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사사롭고 진지한 탐구가 현대사회에 필요한 이유

by 환희

현재 두 개의 독서모임과 하나의 그림책모임에 나가고 있는데 각각 주제에 맞게 책을 정해 발제를 하기도 하고 책 한 권을 정해서 읽어 온 후 각자의 감상을 말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있어서 내가 전혀 관심 두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도 기웃거리게 됐다는 거다. 예로 지난번 독서모임 때는 지도를 좋아하고 땅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분이 발제한 구글맵 활용 관련해서 생활에 무척 실용적인 팁을 얻었고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분이 가져온 스토리를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이 담긴 아트북 얘기를 듣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게임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게임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픽사 애니메이션 뺨치는 구성에 다시 보게 되었다.

요즘엔 덜하지만 한 때 ted에 빠져 살던 때가 있다. 한국 버전으로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가 있는데 세바시는 대체로 이미 꽤 이름이 있거나 어느 정도 성공한 연사들 위주이고 ted는 깊이 있게 탐구한 말 할 거리만 있다면 그 주제가 무엇이건, 유명하건 그렇지 않건, 나이가 어려도 나와서 그것을 소개할 수 있다. 모두에게는 15분이 주어질 뿐이다.

십 년 전에 보러 갔었던, 예술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15분 정도의 pt를 하게 한 <페차쿠차>가 생각난다. 지금 참여하는 예술가 모임 <매즘>에서도 무용, 시, 사진, 회화, 패션,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멤버들이 각자가 해 온 작업을 발제하고 있다. 지난번엔 철학을 공부하는 멤버가 자신이 요즘 행하고 있는 '비건'에 대하여 발제했고 같이 토론했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소년과 수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각자가 가장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 그림을 그리며 모든 공룡의 이름을 외우고 그 시대에 땅과 물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과정까지 정확히 이해해서 꼬물꼬물 그려간 것에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어떤 아이는 그리스 신화를 만화로 섭렵해 꿰고 있었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와 내가 최근에 관심 갖게 된 고래의 진화에 대해 말하고 그 아이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서 반가웠다. 이런 식으로 각자가 ''꽂힌'' 분야가 있고 열정적으로 그것에 대해 10분 정도 말하고 듣는 자리가 있다는 건 실로 즐거운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것을 원하고 물질과 부와 성공만을 중시할 때 '종이비행기를 멀리 효과적으로 날리는 방법'이나 '고래의 진화' 같은 건 안 들어도 그만, 아무래도 상관없고 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개개인의 진지한 (어쩌면 헛짓거리라고 놀림받을 수도 있는) 탐구 덕분에 그 개인이 획일화돼가는 현대사회에 묻히지 않고 고유성이나 개성을 가지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자유 탐구가 자연스럽고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눈치 보지 않고 깊이 파고든 것들을 서로가 소리 높여 떠들어 댄다. '난 이런 걸 알아! 대단하지!' 그러면 다른 아이가 엇.. 난 저건 모르는데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난 이런 이름들을 외우고 있지 너 설마 이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하며 신이 나서 되 받는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그에 반해 어른들은 관심사나 취향을 고려함에 있어서까지도 남들에게 평가받는 것 같다. 특정 단어에 민감한 편인데 주류가 따르는 것 외의 것을 좋아하거나 독특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특이 취향'이나 '사차원'으로 묶는 게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 안에 암묵적인 배제의 뉘앙스가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인데.. "쟤는 뭘 저런 걸 좋아해"가 아니라 나와 다른 것에 대해 그냥 두기.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가지고 살아온 프레임 즉 인식의 틀 안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걸 테니. 인정하는 것과 이해는 다른 개념이다.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할 필요는 없고 왜 그런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도 '넌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마는 거다. 때로는 저렇게 인정하는 데 있어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엉뚱한 예지만 난 학창 시절부터 혼자 미용실에 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머리를 해 왔다. 내가 해보고 싶은 머리. 꼬불꼬불 볶아 보기도 하고, 쥐 파먹은 것처럼 잘라보기도 하고, 한 땀 한 땀 꼰 레게 머리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여전해서 내 만족이 큰(=남의 시선은 덜 신경 쓰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나타나면 가까운 친구들은 "너니까 그런 머리를 하지" 하고 만다. 그런데 커 가면서 느낀 거지만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남이 보기에 예쁜' 머리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아이들과 같이 놀림을 받거나 이상한 사람 더 나아가 제멋대로여서 사회적인 틀 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갔던 미용실에서 손가락으로 빗질조차 불가능해진 내 머리를 보더니 짧게 다 잘라버리자고 점장님이 제안했다. 그러곤 물었다. "무슨 일 해요? 직장 다녀요?" -프리랜서예요.라고 하니 그대로 진행했다.

심지어 날 전혀 모르는 사람도 내 사진만 보고 아무렇지 않게 '다 좋은데 이 분 머리는 내가 좀 바꿔주고 싶다'는 얘길 전해 들은 적도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남 얘기하길 정말 좋아한다는 걸 프랑스에 살며 몸소 느꼈었는데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언행이나 성격, 태도 등 다양한 씹을 거리들이 올라오지만 외모에 대한 지적은 부러 조심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머릿속에서 제외된 듯했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와서 나를 처음 본 사람도 서슴없이 '교정은 왜 아직 안 했냐' 라던가 '점은 빼야겠네요', '살 좀 쪄야겠다'라는 얘길 던질 때면 난 정말 화들짝 놀라고 상처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칭찬의 기준도 다르다. 한국에선 '예쁘다' 나 '착하다'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하는 전형적인 칭찬이라면 프랑스는 외모 또한 칭찬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 없고 착하다 대신 그 사람이 한 행동에서 비롯된 '친절하다' '매력적이다' '교양 있다' 같은 말을 주로 썼던 것 같다.


어째 결론이 '제 머리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가 돼야 할 것 같은데.. 어른들 사이에서도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탐구와 수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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