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사는 섬에서 신의 섬으로

by 환희

이 날도 콧바람을 쐬러 소종 Sauzon에 갔다. 정말 작은 마을이라 무슨 식당에서 무슨 메뉴를 파는지 다 훑고 지나가는데 못 보고 지나친 작은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고 전시된 몇 점의 그림들 중 A4 두 장을 합친 크기 정도의 이 그림이 나를 멈춰 서게 했다.


처음 Sauzon에 도착해서 마을을 내려다 보고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탄성을 질렀었다. 초행길이라 바라미를 세워둔 곳에서부터 이 곳까지 투덜대며 30분을 넘게 걸어왔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파스텔톤으로 칠한 외벽들에서 '나 엄청 귀여울 거거든'이라는 인상을 먼저 받고 그 뒤로 가지런히 줄 맞춰 정박된 배들이 점점이 보인다. 이 그림은 그 어떤 잘 찍은 사진보다도 Sauzon을 잘 표현했다. 이 곳의 사랑스럽고 잘 정돈되고, 이렇게나 아기자기한 데에 비해 관광화되거나 상업화된 거 없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분위기에선 인어가 있대도 믿을 만하다.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림은 처음이었는데 가격을 보고 절망했다. 개인적으로 부담되는 수준이었지 꽤 타당한 가격이었다. 그래서 역시! 하며 돌아섰다. Sauzon이 언제까지나 이런 마을로 계속 남았으면!



20160722_110757.jpg


다음 날, 다음 목적지인 île d'yeu로 가는 방향으로 순풍이 예상됐다. 바라미와 같은 요트는 순전히 바람에 따라 여행이 좌지우지된다. 바람이 지속적으로 그 방향으로 불어주면 새벽이 됐던 언제가 됐던 떠나야 하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여행인 셈이다.


바티는 매일 잠수복을 갖춰 입고 물에 한 번 씩 들어갔다 왔는데 매번 허탕만 쳤었다. 물고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날 오후 누군가 배를 톡톡 두드렸다. 옆 배 미쉘 할아버지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통발에 우리나라 대게를 닮은 araignée 가 잡혔다며 솥에 쪄서 1시간 뒤에 주겠다고 하셨다. 대게가 들어갈만한 큰 솥도 없는 것까지 다 감안하고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주신다니 정말 감사했다. 미쉘 할아버지네는 매년 이 곳을 찾는데 올해만큼 이렇게 고기가 없는 적도 처음이라고 바티가 아무것도 못 잡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내가 우리한테 줄만큼 대게를 많이 잡았냐고 물어보니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거라고 하셨다.


IMG_20160721_190708953.jpg 바다에서 난 첫 해산물! araignée는 불어로 거미라는 뜻.


대게가 쪄지는 시간에 맞춰 냄비밥을 했다. 대게가 도착하고 감사하고 잘 먹겠다고 거듭 인사하고 갓 지은 고슬고슬한 쌀밥에 간장을 좀 뿌려 둘이서 손으로 게눈 감추듯.. 단숨에 먹어 치웠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흡사 며칠 굶은 짐승들처럼 손가락을 쪽쪽 빨며 내장에 밥까지 비벼먹어 저녁을 해결했다.


간이 보트에 점점 바람이 빠지는 게 보여서 혹시 구멍이라도 났나 했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바티가 모터도 열어서 부품을 닦고 점검했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빌려 더 멀리 있는 해변에도 다녀왔다. 역시나 그곳까지 가서 하는 건 누워 있다가 해가 너무 뜨거우면 물에 들어갔다를 반복하는 것뿐.


배 내부도 떠나기 전 깔끔하게 정리하고 모든 건 제자리에 = 찬장 안에 둔다. 그렇지 않으면 항해 중에 우당탕탕 떨어지기 때문에.

20160723_071052.jpg


다음 목적지는 일 듸유 île d'yeu인데 '듸유'라는 발음이 신을 뜻하는 Dieu와 같게 들린다. 그래서 스펠링을 몰랐을 때는 이 섬의 이름이 정말 <신의 섬>인 줄로만 알았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순항을 예상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기분 좋은 파도와 바람이 계속됐다.


