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 나올까? (수통?)
앞에서 이야기한 무서운 선배님들은 어느 정도 관계가 느슨해진 다음부터는 꼭 본인들이 겪은 일들을 훈장처럼 이야기해주셨다. 주로 술자리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들은 각자의 안타까운 사연 뒤에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같은 말로 끝났다. "그래서 너네는 훨씬 편해진 거야."
'라떼' 라는 기가 막힌 말이 없던 당시, "나 때는~"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는 리액션을 일발장전했다. 놀람과 안타까움 및 나는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추임새와 눈빛, 행동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저 선배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렇게 했을 뿐.
내 기억 속 '라떼'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TV에서 군대 관련 프로그램을 볼 때면 아빠는 자주 "요즘 군대는 진짜 좋아졌네. 나 때는~"이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방위병 출신이었다. 엄마는 늘 아빠가 방위 출신이라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일반 군대 갔었으면 저 말을 얼마나 더 자주 들었겠냐고. 엄마의 긍정력 가득한 해석이 놀라웠다.
굳이 옛날 자료화면을 쓰지 않는 다음에야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군대의 모습은 당연히 가장 최근의 모습일 테고...... 그 최근의 모습마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시대에 여전히 한국전쟁 시절 수통이 남아있는, 사실 열악한 환경이다. 마차를 타던 시절에 걸어 다녔다고 자동차를 타는 시절에도 무작정 걸어야 하나. 무작정 걸어야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결국 모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것인데, 여전히 라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 때는 더 힘들었어. 너네는 편한 거야'라는 말속에서 나는 미묘하게 '더 많은 고생은 한 내가 더 대단해'라는 마음과 '그러니까 너네는 절대 날 따라올 수 없어'라는 마음이 읽힌다. (본인 기준) 그 모진 고생을 견뎌낸 자신에 대한 칭찬이자 나 이후에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전부 편하게 군 생활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 같은 말이 '라떼'인 것 같다. 심지어 때로는 '그래서 너희도 고생해야 돼'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어딜 편하려고! 나도 고생했는데! 그럼 내가 억울하잖아!'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
몇 가지 물리적 현상만을 들어 내가 더 열악했음을 굳이 강조하는 것의 가장 큰 부작용은 진짜 불합리나 부조리가 그 뒤로 숨어버리는 데에 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대가 몸과 마음이 편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인생에서 엄청나게 귀한 시간을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힘들다' 혹은 '힘들었다'라고 말할 정도의 일이라면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는 없을까. 그저 "야, 나 때는 더 힘들었어."라고 말하며 넘어갈 일일까.
비단 군대뿐만이 아니다. '라떼'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연이은 야근에 워라밸이 필요하다고 하는 직장인들에게도, 수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입시제도가 힘들다는 학생들에게도, 독박 육아 때문에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말하는 엄마들에게도. 나는 지금 힘든데 '라떼'가 오면 힘겨움이 투정이 되어버린다.
한국전쟁 시절의 수통은 어쩌다 21세기까지 오게 된 걸까. "야, 나도 그거 썼어." "얌마, 나 때는 숟가락 젓가락도 제대로 없었어."라는 말들이 그 수통을 여기 까기 끌고 온 것은 아닐까. "왜 너희도 아직 그 수통을 쓰고 있지? 이거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그 수통은 진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