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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4 -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되나요?

군대를 안 가면 어떻게 되나요?

15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의 이직도 거치며 제법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행동의 이면을 생각하는 것이 버릇이라 다른 사람, 다른 행동 속에서 비슷한 맥락이나 배경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 말투 속에 자연스러운 부드러움이 배어  있는 사람. 주어지는 틀에 맞추는 것을 자연스러워하지 않는 사람. 


나의 경험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 특히 남자들은 대체로 군 면제자이거나 공익근무를 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모두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며,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서도 저런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닌 나의 경험과 뇌피셜임을 감안해주길. 


하여간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내가 상대방이 일반적인 군필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패턴은 보통 이러했다. 그 사람의 배경은 전혀 알지 못한 채 평소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그의 말투나 때로는 사소한 제스처,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등에서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을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좀 더 친해진 이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혹시 군대는 어디 다녀오셨어요?" 그러면 그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대답한다. "아, 저 사실 군대 안 갔다 왔어요." 혹은 "저 공익이에요." 


여기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달리 생각하면 내가 군필자들과 지내며 생긴 그들에 대한 일종의 '이미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다르다'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조직 내에서는 조금 튀는 존재인 경우가 많았다. 저만 생각한다거나 위아래를 모른다거나 여직원들과 대화를 잘한다는 것으로도 술자리의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내가 느낀 일종의 편안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두 살 터울인 남동생은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편이며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스타일이다. 심성이 고와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남동생이 어릴 때부터 그런 성격이 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성격 개조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부모님은 당시 남동생이 '군대를 안 가서 그렇다'라고 해석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입대 전 남자 젊은이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군대를 가야 사람 되지." "저렇게 해서  군대 가면 어쩌려고." "군대 가서 정신 좀 차려야 된다." 등등. 군대가 미완성의 사람을 완성된 형태로 개조시켜 주는 곳인양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조직 내에서 남자들이 남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튀는' 사람에 대한 흔한 뒷담화 중 하나는 "그 사람, 군대 안 갔다 왔다며?"라는 말에 "아~ 정말? 어쩐지!"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어쩐지'라는 단어 안에 그들은 어떤 의미를 담은 걸까. 


다시 내 동생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동생은 군대에서 부모님의 희망처럼 성격을 고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온몸으로 체험한 동생은 이런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일반 직장에서 자신이 버티기 힘들 것이라 판단하고 그들에게 굳이 맞추며 살지 않아도 될 직업으로 공무원을 희망했다. (아쉽게도 희망을 이루지는 못했다.) 


군대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유독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런 것인지 그들에게 군대가 유익했던 이유는 대부분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군대를 제대하면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시간을 충분히 갖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가져본 적 없는 '나'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가죽 제품을 만들고 있는 나의 남편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에게 진짜 필요했던 건 과연 '군대'였을까 '시간'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른 걱정 아무것도 없이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군대라는 특수한 곳이 아니고서는 갖기 힘든 것일까. 


군대는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일까.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사회 현상들은 많다. 군대 가야 사람이 된다는데 그 수많은 범죄자들 중에 군필자들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이 서글픈 기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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