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arah Oct 23. 2021

Ep.8 - 유연함을 배우고 싶다

온 국민이 초등학생 때부터 한 체조, 나도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비행기나 차를 오래 타면 오른쪽 무릎이 불쾌하게 아팠다. '이러다 말겠지' 생각하고 넘겼는데 얼마 전 제법 높은 산을 오르다 걷기 힘들 정도의 통증을 느껴 그제야 병원을 찾았다. 진단명은 '슬개건염'. 부랴부랴 이것저것 찾아보니 무릎 주변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부랴부랴 몸에 맞는 폼롤러를 사고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함이 덮쳐왔다. 


나는 몸이 뻣뻣하다. 어렸을 때 체력장에서 유연성 검사를 하면 늘 -(마이너스)가 나왔다. 한 반에 손끝이 발끝에 닿지 않는 여학생은 많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거의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다. 이 테스트는 내가 체력장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없는 종목이었다. 몸이 반으로 촥 접히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꼈다. 


체력장을 하고 난 날엔 다섯 식구가 모두 서서 허리를 굽히고 팔을 쭉 펼쳐보았다. 엄마를 뺀 모두가 손끝이 발에 닿지 않았다. 어떤 신체적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손끝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빠, 오빠, 동생을 보며 내 이 놀라운 뻣뻣함이 가족력이라 확신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밑바닥 수준인 유연성에 비해 순발력이나 힘은 좋은 편이라서 일반적인 운동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운동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기억이 비교적 또렷한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3년 동안 체육 실기 시험에서 A를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잘 안 되는 동작들도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하게 되었고, (내가 다녔던 여자 고등학교 기준으로) 친구들이 가장 무서워하던 실기 시험인 뜀틀도 사뿐히 넘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 선생님은 어느 날 내게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혹시 체대에 갈 생각 없나?"라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운동을 놓은 적은 없다. 주로 했던 운동은 등산, 달리기, 복싱, 킥복싱. 땀을 쫙 흘리고 난 뒤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내게는 늘 '유연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딴에 몇 가지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첫 번째는 대학생 때 배운 요가. 대부분의 동작을 문제없이 따라 할 수 있었지만 '나비 자세' 류의 앉아서 허리를 앞으로 굽히는 자세나 다리를 최대한 넓게 벌리는 동작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나는 다리를 직각으로 벌리는 것도 힘들어했고 요가 선생님은 몇 번 동작을 잡아주시다가 결국 외면하는 것을 선택하셨다. 다른 수강생도 많은 단체 수업이었고 나는 그들에 비해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나만 봐줄 수 없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할 순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3개월 수강 후 재등록을 포기했다. 


두 번째는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운 수영이었다. 수영은 유연성을 기르려고 배웠던 것은 아니었다. 물 공포증을 극복해보고 싶어 용기 내 등록했다. 내가 등록한 저녁 초보반은 대부분이 20~30대로 보이는 직장인이었고 아주머니도 계셨다. 1명을 빼고는 모두 수영이 처음이라 나와 같이 풀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동지애를 느꼈다. 


물에 뜨는 법과 호흡하는 법, 패드를 잡고 킥으로 앞으로 나가는 법을 배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자유형을 배우는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팔을 돌리지 못했다. 내 자세를 관찰하던 선생님은 내 어깨가 뻣뻣해서 그런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고 집에 가서 팔 동작을 연습하라는 숙제를 주셨다. '왜 난 안될까' 하는 억울한 마음, 이제 겨우 평생 처음 물에 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 등등이 뒤섞여 남들보다 몇 배는 열심히 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한 것은 물론, 주말 아침에는 자유 수영을 가서 혼자 연습도 했다. 풀에 모여 대부분의 시간을 이야기 꽃만 피운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물개처럼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 실력은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초보반을 함께 시작한 모든 사람들이 월반하고 나만 남았다. 불안했지만 버티던 나를 무너뜨린 건 수영 선생님의 한마디였다. "회원님은 수영이랑 잘 안 맞으시는 것 같아요." 나는 그날 이후 수영 수업을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내게 '유연함'은 절대 풀 수 없는 숙제로 남았다. 사실 풀기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니 가족력이라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모든 인류가 유연한 몸을 가지고 같은 운동을 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건강이나 하고 싶은 운동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한 유연함 정도는 가지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내 몸을 제어하기 힘든 상태에서 요가를 배운다고, 필라테스를 배운다고 달라질까? 


남편은 나와 정반대의 몸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 태권도를 오래 배워서인지 이것도 가족력인지 상당히 유연하다. 남편은 늘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는 몸이 너무 뻣뻣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한강을 산책하다 또 그 말을 꺼내기에 욱하는 마음에 "그래, 나도 알아. 근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걸. 아니 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줘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해버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뱉어놓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는 늘 체육시간에 '국민체조'를 했다. '체조'라는 이름이니까 운동을 하기 전 근육을 풀고 워밍업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 체조를 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 딱딱한 동작들이 정말 내 몸을 풀어주고 있었을까? 동작 하나하나 (아마도 담겨있었을) 의미와 이 동작이 어떤 근육을 풀어주는데 효과적인지 배웠다면 우리는 그 체조를 그렇게 건성건성 했을까? 


남편은 국민체조를 하며 느낀 기분을 군대에서 '국군 도수체조'를 하며 똑같이 느꼈다고 했다. 그 체조가 궁금해 유튜브를 찾아봤다. 놀랍게도 20여 년 전 국민체조에서 구령을 외치던, '넷'을 '네이'라고 부르던 아저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행진곡 풍의 비슷한 음악과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국군을 위해 구령을 외치던 아저씨는 학생 포함 모든 국민을 위해서도 구령을 외친 것이었다. 국군 도수체조가 보급된 건 1970년. 그로부터 7년 뒤 보급된 국민체조가 국군 도수체조 동작과 상당히 비슷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여전히 학생들이 단체 체조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런 류의 운동이 필요하긴 한 모양이다. 국민체조와는 음악도, 동작도 상당히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모두' '같은' 동작을 한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사람의 몸, 어제 오늘 다른 내 몸의 컨디션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같은 체조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 필요한 동작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건 유난히 뻣뻣한 내 몸을 위한 변명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대충대충 하고 마는 그 국민체조도 열심히 한 드문 케이스에 속한다. 몇 가지 확실한 건 그 체조를 통해 내가 유연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무릎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국민체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아무래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08화 Ep.7 - 라떼는 말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