 이 곳에 다다라서야 왜 이곳이 <아름다운 섬>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바티가 닻을 내리고 간이 보트를 타고 가 뒤편에 있는 암석에 밧줄을 빙 둘러 바라미를 잘 고정시키고 언덕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서너 대의 배들이 이 곳의 풍경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움직이는 그림엽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같이 걸었다.



다음 날 우리는 해변가에 갔다가 Sauzon이라는 작은 마을에 가기로 했다.



어제 잠깐 걸었던 그 길을 따라 더 걸으면 나오는 한적한 해변가에 다른 이들처럼 덤불 밑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별 얘기도 하지 않고 책을 보지도 않고 헨드폰을 만지지도 않고 시간을 보냈다. 적당히 출출해졌을 때에 일어나 수영복 위에 옷을 챙겨 입고 모래를 털고 소종 Sauzon으로 향했다. 바티가 분명 1km 만 걸으면 도착한댔는데 1km를 걸으니 '여기에서부터 소종 1km'라는 팻말이 나왔다. 한 열댓 번쯤 다 왔냐고 물으니 소종에 도착했다.




올리브와 참치를 얹은 Tartine과 수제버거를 먹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보낼 엽서를 사고 항구를 어슬렁거리다가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기 시작했고 바티는 한국어 공부 책을 펼쳐 들었다.


다음 날 바티는 호기롭게 점심으로 먹을 생선을 낚아 오겠다며 잠수복을 갖춰 입고 작살총을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은근 기대하고 기다렸는데 물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물고기가 보이질 않는다고 하며 빈 작살로 돌아왔다. 대신 들어간 김에 옆 배와 우리 배의 닻이 엉키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IMG_20160719_182609533.jpg 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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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날이 흐렸어서 바람막이와 스카프를 두르고 오랫동안 걸었다.

바티가 공짜 샤워실이 있다고 해서 긴 긴 산책길에 목욕가방을 챙겨 갔더랬다. 바티가 말한 공짜 샤워실은 다름 아닌 소종 Sauzon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캠핑시설에 딸린 샤워실이었는데 원칙적으론 캠핑카를 타고 캠핑하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는데 돈을 받는다거나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어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배를 댄 곳은 전화조차 터지질 않았다. 다만 태양만은 아낌없이 내리쬤기에 헨드폰이나 태블릿 pc는 태양판 에너지로 충전할 수 있었다. 항구에서 떠나오기 전에 물 저장고에 물을 가득 채워놨지만 이 곳에 얼마나 머무를지 몰랐기에 물을 최대한 아껴 써야 했다. 설거지는 항상 바닷물에 먼저 헹구고 소금기만 없앨 요령으로 마지막 마무리를 일반 물을 썼고 바다에 들어갔다 와도 대충 물을 끼얹어 끈적거림만 없애고 이 캠핑장까지 30분을 걸어왔었다. 매번 사람들이 눈치챌까 하는 조바심을 가지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하며 걸어가서 하는 십여 분간의 샤워는 정말 상쾌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거리며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오래 걸어온 피로와 끈적하게 남아있는 소금기를 말끔하게 제거하고 솔솔 부는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걷고 있자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프랑스어로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 vacances라는 단어는 라틴어 vacans에서 유래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비우다 라는 뜻인데 나는 이때에 진정한 프랑스인들의 바캉스를 경험했다. 다른 배들은 전부 가족 단위로 와서 어른부터 아이까지 인터넷은커녕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이 곳에서 한 달이고 머물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 곳 문화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그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며 적잖은 문화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그들 틈에서 '이건 먹을 수 있는 건가? 미셀 할아버지께 물어봐야지' 하며 바위에 붙은 소라를 열심히 떼고 있었다. 이렇게 온전하고 걱정 없이 매 시간을 흘려보내는데 대충의 느낌은 아니었다. 나름 모두가 그 안에서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자기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같았다.



항해일지.

Sauzon까지 걸어가는 동안 공기의 온도와 성질이 3번 바뀌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풀들이 우거진 끝없이 이어진 같은 길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내 주위의 소음이 바뀐 것을 이제야 눈치챘다.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듣는 소리는 오직 밤낮으로 울어대는 갈매기떼들의 울음이나 바람이 귀에 스치는 소리, 파도가 배에 부딪쳐서 일렁이는 소리, 옆 배 미쉘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가 전부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가 두 곡도 안 듣고 껐다.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 아니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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