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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rah Oct 23. 2021

Ep.6 - 선배는 왜 늘 무섭죠?

'선배'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살벌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 내 눈에 보이지 않던 그들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등장했다. 입학식 날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던 아직 초딩에 더 가까운 우리를 창문에 매달려 쳐다보며 수근수근하던 '선배님'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유독 잘 보였고, 이상하리만치 차갑게 느껴졌다.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서 얼굴이 제일 잘 보였기 때문일까.


선배들은 이상하게 100미터 앞에서도 선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내가 주눅 들어 있었기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아이컨택을 하는 그들이 선배임을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쭈굴이와 안쭈굴이의 차이랄까. 아마 나 역시 중2 때부터는 어깨에 힘을 주고 저 멀리 쭈굴하게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짜식, 신입생이구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복도를 지나다 어느 선배와 어깨를 부딪쳤는데 뺨을 맞았다던가 하는 흉흉한 소문들이 간혹 들려왔지만 눈에 띄지 않게 학교 생활을 무난히 하던 내가 처음으로 선배에게 '호출'을 당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부반장으로 학생회 소속이었는데 어느 날 3학년 학생회 선배들이 우리를 소집했다. 우리는 본관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음악실 건물로 프랑크 소시지처럼 줄줄이 들어갔다. 


뜻밖에도 거기에는 1학년 학생회 후배들도 있었다. 자리에 앉은 선배들은 우리에게 앞에 일렬로 서라고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동으로 양손을 공손히 모은채 고개를 숙이고 섰다. 


"야, 너네 1학년 학생회 애들한테 선배 보면 인사하라고 시켰어 안 시켰어?" 

정신없는 상황이 더 정신없어지는 카운터 펀치 같은 질문이었다. 

"애들이 우리를 봐도 인사를 안 한다고 하던데 너네가 제대로 교육시켰냐고!"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때 해야 하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1학년 학생회 후배 중 누군가가 3학년 학생회 선배의 얼굴을 잘 모르고 인사를 못했던 것 같다. 한 번 소집해서 '단도리 쳐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오갔을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그런 모래알 같은 이유로 깨지고 있을 때 1학년 후배들은 옆쪽 벽에 붙어서 일렬로 서 있었다. 그들도 역시 두 손을 모은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1학년, 너네가 제대로 못하면 이렇게 선배들이 혼나는 거야, 알겠어?" 그 이후로도 10여분 정도의 일장연설이 이어졌고 5교시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3학년 선배들이 먼저 음악실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1학년들을 그렇게 혼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선배에게 정통으로 맞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불쾌하다. '학생회'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3학년 학생회를 어떻게 한 번에 기억하라는 건지. 우리 층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도 다 기억 못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감히 그 자리에서 그런 이의를 제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선배들은 무서우니까.


대학생 때는 운이 좋았던 것인지 단체로 모아 혼내는 선배들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 나의 행동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사발을 돌리자면 사발을 돌렸고 건배를 하자면 건배를 했다.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 싫은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선배에게 '싫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운을 대학생 시절 다 써버린 것인지 첫 직장이 언론사였다.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가' 싶은 수습기간이 펼쳐졌다. 시간 맞춰해야 하는 전화 보고는 1분도 늦으면 안됐다. 보고 내용이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바로 욕이 날아들었다. 단순한 질문에도 나는 자주 버벅거렸다. 이 사람이 지금 단순한 질문을 하는 건지 화가 나서 화를 질문처럼 표출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였다.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선배에게 신입들이 인사를 안 했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단체로 불려 가 욕을 먹었다. 5기수 위 선배들까지 얼굴과 이름을 완벽하게 외우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며칠 뒤 테스트도 봤다. "38기?"라고 선배가 물어보면 우리는 그 기수 선배의 이름을 막힘없이 줄줄 읊어야 했다. 


당시 남자 동기들은 우리의 처지를 군대 시절과 자주 비교했다. '군대 시절보다 더 하다' '군대 선임 같다' '군대 왔다고 생각하고 버티자' 등등. 군대라는 곳은 어떤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일어나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물론 모든 선배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수습기간이 끝나자 매일 우리를 저승 입구까지 데려가던 저승사자류의 선배들도 우리를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이른바 '군기'가 풀릴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여전히 막내였고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을 감히 거절하기 힘들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특수한 경험을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자신의 선배, 그 선배의 선배, 상위 직급자와의 관계에서 겪는 일들과 느낌은 강도만 다를 뿐 패턴은 비슷했다. 선배는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나는 선배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며 선배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더 무서운 패턴은 다음 해에 나도 '선배'가 되는 것이다. 


왜 나는 누가 알려주지도 않은 이런 패턴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을까? 우리나라가 웃어른을 공경하는 유교 국가라서? 그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모든 것에 이의 없이 복종하는 것은 다르므로. 


'상명하복'은 군대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다. '전시'라는 특수 상황 혹은 이를 가정한 상황에서는 상부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상명하복'이 필수적이다. 전쟁 중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 전쟁처럼 치열했던 걸까. 요즘엔 덜해졌다고 하지만 30대 후반인 내 또래들을 보면 덜해진 이유는 눈치를 보며 참기 때문일 뿐, 생각 그 자체가 바뀌었다는 생각은 많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선배인데 어떻게 저렇게?'라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선배에겐 이렇게 해야지!'라는 뿌리 깊은 생각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땠냐고? 나는 늘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제법 실천하며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생각을 반성하게 된다. '그저 몇 년 일찍 태어나서 하찮은 경험 몇 개 더 했을 뿐인데 무슨 선배랍시고'. 내 주변에 좋은 '후배'가 아닌 좋은 '동료'가 많아지길 바란다. 내가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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