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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Sep 09. 2020

내가 나의 멱살을 끌고 가야 한다

100일동안 글쓰기_1

일요일 아침, 모두 같이 동물농장을 보고 있었다. 노견과 살아가는 주인들의 얘기였는데 어떤 이가 울먹이며 '바람 앞의 촛불이에요' 랐다. 18년을 산 그 개는 사람으로 치면 130살 정도 됐단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티비를 끄고 나갈 채비를 하던 엄마는 무심하게 한마디 던졌다.

"나도 의사들한테 매일 저 말 들었어. 바람 앞의 촛불. 너 보러 갈 때마다"

티비에서 우연히 들은 저 말이 엄마의 삼십여 년 전 의식 속 기억을 건드렸다. 

할머니 말마따나 맥주병만 한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아이는 언제 스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바람 앞의 촛불 같아서 아무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온실 같은 투명관 안에서 죽지 않고 한 달을 넘겼을 무렵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모두 모인 집에서 이름 짓는 걸 더는 미루지 말자고 얘기가 나왔단다. 엄마는 아빠에게,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토스했으나 지지부진했다. 할머니는 방 안 책꽂이에 꽂혀 있던 불교서적을 어떤 계시처럼 펼쳐 들었고 그 페이지에 있는 방생과 관련한 '이환희'라는 누군가의 이름 석자를 가리키며 '이거다' 하셨다. 

그 이름은 돈 받고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소에서도 이만한 이름은 나도 못 짓는다고 했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즈음 나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병원을 나와 비로소 가족과 함께 집에 왔다. 바람 앞의 촛불이었던 아이는 부모나 조부모 그 누구보다 멀리 바다 건너 세계도 다니며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다.


동네나 일하는 곳 바로 근처까지 코로나가 덮치며 3주째 자가격리 수준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모든 게 정체됐고 일상이 무너졌다. 삼 주동안 단지 앞 슈퍼를 두 번 나갔다 온 게 다다. 거기에 연이은 홍수와 장마 속에 비타민D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다. 


아침에 환갑의 부모를 출근시키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고 거의 아무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2주가 넘어가던 때, 여유롭지만 우울한 오전 11시에 핸드폰 화면에 뜬 친구의 이름을 보고 울컥했다. 세상과 단절된 고립감과 언제 다시 일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그에 따른 의욕상실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그 친구는 긴긴 통화에서 이전에도 상황은 달랐지만 수없이 겪어 온 위기들을 돌파해 내려면 내가 나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수밖에.라는 정말 멋진 명언을 남겼다. 

나는 두어 번을 더 '내가 나의 멱살을 잡는다'라.. 너무 감명 깊어 혼자 되내었다. 

5만 원의 돈을 걸어 놓고 100일간 매일 글쓰기를 하면 100일 후에 그 돈을 환불해 준다는 플랫폼 얘기나 9월에 시작하는 오프라인 글쓰기 강의에 지금 같이 슈퍼도 벌벌 떨며 가는 내가 과연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결국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 저 한마디를 듣기 위함이었다.

프리랜서 n년차인 친구는 흡사 생활의 달인 같은 엄청난 노하우를 알려줬다. 

하루에 딱 3시간이야. 무조건 그 시간은 책상 앞에 앉는 거야. 네가 설사 한 줄의 글도 못 쓰거나 그 어떤 생산적인 것도 하지 못했다 쳐. 그렇다 해도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그 날은 일을 나갔는데 공친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주 중요해. 엄연히 다른 거거든. 일주일만 이렇게 해 봐. 그러면 한 달도 할 수 있게 되거든. 삶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거야. 그렇게 작업실(중간방)로 직장인들처럼 주 5일, 10 to 6 출퇴근을 하고 나면 저녁이나 주말에 쉴 때 스트레스도 안 받고 마음이 편해.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였던가, 노하우며 모든 레시피를 남김없이 다 알려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댔다. 

나의 최애 작가 이슬아도 최근 인터뷰에서 '못 쓴 자기 글을 꾸준히 견딜 줄 아는 애가 작가로 사는구나'라고 해서 새삼 고개를 끄덕였지만 깨달음에 이르러 당장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게 되지는 않았다.  


저런 주옥같은 말들을 듣고서도 서재이자 작업실인 중간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렸다. 다들 고맙게도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줬다. 내가 다른 이들처럼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선 지난 3주처럼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나는 정말 비타민D나 주문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연히 가까운 두 사람에게 '너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음.. 내가 하고 싶은 건,.. 잘 모르겠어. 이 말을 내뱉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그게 나의 현주소였다. 그러니까 꼭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곧 맞닥뜨렸을 현타-현실 자각 타임-였다. 거의 새로 태어나야 했다. 싯다르타는 출가를 했고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은 어떻게 새로 태어나야 할까. 엄마의 지인에게 새것 같은 중고로 받은, 당근 마켓에 올리기 직전의 실내 자전거에 건전지를 넣었다.

내가 매일 지킬 수 있는 소소한 것들부터 시작해보자. 비타민D를 살 게 아니라 블라인드를 올리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에 20분씩 사이클을 타보자. 효과는 확실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근육은 당기지만 몸에 활기가 돌았다. 기세를 몰아 나만의 연재를 해보고자 꽃, 여행기, 취향(책, 현대 예술 소개) 등의 카테고리를 요일 별로 나눴다. 어느 정도의 틀과 마감은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 좋은 동력이 된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실내 자전거로 슬렁슬렁 10km를 달렸다. 어제보다 한 발자국만큼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lentement mais surement,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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