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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Feb 05. 2020

교육이 뭐냐는 거창한 질문에 답을 하자면

교육이 뭐냐는 거창한 질문에 답을 하자면 보고 배우는 거다.


아이를 스마트폰 대신 책을 많이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간단하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스마트폰이나 티브이 대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부모를 따라 책을 읽고 있을 거다. 


누구나 지식 전달 차원에서의 교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본보기를 보이는 진짜 교육은 아무나 하기 어렵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유년기의 한 장면이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집에 있었고 냉장고에서 까치발을 들어 500ml 우유팩을 꺼낸다. 내 가슴쯤 오는 높이의 식탁에 컵을 가져와 꼬마인 내겐 꽤 무거운 우유팩을 들어 우유를 들이붓는다.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역시나 컵이 쓰러진다. 우유가 식탁 위와 바닥에 엎질러졌다. "조심 좀 하지~"라는 핀잔을 들은 것도 같다. 그렇다고 옆의 어른이 와서 "이리 내" 하며 따라주는 대신 앞의 장면이 다시 정확하게 반복된다. 우유를 따라 꺼낼 때마다 엎은 건지 한 번 꺼낸 우유를 그 자리에서 두세 번을 엎은 건지까진 알 수 없지만 결국 우유를 따라서 마신 건 나로 끝나는 기억이다. 

조작됐을지도 모를 기억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이런 참아주고 견뎌주고 끝까지 지켜봐 주는 작은 순간들이 내 몸 켜켜이 쌓여 나도 누군가를 한 번쯤은 더 참아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교육 종사자도 아니고 교육자로서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지도 않지만 프랑스에서부터 한국어 수업, 한국문화 소개, 아동 청소년 정신병원에서의 아트테라피 아뜰리에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자연스레 만나왔다. 그리고 2018년 봄 한국에 온 이래로 본격적으로 학원, 상담센터, 대안학교 등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주업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내게 비밀 얘기를 터 놓는다거나 선생님 최고예요 라고 한 적은 없지만 엄마들에게 몇 번 고백을 받은 적은 있다. '아이가 선생님을 참 좋아해요' '이사 간 집 근처에도 미술학원이 많은데 꼭 여기 다니겠대요' 하는 식의. 처음 만난 아이들은 어른인 나를 당연히 낯설어하고 수업에만 집중하다가 점점 대화가 늘어나게 되고 수다가 된다. 벌써부터 학원에 치이는 아이들에게 나는 자주 묻는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야?' '왜 그걸 좋아해?' 그게 컴퓨터 게임이던 흔한 만화 캐릭터이던 질문에 질문을 더해가면 조금은 더 그 애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애 자신도 다음번엔 그 애의 취향과 기호, 이유 같은 걸 시키지 않아도 말해주고 있다. '그냥요' '몰라요' 도 괜찮다. 1시간 남짓을 그저 와서 때우다 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애가 직접 만들고 경험해가는 창작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 내가 수업을 준비해 가지만 어떻게 그 애의 손에서 펼쳐질지는 아이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걸 지향한다. 


열네댓 살 아이들의 관심사는 나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깊고 다양하다. 모든 아이들의 취향과 정보는 유튜브에서 온다. 유튜브는 한계가 없는 세상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나는 친구들 중 가장 먼저 핸드폰과 인터넷을 장착한 컴퓨터를 가졌었는데 당시만 해도 무척 제한적이었기에 인터넷 세상은 별천지라는 걸 어렴풋하게 인식했어도 가끔 꺼내먹을 수 있는 사탕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 반면 옳고 그르다는 인식이 잡혀 가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또 엄청난 자본사회에 노출되어 모두가 유튜브를 맹신하고 모두가 크리에이터를 꿈꾼다는 건 사실 경악스러워해야 하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란 쯧쯧'의 그 현대인인 나조차도 종이책을 쌓아만 두고 정말 간편한 밀리의 서재 리딩북을 읽기 시작했고 이대론 안 되겠어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시간만큼 나무 한그루를 키워가는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인터넷과 연결되는 순간, 타인의 sns 활동을 들여다보는 순간부터 '이건 사야 돼'와 '이건 해야 돼' '여긴 가야 돼' '이건 먹어야 돼'의 늪에 빠져 정말 해야 할 일들은 뒷전이 되고 만다. 그 힘은 너무나 강력하고 교묘해서 내 온 정신을 순식간에 지배해 버린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경우도 인스타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어떤 공간에 간단한 제안서를 보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인스타를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프랑스인 친구는 작년 10월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한국에 왔는데 모든 사람이 '한국에 있으려면 인스타를 해야 해'라고 조언해 줬다고 하는데 여전히 인터넷도 wifi 존에서만 가능하게 지내고 있다. 적어도 그 친구는 자신이 인터넷과의 연결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프로모션 메일, 특가 알람, 단체톡 메시지들 대신 누군가를 만나 얘기할 때,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공연을 보게 됐을 때 그녀는 그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고요해 보였다. 반면 나는 연결이 되지 않았을 때 엄청난 불안을 느낀다. 핸드폰 없이 집 앞 슈퍼를 간다는 건 이미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에 반하려면 좀 더 물리적이고 실체가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빈번해져야 할 것 같다. 인터넷이 곧 세상이라지만 실제로 집 앞에만 나가봐도 내가 발 붙이고 있는 현실세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낀다. 좀 더 부딪쳐서 현실적인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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