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해

부제 : Feeling필링 이란 것

by 환희

나와 B는 거주지를 옮겨 각자의 탐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재작년만큼 열정적이진 않지만 다시 매물로 나온 배들을 보러 다니고 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보러 다녀 정확히 몇 대를 보러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새해 첫날과 음력설에도 B네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에 겸사겸사 배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음력설에 보러 갔던 배는 바라미와 같은 배 건축가가 만든, 선체가 1.5m 정도 더 길고 볼륨도 좀 더 있고 좀 더 빠른 '아키라'라는 배였는데 매물로 나온지는 꽤 됐었다.


Aquila voilier, 길이 8,28m, 1975-1984년 생산.


가격도 그렇고 시기도 시기인지라 아직까지 팔리지 않았던 건데 그 주에 2000유로를 낮춘 걸 보자마자 B는 바로 연락해서 rdv헝데뷰(약속)를 잡았다. 그 배는 개인이 파는 게 아니라 조선소에서 파는 거였기에 관리도 잘 돼 있었다. 우리는 가서 확인만 하고 이 배를 거의 사겠다는 마음으로 200km를 달려갔다. 진입로에서 길을 좀 헤매다가 도착해서 조선소 안에 들어가니 어떤 프랑스 부부가 성을 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않냐면서. 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배를 보러 온 사람들이고 그 배가 이미 팔렸기에 저 사람들이 저렇게 성을 내고 있는 거라는 걸 알아챘고 우리 또한 이게 어찌된 일인가 했다. 그 조선소는 엄청 크고 유명한 호화 보트 조선소였는데 우리 네 사람 앞에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것 같은 앳된 직원이 나타나 자초지종을 설명한즉슨, 우리들보다 더 일찍 온 누군가가 그 배를 보자마자 사겠다고 해서 지금 안에서 계약서를 작성 중이라는 얘기였다. 그 사람이 약속을 잡고 온 건지 아닌지는 말이 불분명했다. 이제껏 아무 연락도 없다가 배 가격을 낮추자마자 여러 개의 약속이 동시에 잡혔고 먼저 온 사람이 사겠다고 하니 어쩌겠냐는 변명을 내놨다. 이제껏 우리가 본 배들은 전부 배 주인이 개인으로 내놓아서 그 사람들과 직접 통화를 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거래한 개인 거래들이었고 이번이 처음 프로페셔널인 조선소와 약속을 잡고 온 건데 일처리가 이렇게 엉망이라는 데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고 더군다나 우린 아침부터 3시간을 달려온 건데 배가 이미 오전 중에 팔린 거라면 왜 전화 한 통 주지 않았던 건지 그의 일처리에 책임을 물었다. 그 직원이 다른 배도 많다며 보여주겠다고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B는 다시는 이런 식으로 일처리 하지 말라며 엄포를 주고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그 부부나 우리는 '그 배'를 사러 이 곳에 온 거고 그 부부 또한 바로 살 마음으로 수표책까지 들고 왔는데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분통해했다.


기본적인 거래의 원칙도 무시한 프로페셔널들에 혀를 끌끌 차며 결국 그 배는 구경도 못하고 길을 되돌아와야 했었다.


그리고 지난주, B에게 다시금 확신을 주는 배를 보러 갔다. '코코'라는 경주용 배로 1985년과 1999년 사이에 105대만 역시나 같은 건축가인 Philippe Harléd가 제작했고 크기는 바라미와 같은데 경주용이기에 배의 무게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선체 내부엔 화장실도 물 저장고도 따로 없었다. 그저 요리를 할 수 있게 가스레인지 하나에 가스통이 매달려 있는 게 전부였다. 물론 난 이 거래 반댈세였다. 재작년 처음 배를 보러 다닐 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저 유일하게 내세운 조건은 양변기 화장실이었는데 이 배에서는 양동이 화장실을 써서 내 배설물들을 물고기 밥으로 주게 생겼으니.. 그러나 B는 한 번쯤 이런 빠른 배로 스피드를 내며 바다를 누려보는 꿈이 있었기에 우리는 프랑스 북부로 6시간을 달려가기에 이르렀다. 거기다 이 배는 1987년에 생산돼서 그 해 요트 대회에서 30일이 걸려 1등으로 들어온 익스트림 스포츠계의 유명한 스위스 선수 Laurent Bourgnon가 탔던 그 유명한 44번 코코라고 했다. 이 사실은 이미 배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 배 주인이 부차적으로 알려준 정보였고 B는 나중에 되팔 때 유용하겠다며 잘 됐다고 했다.


