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감을 줬던 책들을 떠올려보면, 나는 그 책들을 읽다가 자주 책을 덮었었다. 그리고 연이어 떠오르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고 때로는 책의 한 문장이 생각지 못한, 잊고 있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가 슬프거나 후련하다거나 기뻤다. 그리고 책을 덮고 뭔가를 적어 나가게 했다. 내게 좋은 책은 그런 책이다. <긴김밤>을 채 반도 읽지 않았을 때 이미 같이 읽고 싶은 사람들이 여럿 떠올랐다. 나의 어린 조카들부터 알고 지내는 어른들까지 매우 다양했다. 오랫동안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이 책이다.
이토록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그만큼 다양한 포용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코끼리들 사이에 있는 유일한 코뿔소인 노든. 어떤 이유로 그들과 같이 있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그게 노든의 첫 기억이다. 다른 코끼리들처럼 코가 길어지지도, 귀가 넓어지지도 않는 노든을, 코끼리들은 ‘우리도 너만 할 때 그랬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노든의 코와 귀는 자라지 않았다. 대신 뿔이 있을 뿐이었다. 노든은 어렴풋이 자신이 코끼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태어나서부터 백인 부잣집 아이들 틈에 섞여 자란 흑인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던 사진사에게 부탁해 아이들은 처음으로 사진에 찍히게 된다.
'난 오래 그 사진을 들여다봤어. 그랬더니 정말 내 옷과 내 머리채를 하고 있더라. 그래서 난 외쳤지.
-오, 오! 내가 흑인이네!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어. 하지만 난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진 정말 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줄만 알았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노든의 뿔은 코끼리들과, 또 다른 동물들과도 구별해 노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뿔 사냥꾼들이 뿔을 얻으려 코뿔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며 점점 개체 수가 줄어 노든은 지구 상에 남은 유일한 흰바위코뿔소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뿔이 잘린 노든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혼자서는 코뿔소가 될 수 없다.
비슷하거나 다른 것들 사이에서 인간끼리, 동물끼리 각각 집단을 이루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세계에 속해 있다고 느낀다.
노든이 말했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것도 있어. 이제 나는 뿔이 간질간질할 때 그 기분을 나눌 코뿔소가 없어. (..) 너는 다른 펭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되겠지만 나는 그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떠."
노든은 마지막이자 유일무이한 개체가 되면서 길을 잃었다. 삶의 의미와 목적도 잃고 다시금 바깥세상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고 까칠한 펭귄 한 마리를 만나며 다시금 '우리' '함께'라는 존재가 노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지켜야 할 존재. 그를 위해 가야만 하는 곳이 생겼다. 바다. 지켜야 할 존재란 아이러니하다. 나 자신 외에 지켜야 할 것이 생김으로써 그때부터 전전긍긍, 잘못되면 어쩌지란 생각에 노심초사하다가도 바로 그 존재가 이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바다의 모래사장이 아닌, 들판 위의 밤하늘을 보고 코뿔소 아빠 곁에서 태어난 펭귄이라니.
그렇게 서로를 위하는 둘도 결국 어느 시점에 헤어진다. 그건 예견된 그리고 마땅한 헤어짐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과 이름 없이 태어난 '나'를 수많은 여느 펭귄들 사이에서 노든은 반드시 알아봐 줄 거라는 믿음과 함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이건 시작과 끝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시작의 이야기이다. 안전하고 익숙한 곳을 떠나 예측할 수 없는 바깥세상으로 떠나는 모험기처럼 보인다. 평생 안락하고 위협이란 전혀 없을 곳이라고 여긴 동물원에서조차 뿔이 베이고 친구가 죽어 나간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불운하게 여겨져 아무도 품지 않던 알이었던 '나'는 특이하게도 여러 아버지들의 손에 맡겨져 태어난다. 노든은 그가 태어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과거와 아버지들의 존재를 들려주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내라고 한다.
'나'는 이름이 갖고 싶다고 한다. 노든은 말한다.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라고 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여기에는 나를 있게 한 존재들, 뿌리들, 내가 속해있는 곳,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곳,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진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펭귄이 얼마나 될까. 저 바깥세상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라는 데가 있다고 들었다 한들 모든 펭귄이 그 바다를 꿈꾸지도 않을 거다. 코뿔소와 코끼리, 펭귄이라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외양, 습성은 이 책에서 그저 '다름'으로 다뤄질 뿐이고 어떻게 함께 연대할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모색해 나간다. 그 안에서 다 다른 '나'는 각각의 '나'로 세상에 존재한다. 아 정말 멋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