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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3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군대리아를 먹다

소싯적 고무줄놀이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아아~"

노래의 제목을 몰라 그냥 '전우의 시체'라고 불렀던 이 노래. 정식 제목은 <전우야 잘 자라>라는 군가이다. 우리는 1절만 불렀는데 전체 4절의 이 군가는 내용이 자못 비장하고 살벌하다. 

         

[1절]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 간 전우야 잘 자라


[2절]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3절]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4절]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얼마나 슬픈 역사이기에 아이들의 노래에 군가 스며들었을까. 그 와중에 신기한 건 이 노래를 내가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느샌가 흥얼거리게 된 군가는 또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1962년에 발표된 <진짜 사나이>. 전체 가사는 몰라도 누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까지만 하면 그다음이 자동으로 나오는 노래. 이 군가는 도대체 언제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걸까?


우리는 그렇게 독특한 공감 속에 산다. 어린 시절에는 관심이 1도 없다가 입영날짜를 받고 나면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가슴에 사무친다. 죽고 못살던 커플도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가면 '일말상초'의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평소 아이돌에는 관심도 없던 대학 동기가 군대에 가서는 여자 아이돌이 군생활을 버티게 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고 간증한다. 크고 거대하게 여러 세대에 거쳐 이어지는 경험은 모양만 조금 다를 뿐 본질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이제는 단순히 힘들었던 경험, 에피소드를 넘어 새로운 문화나 유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 '군대리아'라는 괴식의 정체를 들었을 때 도저히 '맛있음'과는 연상되기 어려운 음식을 군필자들이 입을 모아 너무 맛있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그런 방법을 고안해냈을까. 그리고 그걸 다들 따라한 걸까. 


그런데 그 메뉴가 유명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메뉴로 등장했다. 향수에 기댄 마케팅이더라도 그 향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면 안될 것도 없는 일이다. 지금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어느 어린이가 십여 년이 흐른 뒤 이때를 회상하며 "그때 '군대리아'라는 희한한 메뉴가 있었는데 기억나지?"라고 운을 떼면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댈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D.P>가 이야기하는 군대 내 가혹 행위에 대한 이야기에 가슴 아프게 공감했다. 드라마가 한창 화제였을 때 내가 가입한 익명 기반의 커뮤니티 앱과 사내 게시판에는 '진짜 이런 이들이 있었냐'는 문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 순식간에 수십,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보거나 들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비슷한 일들을 겪었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PTSD가 느껴져 <D.P>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아하는 큰 차, 중장비 운전을 할 수 있어서 군 생활이 참 좋았다고 누누이 강조한 남편은 <D.P>를 무척 재밌게 봤다. 비슷한 일을 직접 겪거나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보는 내내 펼쳐지는 내부 상황이나 분위기들이 '너무 사실적'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드라마와 똑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군대라는 곳이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는 공감대가 군필자들 사이에서 있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참 슬픈 일이다. 어린이들이 따라 부를 만큼 군가가 울려 퍼졌고 급식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딸기잼 바른 빵을 우유에 찍어보았으며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료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 사람들의 또렷한 기억이 되어버린 군대의 문화를 놀이로, 새로운 먹거리로, 감동적인 드라마로 승화시키는 것은 또 우리나라만의 특징일까. 아니면 군대 문화가 마치 공기처럼 떠도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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