항해일지.


파도는 우리를 높여주고 우리를 밀어주고 우리를 감춰주고


믿을 건 바다와 바람뿐이었고 보이는 것 또한 바다뿐이었다. 파도가 한 번 치면 바티가 그 파도에 업히게끔 키를 살짝 밀면 딱 그만큼 그 파도에 밀려 바라미가 나아갔다. 참으로 정직하고 정당한 여행이다. 크고 고른 파도가 일정하게 오면 보폭을 넓게 해서 걷는 것처럼 좀 더 빠른 속도를 냈다. 파도가 우리를 보살피고 우리의 보폭을 주관해서 어떤 신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오전 10시경 혁오 밴드의 settle down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돌고래 한 마리가 모습을 보였다. 처음 본 돌고래였다. 그 한 마리는 배 왼쪽에서 나타나더니 오른쪽에서도 한 번 더 모습을 보이고 사라졌다.




일 듸유 항구에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배를 묶어두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라미와 같은 크기의 배가 들어왔고 자리가 부족해 우리 배와 커플로 묶기로 했다. 배 주인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데 검은 털의 개 한 마리가 선실에서 튀어나와 우리 배에 올라탔다. 너무 친근하게 굴어 마구 귀여워해줬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커튼을 걷자마자 그 틈으로 이 녀석이 얼굴을 내밀어 나를 빵 웃게 만들었다. 항구에 정박한 다른 배에서 항해하는 고양이도 봤다. 아마 어릴 때부터 배에 많이 타 보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양이는 역시 개보다는 배에 태우기가 훨씬 까다롭다고 들었다. 언젠가 좀 더 큰 배를 사서 우리 집 고양이 이비자와 꼭 같이 항해하길 기대하고 있다.


20160723_210252.jpg
20160723_205651.jpg


일 듸유는 본격적으로 바다를 건너 스페인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섬이다. 항구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동전 빨래방에서 세탁기 2대를 돌려놓고 큰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장은 80유로치를 봤다. 바티가 바다를 건너는데 3일 정도를 예상했고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이 날 당장 해 먹을 불고기만 생고기를 샀고 나머지는 모두 통조림이나 훈제 햄으로 준비했다. 특히 과일을 종류별로 다양하게 많이 샀다. 와인, 시드르 등 술도 잊지 않고 샀다.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도 들렀다. 항해 유람을 한 지 10일째인데 밤에 잠을 자다가도 수십 번을 깬다고 했다. 약사 아저씨는 잠이 들긴 드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원래 배에선 다들 잘 못 잔다며 잠 오는 약보다는 비타민이나 먹으라고 해서 쿨한 처방에 따랐다.



IMG_20160724_124311992.jpg 점심, 불고기. 떠나기 전 만찬.



IMG_20160724_150006181.jpg 이불보부터 양말까지 밀린 빨래하고 바닷바람과 볕에 말리기.



IMG_20160724_182918322.jpg 친구들에게 보낼 예쁜 엽서와 항해 중 먹을 수제 통조림들.



이 때도 감이 잘 안 왔다. 직선으로 바다를 건너서 스페인 히혼 Gijon에 도달하는데 3일 즉 전반적으로 순풍을 맞는다고 계산했을 때에 7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이제까지 이동거리 중에 제일 길었던 게 10시간 안이었으니 그거에 7배만큼을 준비하면 될까? 것도 아니다. 마실 물과 쓸 물을 최대한으로 채우는 걸 우선으로 했고 나머지는 적당히 준비했다. 물론 기름도 양껏 채웠다. 이불과 모든 옷들도 말랐고 저장고도 가득 채웠으니 떠나는 일만 남았다. 걱정은 크게 안 됐던 것 같다. 그저 돌고래를 실컷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멀미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 쉽진 않을 거다. 밤에 교대로 3-4시간씩 돌아가며 키를 잡아야 하니. 오히려 바다로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위험요소는 줄어든다. 바라미를 믿고 바티를 믿고 따르는 수밖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