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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Feb 18. 2020

그뤼에르와 슈크림 붕어빵

오후 4시, 새벽 배송으로 배달 온 슈크림 붕어빵 봉지를 냉동실에서 꺼냈다. 이전에 시켰던 다른 회사의 단팥 붕어빵보다 삼 분의 일 정도 작은 크기에 잠시 고민하다 4개를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었다. 친절하게 겉봉지에 쓰인 '에어프라이어에 5분만 조리하면 갓 구워낸 듯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슈크림 붕어빵이 완성' 된다는 조리법을 따른다. 슈크림이 든 붕어빵이라니. 나도 변했다.

나는 은근 고지식한 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다른 책은 전자책으로 읽는다 해도 시만은 물성을 가진 시집으로 꼭 읽어야만 한다던가 하는 식인데, 사실 왜 굳이 단팥 붕어빵에 슈크림을 넣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사촌언니가 꼭 먹어보라고 해서 시켜보게 됐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는 사이 완성된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붕어빵은 좀 줄어들어 있었다. 겉봉에 적힌 대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찬기만 사라진 적당한 온도의 슈크림이 첫 입에 배어 나와 좀 감동했다.

금방 한 접시를 비워냈지만 이건 진짜 붕어빵은 아니다.

예전처럼 겨울다운 겨울 추위에 입김을 불며 동네에 몇 없는 붕어빵 포장마차에 가서 두 손으로 들고 먹는 입이 데일 것 같이 흘러나오는 단팥이 가득 든 붕어빵은 더 이상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지내서인지 어쩌다 그 앞을 지나가도 반가운 마음은 들지만 매번 그냥 지나쳐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같이 드물게 눈이 종일 내리고 기온도 내려간 날, 붕어빵이나 사 먹을걸 그랬다. 근 십 년 만에 한국에서 맞는 겨울이다.


프랑스에 있을 동안 꼭 두 번 눈을 맞았다. 내가 살았던 낭뜨는 겨울에도 웬만해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눈도 거의 오질 않는데, 어느 해였던가 이례적으로 추웠고 밤새 내린 눈이 한 1cm 정도 쌓여 있었다. 낭뜨 시민 전부가 눈 구경을 하러 나왔다고 느껴질 만큼 인파가 거리를 메웠고 어떤 이는 카메라맨을 두고 성곽을 따라 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마침 한겨울에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사촌오빠를 보러 갔었는데 살면서 그만큼 쌓인 눈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랜트카의 바퀴가 헛돌았고 그때 일행들이 모두 내려 여전히 내리는 눈을 왜인지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모두 젊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그저 재미있기만 한 때였다.


며칠 전에 이어 그제, 어제 이례적으로 눈이 펑펑 내렸고 그때마다 부러 나가서 눈을 맞았다. 프랑스인 친구와 아침에 카톡을 하다가 그녀가 '나 이제 눈 맞으러 갈 거야. 이따 다시 얘기하자'라고 했을 때 묵묵히 그리고 온몸으로 기꺼이 눈을 맞으며 걷고 또 걷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프랑스에선 오후 12시 이후에 13시, 14시 이런 식으로 숫자를 바꾸지 않고 1씩을 더 해 시간을 말하는데 16시는 l'heure du goûter 간식시간이다. 내 주위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었어서 저 표현을 알게 됐었고 어른들도 종종 쓰는데 아이들은 각자 챙겨 온 간식을 먹고 나는 집에서 껑빠뉴 빵 pain de campagne 같은 단순한 빵에 치즈 한 덩이를 잘라 건조시킨 소시지 saucisson와 함께 껴서 먹었다. 감자칩이라도 하나 뜯으면 항상 제어하지 못하고 양 손에 기름을 묻혀 가며 한 봉지를 기어이 다 먹었다. 저 시간에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거나 누군가 우리 집에 오면 평소보다 연하게 내린 커피에 손님과 함께 보통은 동네 빵집에서 사 온 타르트 한 조각씩을 나눠 먹었다. 이 생생한 기억은 슈크림 붕어빵과 함께 큰 맘먹고 시킨 그뤼에르 치즈 한 조각을 뚝 잘라먹은 행위 직후에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상기됐다.

프랑스에서 그뤼에르 치즈는 보통 잘게 썰어져 있는 형태 râpé로 사서 감자그라탕 같이 치즈가 듬뿍 올라가는 짠 요리에 에멍딸 치즈와 섞어서 올리면 적당히 깊은 맛을 냈는데 한국에선 거의 3배가 넘는 가격에 구입했는데도 풍미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진정성이 빠진 그뤼에르 치즈처럼 밍밍한 맛이다.


수하물 60킬로를 맞추느라 프랑스에서 돌아올 때 나는 십여 년 간의 생활 끝에 최소한의 것만 챙겨 올 수 있었다. 거기에 금박이 입혀진 짙은 남색의 빈티지 커피잔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동안 한국에 돌아와서 내 자리를 다시금 정하고 집에서도 어느 책상에서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를 정하지 못해 어수선하게 지냈었다. 내 물건이라곤 내가 데려온 고양이뿐이었고, 나는 가족의 집에 들어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물건들의 규칙을 자주 흩트려 놓았고 그 때문에 서로 부딪혔다. 결국 같이 산다는 건 서로의 영역이 지켜지다가 어느 순간엔 침범되고 허용되고 또다시 규정되는 순간들의 반복인 것 같다.

화장실에 그 사람의 칫솔 하나만 꽂혀 있어도 화장실은 더 이상 예전에 나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비싼 커피잔을 사 본 건 처음이었는데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 고풍스러운 잔을 찬장에 전시하지 않고 매일 커피를 타 마실 요령으로 샀었다. 빈티지 상점 주인은 식기세척기에 넣거나 잔을 박박 닦으면 금박이 벗겨지니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가끔 내가 두고 온 그 잔이 궁금하다. 여전히 누군가 나 대신 쓰고 있는지 혹은 찬장 구석에 들어가 존재조차 모르게 돼 버렸는지.



photo_Paju, 9월 2019 ⓒFa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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