Larent Bourgnon이 대회에서 승리하자마자 찍은 광고


coco 내부.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



중간에 루앙 Rouen에서 쉬어가며 점심을 때우고 Touquet투께라는 북부 휴양지 도시에 도착해서 예약해 놓은 에어비엔비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카지노와 대형 호텔과 부티크들로 가득 찬 작은 도시에서 2개의 에어비엔비를 놓고 고민하다가 B는 좀 더 비싸고 바다와 더 가깝고 집 안 곳곳이 파란색 데코들로 가득한 집을 골랐다. 떠나기 전 날 밤에 유의사항을 읽다 보니 수건과 이불보를 포함한 침구류를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고 적혀있어서 꼼꼼히 읽어보길 잘했다며 급히 여행가방에 챙겨 넣었다. 2월부터 열기 시작한 스튜디오였는데 2개의 코멘트에는 '조심하세요 최대 인원이 4명이라고 돼 있지만 절대 4명을 위한 스튜디오는 아니에요. 최소한의 생활도구들'이라는 얘기가 쓰여 있었고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집주인이 멀리 살아서 집주인이 말한 옷가게에 가서 열쇠를 받아오고 갈 때도 다시 그곳에 반납하는 식이었는데 도착해서 레지던스 현관 문고리를 돌리자 마자 나사가 튕겨져 나왔다. 그렇게 흡사 호텔 같은 긴 복도를 요리조리 따라가니 8번 스튜디오가 나왔는데 들어가자마자 우리가 발견한 건 클릭 클락 소파에 둥그렇게 앉아 있는 흰 먼지였다. 한 사람 앉을만한 면적으로 전 사람이 뭔가를 흘리고 지우려고 했던 흔적인지 뭔지, 해서 도착하자마자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게 있다고 하고 사진으로 보냈다. 우리는 짐을 풀고 해변가를 따라 걸으며 긴 산책을 했다. 겨울인지라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빌라들은 전부 차양이 내려져 있었지만 날이 좋았어서 우리처럼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저녁거리를 장 봐 와서 식탁에 내려놓자마자 내일 만나기로 했던 배 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썰물 때인데 선체를 보러 지금 잠깐 오지 않겠냐고 해서 10분 정도를 차를 타고 항구로 갔다.


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했고 배 주인은 그 도시에서 35년을 산, 장애인에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에 인턴생으로 들어가 디렉터로 마감하고 지금은 은퇴하신 아저씨였다. 이것저것 직접 만드는 걸 좋아하신다며 직접 만든 테이블이나 닻 지지대를 보여주셨다. B가 1시간여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고 얘기 나누고 내일 아침에 예정대로 바다까지 시범운행을 나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찬장을 열었는데 프라이팬이나 냄비 하나 보이질 않았다. 설마 이래서 '최소한의 생활도구'라는 코멘트를 남겼던 건가.. 다른 데에 놔뒀나 하며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내니 '말도 안 돼! 프라이팬 3개, 냄비 3개 세트를 사놨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설마 지난주에 다녀간 사람들이 가져간 건가라며 식탁 위에 올려놓고 찍은 3개의 프라이팬과 냄비 사진을 보내왔다. 혹시 우리가 사게 되면 돈으로 환불해 주겠다고도. 우리는 급하게 다시 나가 프라이팬과 냄비를 사려했으나 차로 10분을 가야 하는 마트는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은 외식을 했다. B가 오후에 배를 살펴보고 얘기를 나누는 동안, 썰물 때라 배가 키 하나에 의존해 모랫바닥에 박혀있는 상태이기에 나까지 올라타면 무게 때문에 배가 더 기울 거 같다며 나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항구에 서 있게 해서 내가 좀 삐져있었다. 잠깐 기다리라는 식이었는데 30분이 넘어가자 나는 바람도 차고 해서 차에 들어가 있었더랬다. 길어질 것 같으니 먼저 차에 들어가 있으라는 한마디가 없었던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하니 B는 저녁은 내가 사겠다고 했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B가 이례적으로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방을 집에 두고 온 걸 알아챘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쓴웃음을 지으며 내가 계산을 했다.

잠을 자려고 보니 침대 한쪽이 삐그덕 대서 얇디얇은 매트리스를 들어내 보니 나무 지지대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그것 또한 사진을 찍어놨다. 침대도, 소파도 반 쪽짜리인 셈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애증의 에어비엔비.


