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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Mar 31. 2020

내 솔직한 감상은 그들 모두 꽤 멀쩡해 보였다는 거다.

Leuze에선 내가 떠나온 곳과 같은 언어를 쓰지만 처음 만나 인사할 때 오른쪽-왼쪽에서 그치지 않고 오른쪽 뺨을 한번 더 내어줘야 하고 아침을 점심이라고 하고 저녁을 점심, 그리고 저녁을 뜻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이 외에도 숫자 70, 80, 90도 다르게 말했다.     

다녀본 유럽 국가 중 가장 작은 이 나라는 각각 다른 언어를 쓰는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고 그닥 잘 융합되지 않아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어도 끝까지 각자의 언어를 고수한다고 했고 분쟁이 아주 심한 지역에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내 건 가게까지 있다고 들었다.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소셜 바는 단층짜리 현대식 단독 건물이고 로헝을 쉐프로 네 명의 팀원이 더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끼리 혹은 가족들이 면회 와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가는 사교클럽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안 쪽으론 큰 주방이 있어서 요리 아뜰리에를 하기도 하고 작지만 채광이 좋은 건물 끝 작은 공간에선 판화 수업도 한다. 

에슈보 [écheveau], 이 곳의 이름이다. 실타래라는 뜻이고 비유적으로는 복잡하게 얽혔다는 뜻도 있다. 


각자의 방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조간신문을 읽으러 오는 사람들, 여기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 가는 사람들이 꽤 됐었어서 병원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곳 중 하나였다. 내 숙소에서 나가 오른편에 식당과 예배당을 두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3분이면 도착했다. 로헝이 문을 열고 팀원들과 간밤의 안부인사를 묻고 전 날 청소하고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은 의자들을 내리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창고에서 탄산음료를 꺼내 냉장고 안에 열 맞춰 채워 넣고 스낵, 초콜릿, 칫솔, 면도기 같은 간단한 생필품 양도 체크한다. 커피 머신에 원두가루의 남은 양을 확인하고 종이컵과 에스프레소 잔도 줄 맞춰 쌓아두고 있을 때쯤 은행에서 가져온 것 같이 흰 종이에 소시지처럼 쌓여 있는 1유로와 50썽팀, 10썽팀짜리 동전을 무슈가 가지고 온다. 커피나 탄산음료, 미니 감자칩 등 웬만한 품목이 1-2유로로 밖에서 파는 가격의 반 정도였다. 여기서 모인 수익은 에슈보 사람들이 하는 모든 아뜰리에의 재료 지원비로 사용되고 환자들은 누구라도 아뜰리에를 와서 무료로 듣는 식으로 돈이 순환됐다.


첫날, 카운터 바를 경계로 두고 그 뒤에 있는 나와 반대편에 앉은 대부분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고 아무도 내게 인사 말곤 따로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은근한 탐색전 같은 게 느껴졌다. 내 솔직한 감상은 그들 모두 꽤 멀쩡해 보였다는 거다.


낯선 곳에서 실수하지 않으려 긴장해 있던 터라 시간이 빨리 흘렀다. 이내 점심시간이 됐고 환자들을 제외한 병원 내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 등 모두가 큰 식당에 모여 식판에 미리 준비된 식사를  받았다. 우리 팀 사람들은 아직 공기는 찼지만 해가 난다며 에슈보 바로 앞의 나무 테이블에 모여서 먹었다. 식기를 반납하러 가니 내 이름과 에슈보가 적힌 이름표가 붙은 저녁 식판이 랩으로 쌓여 있었다. 


특별할 것 없었던 하루가 지나갔다. 


문을 닫고 정산을 하고 청소를 하고 서로 수고했다며 나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행정실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건물에 들어가 노트북으로 외장하드에 가져온 영화나 다큐, 시사방송 중 하나를 켠다. 

병원 내에선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이다. 


 

저녁을 souper라고 부를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 이 곳 사람들은 저녁을 간단하게 먹는 편이란다. 결국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 와 볶음밥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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