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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r 30. 2020

스물일곱 여름의 시작을 벨기에 정신병원에서

지난 메일에서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로헝이 일러준 대로 프랑스 낭뜨에서 벨기에와 가까운 접경도시 릴까지 TGV를 타고 가 거기서 벨기에의 소도시인 뚜흐네역까지는 지역 열차를 탔다.

정시에 기차가 도착했고 기차역을 나섰을 때 그곳에 서 있는 유일한 동양 여자애가 나뿐이었기에 로헝이 나를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간 서성여도 아무도 내게 아는 체를 하지 않아 로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느긋하게 "벌써 도착했어? 가는 길이야 금방 도착할 거야" 랐다.


낭뜨보다 서늘했던 날씨 탓인지 나는 긴장해 있었고 이윽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한 로헝이 내 앞에 차를 대더니 내려서 내 가방을 받아 주었다. 회색빛이 도는 백발의 머리를 길러 잘 쓸어 넘기고 고정시킨 헤어스타일과 같은 톤의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연극배우이자 희곡을 쓴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내가 일하게 될 곳과 업무에 대해 소개하더니 "작년에 한 여성 화가가 너처럼 인턴을 하러 왔었어. 그녀의 그림을 병원 내 공간에서 얼마 간 전시도 하고 환자들이랑 아뜰리에도 잘하다 갔지. 그리고 올해도 그녀가 병원을 찾았어. 이번엔 환자로 말이야."


"그러니 너도 연속으로 오지 않게 조심해" 라며 나는 결코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농담을 건넸다. 하하.


Leuze에 도착하자 그는 도시를 구경시켜주겠다며 기차역을 주변으로 한 바퀴 돌았다. 기차역을 뒤로하고 쭉 뻗은 4차선 도로를 5분쯤 달리니 좌측에 붉은색 벽돌로 높은 담이 쳐지고 차량통제 바가 내려와 있는 병원이 나타났다. 그 작은 도시에서 내가 본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작은 Leuze보다 훨씬 잘 조성된 하나의 축소 도시 같다. 붉은색 벽돌로 된 여러 채의 건물들, 우뚝 솟은 예배당, 작은 정원과 내가 일하게 될 소셜 바 bar-social까지.


나는 행정과가 있는 3층짜리 건물의 인턴생 숙소인 2층에서도 주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202호를 배정받았다. 지금 와 있는 인턴생은 나뿐이라고 했다. 1인용 나무침대와 그 옆에 작은 협탁, 나무책상과 오렌지색 플라스틱 의자, 팔걸이가 있는 가죽의자, 옷장, 세면대와 거울이 있고 정원 쪽으로 큰 창이 나 있는 깔끔한 방이었다.

방을 안내해 준 간호사가 병원 로고도 없는 새하얀 침대보와 베갯잇, 수건은 복도 끝에 항상 구비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기내용 캐리어와 25L 배낭에 담긴 한 달짜리 짐을 풀었다.

로헝은 진작에 인사를 하고 그의 집으로 갔고 나는 저녁 8시 이후로는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굳게 문이 닫히는 곳에서의 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다.   


스물일곱 여름이자 6월의 셋째 날이다.


6월이지만 언제 태풍이 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벨기에 특유의 날씨와 어울렸던 붉은색 벽돌 건물 ⓒFa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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