다음날 아침 안개가 가득했어서 걱정이 앞섰는데 다행히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설 때쯤 되니 비도 그치고 안개도 많이 걷혀 있었다. 그래도 8도였다. 습하고 찬 공기와 바람은 덤. 솔직히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갈 날씨는 아니었으나 큰 파도는 없다고 해서 옷을 잔뜩 껴 입고 배 주인아저씨와 같이 셋이서 출항을 했다. 추웠다. 바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어떻게든 파고 들어와 공략했다. 거기다 파도도 높진 않았지만 쉬지 않고 쳐 주어 돛을 이렇게 저렇게 시험해 보고 방향도 바꿔보는 사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나온 지 40분쯤 지나 내가 둘에게 언제 돌아가냐고 물으니 둘이 눈치를 채고 이만하면 됐다며 다시 항구로 돌아왔다. 아침에 산 샌드위치에 차 한잔을 대접받고 B와 아저씨는 더 얘기를 나누더니 B가 결정을 내렸다. 아저씨네 집에 지금 가서 매매 계약서를 쓰기로.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기다리는 사이 나는 B에게 이 배로는 긴 여행은 하지 못 할 거야, 알고 있는 거지?라고 재차 확인을 시켰고 B는 충분히 생각했고 시범운행을 하면서 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아저씨네 가서 부인 분을 만나 인사를 하고 배의 정보가 적힌 수첩을 참고하며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싸인을 하고 맥주도 한 캔 따며 자축하고 악수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대로 계약금을 입금하기로 했다.


그리고 냄비를 하나 사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부러진 침대 지지대 사진을 보내며 냄비를 샀는데 어떻게 환불해 줄 거냐고 물어보니 집주인은 뜬금없이 '내가 무슨 마술사인 줄 아냐'며 오늘 이 집에서 안 자도 이해하겠다, 하루치를 환불해 줄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우리 모두 에어비엔비의 피해자라며. 어이가 없었다. 집주인이 손님을 맞을 때 미리 와서 집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기에 비롯된 일인데, 같은 피해자라니! 결국 냄비는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하고 다음부터는 사람을 보내 다음 손님을 맞기 전에 기본적인 건 확인을 하라고 했다.


떠나는 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계약서와 함께 동봉된 배 수첩 복사본을 살펴보는데 배의 번호가 44번이 아닌 27번이라고 적힌 게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한 아저씨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사실 꼭 우승한 그 44번 배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건 부수적인 거고 유명세인 건데 그걸로 인해서 배의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B가 이 배다! 하고 이 곳까지 오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이 배가 44번인지 알지도 못했으니 저게 우리 구매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다. 배 주인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게 작은 거짓말들 중의 하나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배 내부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 중요한 부분들도 아저씨가 개인적으로 뚝딱뚝딱해서 만들었는데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를 했다. 아저씨는 짐짓 놀라며 경주용 번호랑 배의 번호는 다른 거라는 횡설수설하는 얘기를 하며 자기도 몰랐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그러면서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도 했다. 당연히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얘기인데 대체 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 거짓 정보를 보태 구태여 팔아보려고 했던 건지 실망스럽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럼 지금 당장 살 건지 안 살 건지 말해달라고 해서 B는 결국 안 사겠다고 하고 계약서는 서로 파기하기로 했다. B는 정말 아쉬워했다. 다 된 결정을 신뢰에 대한 문제로 엎어 버렸으니.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그 작은 숫자를 발견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떤 찜찜함, 말 안 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란 의심을 하면서까지 거래를 하느니 안 사고 안 찜찜한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B는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에서 예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비해 돌아다니는 정보는 훨씬 많으나 그것들이 좀 더 복잡해지고 거짓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는 게 더욱 어려워져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했다. 그랬다. 예전의 간결한 거래에 비해 지금은 부수적인 정보나 유명세(그나마도 거짓) 같은 걸 내세워 더 중요하고 필수적으로 고려할 요소들이 덜 중요하게 돼 버렸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27번 코코를 샀다면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잘한 선택이었을까. 에어비엔비도 그렇다. 이 곳보다 좀 더 싼 집을 골랐더라면 과연 그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우리가 살면서 하는 크고 작은 결정의 기로에서 내린 선택들이 좀 더 신중했고 덜 신중했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프랑스에 온 것이며, B를 만난 것이며, 식물과 꽃을 탐구하게 된 것에 대해 이것보다 더 좋은, 더 나은 선택들이 있었을까. 나는 잘은 모르지만 내가 바라미와 전 주인 세르주 할아버지를 봤을 때 느꼈던 흔히들 말하는 '필링 Feeling'을 다른 배들을 보러 다니면서도 다시 느끼는지에 대해 촉감을 곤두 세웠다. 그때 그 느낌을 B에게 말로 전해 주었고 우리는 정말 우리 배를 만났고 예상 못한 서프라이즈 하나 없이 정직하고 안전한 항해를 했었다. 그때에도 반짝하는 필링에 마음을 뺏겨 바로 거래를 했다기보다 저 필링을 기반으로 더 고민하고 더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가 바라미를 되팔지 않았더라면ㅡ 하는 상상을 한다. 바라미를 만났던 건 행운이었다. 그렇게 당장 내일이라도 출항이 가능한 배는 이제껏 한 대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제2의 바라미를 곧 만나길 바라며!



Touquet 해변가에 가득한 모래 언덕 듄D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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