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영찬 씨가 내 꽃 작업 이미지들만 보고 건넨 질문들 중 첫 번째.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있는지. 없다면 왜 없는지.
프랑스에서 꽃을 배웠다. 그저 '길에 핀 꽃' '꽃 집에 진열된 노란 꽃' '예쁜 꽃'은 꽃을 알게 되면서 각각의 이름으로 불렸다. '어? 시클라멘이 여기 피어 있었네?' 하는 식으로 매번 지나는 길에 핀 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게 됐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서 바다를 새로 알게 되고 다시 정의하게 된 것처럼, 꽃들이 내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낭뜨의 한 꽃집에서 인턴을 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가보니 카운터 옆 꽃병에 구불거리지만 단단해 보이는 줄기에 실크천으로 만든 것 같은 섬세하고 거대한 꽃잎을 가진 꽃들이 꽂혀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가까이 다가가 꽃집 주인 티에리에게 '이 꽃은 무슨 꽃이에요?' 하고 물으니 'Pavot [빠보]'라고 했다. 같은 꽃병에 아직 피기 전인 건지 털 달린 녹색의 꽃봉오리도 한 두 개 꽂혀 있었다. 티에리는 그중 한 줄기를 꺼내더니 라이터 불을 켜고 그 봉오리 끝에 불이 닿을락 말락 하게 갖다 댔다. 그 순간 마법을 부린 듯 꽃봉오리가 툭 터지듯 벌려지더니 천천히 그 안에 접힌 꽃잎들이 기지개를 켜듯 반으로 갈라진 봉오리를 밀어냈다. 마치 번데기에서 나비로 우화를 하며 접힌 날갯잎이 펴지는 것과도 같은 극적인 장면이었다. 그렇게 활짝 핀 꽃잎은 어른 손바닥만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덧없는 즐거움'이라는 꽃말처럼 스러진다. 그냥 시들어버리는 다른 꽃들과 달리 pavot는 또 한 번 사그라진 꽃이 모자를 얹어 쓴 도토리 형태의 씨방으로 변모한다. 프랑스에서 늦봄에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용 양귀비인 꽃양귀비, 개양귀비의 일종이다. 유전자 변형을 거쳐서 향은 덜해지고 꽃잎은 풍성해지고 일주일도 훨씬 넘게 가는 요즘 꽃들 사이에서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개화해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미련 없이 져 버리는 꽃다운 생을 살다 가는 것에 매료된 걸지도 모르겠다.
작년 봄, 내추럴 와인 바에 권재우 작가 도기에 꽂은 양귀비 ⓒFany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